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빌립보서 4장 14-23절 2014/11/19(수)
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4: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4: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4: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4: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4: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4: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오늘로서 빌립보서 강해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월에 시작된 강해인데 오늘 마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에 도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계획이나 의지와는 달리 유럽에서의 첫 복음전도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옷감을 자주색으로 염색해서 파는 옷감장사꾼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루디아, 이 분이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그와 그의 온 가족이 세례를 받으면서 빌립보 교회가 드디어 시작되게 됩니다. 옷감염색 작업장이 유럽최초의 세례를 베푼 장소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유럽에서 교회가 처음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자색 직물 산업으로 유명한 두아디아(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있었던 곳 중에 한 지역)출신으로 소아시아에서 이민 간 ‘루디아’라는 한 여성을 통해서 유럽의 첫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훗날 루디아의 가정으로부터 시작된 빌립보교회는 유럽 선교의 전초기지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이 떠난 이후 아주 큰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옥중생활 때문에 교회 안에서 다툼과 분쟁이 생긴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툼과 분쟁이 발생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빌립보교회를 대표해서 에바브로디도가 선교헌금을 들고 사도 바울이 거처하고 있는 로마로 찾아가게 됩니다.
에바브로디도로부터 교회의 사정을 들은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찾아가서 자신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가 지금 옥중에 갇혀있는 가택연금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신의 소견을 편지로 써서 디모데 편으로 빌립보교회에 보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빌립보서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마지막 인사말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마지막 인사말에 해당하는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로서 바울의 진정한 모습을 세 가지로 엿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바울은 항상 주 안에서 기쁨이 충만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맡은 사도직을 고난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직 그 자체가 고난입니다.
십자가의 짐 같은 고난이고 고통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고 기쁨으로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전도자 바울의 모습입니다.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빌립보서가 강조하고 있는 핵심적인 단어는 기쁨입니다. 말로만 기쁨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5:16절이 말씀처럼 항상 기뻐하는 삶을 실제로 살았던 인물이 바울입니다. 그 기쁨의 생활이 어느 정도인가하면 심지어 궁핍과 비천함과 배고픔 속에서도 그는 항상 기쁨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교인들이 따라 배우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접하자 빌립보교회가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됩니다. 사도직을 맡은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이 복음의 방해가 될 것이라는 주장과 반대로 오히려 그것이 복음의 진보가 될 것이라는 주장 사이에 팽팽한 긴장과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그 때 이 분쟁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빌립보교회가 택한 방법이 에바브로디로를 사도 바울에게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그냥 에바브로디로라는 사람만 보낸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옥살이에 필요한 경비까지 챙겨서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게 됩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선교비라고도 할 수 있고, 영치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돈을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게 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필요한 물질의 부분을 빌립보교회가 상당부분 해결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궁핍과 비천함과 배고픔을 빌립보교회가 채워준 것입니다. 비록 빌립보 교회가 시기와 분쟁이라는 시험을 받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복음전도에 대한 열정만큼은 아직 남아있다는 좋은 반증이 된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자신에게까지 이런 호의를 베푼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
바울의 입장에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의 기쁨을 편지로 녹아낸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복음 전도자로서의 은혜, 그 은혜의 기쁨을 편지로나마 전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질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것이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의 증거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의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자신의 기쁜 심정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4: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통해서 물질을 공급받는 것이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이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일이 사도로서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그리고 이 기쁨의 충만을 빌립보교회, 너희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바울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행복한 전도자 바울의 모습이지요.
그러면서 사도로서 축복의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의 마지막 인사말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교회에 대한 성도에 대한 바울의 열정과 사랑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항상 우선순위는 교회이고 성도의 삶입니다.
교회가 우선이었기에 빌립보교회를 향해 이와 같은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처지에 대한 변명을 위하거나 자기의 형편을 이롭게 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고 교회공동체를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안의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인사말을 보면 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사랑하는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이 이 마지막 인사말 속에 다 녹아있습니다. 비록 자신의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자신의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바로 사도의 마음이고 목회자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 사도의 일이고 목회자의 일이지요.
바울의 마지막 인사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세 번째 사실은 바울은 고난을 곧 하늘의 영광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 신앙의 핵심입니다.
‘고난이 곧 하늘의 영광이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 있게 빌립보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고난의 참예 한 것. 참 잘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처럼 어려운 자와 괴로운 자와 함께 하는 것.
참 잘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4: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말씀을 마칩니다.
빌립보서를 처음 시작할 때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라 표현하지 않고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할 만큼 그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철저하게 매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갇혀 있는 것은 로마의 감옥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에게 철저하게 갇혀 있다’는 자기 고백, 자기 확신입니다.
그러니 그런 그가 세상 권력자의 힘이나 세상이 주는 고난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궁핍이나 비천이나 배고픔도 그를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유의 모습입니다.
역설적이기도 그는 로마의 옥중생활에서 완전한 자유자가 됩니다.
사도라는 이름까지 내려놓을 만큼,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유자가 됩니다.
어떻습니까?
무엇인가 끊임없이 매여 사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삶의 방향이 어떠해야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감옥과 같은 세상에 매이지 마십시오.
바울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매인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바울처럼 우리도 참된 자유와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복음 6:25-34 염려하지 말라 (0) | 2019.04.01 |
---|---|
빌립보서 1:1-2 기쁨의 서신 (0) | 2019.03.26 |
빌립보서 강해 4:10-13 일체의 비결 (0) | 2019.01.28 |
빌립보서 강해 4:8-9 무엇에든지 (0) | 2019.01.28 |
빌립보서 강해 4:2-7 일치되게 하는 비결 (0) | 2019.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