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빌립보서 강해 4:10-13 일체의 비결

心貧者 2019. 1. 28. 18:53

일체의 비결

 

빌립보서 410-132014/11/5()

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 본문은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말씀이라 늘 마음속으로 다지면서 간직하는 말씀 중에 한 부분입니다.

특히 11절과 12절 말씀이 좋습니다.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일체의 비결.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지향점이 하나가 되는 일체의 삶.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신비, 그리스도인의 품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는 과거형으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도 바울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모든 조건을 고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신뢰할 만큼 그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전혀 부족함이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바울이 언급한 배고픔과 궁핍, 이런 것들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우선 그는 유대인 중에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입은 선민이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육적으로는 로마의 시민권을 지닌 자유인입니다.

 

로마 시민권 하나만으로도 당시 사회구조 속에서 이미 성공이 보장된 인물입니다.

거기다가 국제 공인 어인 헬라어에 아주 능통한 사람입니다.

학벌로 따지면 지금 서울대학교에 해당하는 명문 학파에서 학문을 마친 사람입니다. 결코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것에 있어서 넉넉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후 배고픔과 궁핍을 말하면서도 전혀 불편해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기로 한 번 내어 뱉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냅니다.

사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지 않았다면 궁핍이나 비천이나 배고픔이란 단어를 모를 정도로 그는 늘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궁핍과 비천과 배고픔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궁핍과 비천과 배고픔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후 궁핍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 그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습니까? 사실 창피한 일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옛날 친구들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소리밖에 더 듣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영적, 영적 그래도요. 내 지갑에 돈이 없으면 기운까지 빠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궁핍함을 궁핍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 배고픔을 배고픔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아무나 하는 말이 아닙니다.

곧 있으면 연말입니다.

기다려집니까? 아니면 부담으로 다가옵니까?

아무래도 부담스럽지요.

왜 그렇습니까?

가야할 모임도 많고 써야할 것도 많지만 궁핍한 처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연말이 꼭 달갑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궁핍한 처지는 어느 누구도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사도로서 자신의 궁핍함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가 주목해야합니다.

자신이 처한 비천함과 배고픔까지도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바울의 삶.

여기에 우리가 오늘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이 배짱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그리스도 예수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궁핍한 사도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얼마나 멋진 신앙고백이고 진정성 있는 고백입니까?

바라기는 이런 배짱 있는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도 바울처럼 물질에 메이지 않는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배짱 있는 신앙, 자족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까요?

3절이 그 해답입니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믿음의 삶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생활신앙이지요.

중요한 것은 본문 13절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곧 그리스도 예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늘 자족할 수 있고 물질에 메이지 않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참된 자유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370장의 상태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다시 12절입니다.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방금 부른 찬송을 통하여 그리고 방금 읽은 말씀을 통하여 어떤 일에든지 무슨 일이든지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자요 우리의 근원자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도, 참 많이 하시지요.

정말 우리가 드린 소원의 기도가 응답받기를 원하십니까?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라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거친 삶이 풍부에 처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5:6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15: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물질에 메이지 않고 늘 자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간직한 신앙생활, 생활신앙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요한일서 216절입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새번역,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으로부터 오는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이 우리를 늘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고 자칫 삐끗하면 이러한 시험에 쉽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나약한 것은 사도 바울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늘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이 우리 안에 실체하는 믿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감사하기 보다는 비교당하고 불평과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교당하지 마십시오.

내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 예수, 그 분과 비교할 것이 세상 천지에 무엇이 있기에 비교당하십니까?

그러니 비교당하지 마십시오.

특히 물질로 인해 비교당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은 물질의 소유,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그 안에 거하시기를 늘 소원하시고 늘 바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물질 때문에 비교당하거나 비굴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내 안에 능력자가 있다고 하면서 물질 때문에 비굴한 사도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물질 때문에 비굴하지 않는 배짱 있는 신앙.

이것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디모데전서 66절입니다.

6:6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은 큰 이득을 줍니다.

 

말씀생활, 기도생활, 금식생활, 구제생활

이 모든 것이 경건의 이익을 주겠지만 베드로가 경험한 경건생활의 가장 큰 이득은 늘 자족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즉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입니다.

사도이지만 그는 내 안에 능력자로 계신 성령을 통해서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가고 있다고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사도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 역시 이 길을 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힘들겠지만 아니 힘들지만 이 길을 신앙의 동지가 되어 함께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