■ 길잡이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아주 오랫동안 내려오는 원초적 질문중 하나입니다. 어려 답이 있겠지만 오늘 시인은 하나님을 ‘주재主宰’하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다스리는 분’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다스릴까요? 첫째 하늘에서 세상과 사람을 굽어보십니다. 둘째 그러다가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는지를 두루 살펴보십니다(1). 이것이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 묵 상
하지만 세상은 자기 일에 눈이 멀어 이런 하나님의 일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니 그럴 만도 합니다. 문제는 자기 일에 눈 먼 어리석은 이가 제 속을 감추며 떠드는 소란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시편에서 '어리석은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발'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도덕적 결함을 밥 먹듯이 자행하는 자들이지요. 그러니 그들 무리에서 선을 행하는 자를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1).’ ‘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3).’ ‘언제나 깨달으랴. 저 악한들, 떡 먹듯 나의 백성 집어삼키고 야훼는 부르지도 않는구나(4). 하나님의 탄식은 곧 결단 있는 행동으로 바뀝니다. 주재하시는 하나님답게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섭니다. 바로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필요한 가난한 자를 찾아 직접 보호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오기를 기다리는 자를 찾아 보호자(파라클레토스)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인의 편이시니...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신다.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