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빌립보서 강해 4:8-9 무엇에든지

心貧者 2019. 1. 28. 18:52

무엇에든지

빌립보서48-92014/10/22()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오늘 본문을 시작하는 첫 단어는 '끝으로'입니다.

무엇인가 사도로서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끝으로이 표현은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쓸 때 아주 즐겨 사용했던 문학적 양식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의 서신에서만 5번 등장하는데, 그 때마다 언급한 내용이 오늘날 우리 신앙에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들입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엡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빌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살전 4: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살후 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이처럼 '끝으로'로 라는 내용을 하나하나 면밀히 살펴보면 사도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고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이지요.

신앙의 형성과 신앙의 진보입니다.

어떤 것이 신앙의 형성과 신앙의 진보를 이루는지?

또 어떤 것이 신앙의 형성과 신앙의 진보를 방해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끝으로라는 뜻을 잘못 오해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개역성경에 종말로로 번역해서 그런지 끝으로라는 뜻을 종말의 때에, 말세에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앞에서 확인했듯이 끝으로라는 말의 뜻은 마지막으로, 결론으로 말해서라는 강조의 뜻을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읽을 때 종말로라는 말이 나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말씀이 그 안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를 읽다보면 끝으로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5번 중에서 빌립보서에만 두 번 나옵니다.

그만큼 사도 바울이 신경을 써서 쓴 글이 빌립보서입니다.

 

다시 확인합니다.

우선 빌립보서 31절입니다.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주안에서 기뻐하라

이것이 빌립보서의 첫 번째 핵심입니다.

 

두 번째로 사도바울이 강조하고 싶은 마지막 권면의 말씀이 오늘 본문 48절입니다.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여기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권면하는 신앙생활의 지침이 6가지가 나옵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라는 말은 헬라어로 '호사( σα)'라고 합니다.

그 뜻은 어떤 일을 만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형편이든지, 어떤 처지에 있든지그런 뜻입니다. 한마디로 늘 한결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한결같이 늘 참된 그리스도인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형편이든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참된 그리스도인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정직이지요.

정직한 신앙.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 한 지방에 있는 어떤 교회가 분쟁이 일어나자 장로님들이 담임목사를 고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고발한 죄목이 공문서 위조죄입니다.

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가짜 기부금 납입증명서를 발급했다는 것이 장로들이 목사를 고발한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목사가 잘못했지요.

법을 속이고 사람을 속인 것 물론 잘못한 일입니다.

 

그런데요.

이 보다 더 심각한 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일과 사람을 속이는 일. 여러분은 어떤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더 쉽습니다.

? 드러나지 않으니까?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이 우리에게 무엇에든지 참되라는 말로 정직한 신앙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한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걸리지 않는다고 그런 짓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에만 관심을 둡니까?

사람 앞에서만 정직하고 참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바울이 말하는 무엇에든지 참되라고 라는 권면은 사람 앞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역시 정직하라는 것입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은 바리새인들처럼 사람 앞에서만 정직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불법을 행하는 그런 거짓 된 의, 세상의 의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을 행한 것은 용서함을 받을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고 거짓을 행한 사람은 결코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거짓 이라는 단어가 무려 9번이나 나옵니다.

거기서 말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행동과 행실은 어둠이면서 하나님과 사귄다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말한 무엇에든지 참되라는 말의 본질적인 뜻입니다.

 

둘째로 무엇에든지 경건하며입니다.

경건(honorable)은 헬라어로 '셈나'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셈나경건입니다.

경건, 그러면 사람들이 무게를 잡거나 침묵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경건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어떤 생각을 하든지 하나님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경건입니다.

그러니 경건훈련 한다고 하면서 침묵이나 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경건 훈련이 아닙니다.

 

셋째로 무엇에든지 옳으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처럼 항상 옳다고 여기는 한 길을 걸는 것입니다.

 

넷째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그리스도 예수만 바라보는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동정녀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부터 멀어져야합니다.

거기에 우리가 더러워져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는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하며'가 아니라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입니다.

영어로는 이것을 'lovable(러버블)' 이라고도 하고 '매력적(attractive)어트렉티브'합니다.

즉 사랑을 받을 만한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가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 6가지.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