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하여
빌립보서3장 10-16절 2014/9/10(수)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어떤 인생이든지 어떤 목적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인생의 목적이 그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그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인생의 목적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 인생의 비전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속에서 꿈쟁이 요셉의 스토리를 묵상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인생의 목적을 두고 살아갈까요?
너무 광대한 질문인 것 같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선 한 가지만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정한 이 땅에서의 목적은 다르겠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모두가 가져야할 영원한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결코 변할 수 없는 불멸의 목적, 그것이 무엇일까요?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았던 환상으로 설명한다면 이런 삶일 것입니다.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하는 삶, 곧 임마누엘의 완성입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사도마다 또는 복음전도자마다 그 가르침의 내용은 달라도 모든 가르침의 방향은 이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신앙의 모습, 신앙의 유형은 조금 달라도 결국에는 이 목적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권면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산상복음이 기록된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것이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인생의 목적입니다.
‘이 땅이 목적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목적, 궁극적 목적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 나라라는 영원한 목적, 궁극적 목적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공자님 가르침처럼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천하를 호령하는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왜 천상, 하나님 나라일까요?
그 이유가 시편에 나옵니다.
103: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아무리 이 땅에서 영광의 인생, 존귀의 인생, 능력의 인생을 누리고 살았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풀과 같고 들의 꽃과 같기 때문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누린 자의 허망함입니다.
권불십년이라지요.
60이든 80이든 아무리 그 인생의 수한을 다 누린다 할지라도 들의 풀과 같고 들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진시황제의 인생도 솔로몬의 인생도 아무리 그들이 전무후무한 영광을 누렸다 할지라도 들의 꽃과 같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호흡을 코에 의지하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풀과 같고 들의 꽃과 같은 이 땅에 우리 인생에 목적을 두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자의 삶이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모든 추수를 마치고 한 부자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여기에 보면 부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3가지의 목적이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어쩌면 이것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소원일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런 삶을 마다하겠습니까?
이런 소원을 빌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20절 이하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런 충고를 하십니다.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인생의 목적을 이생, 자기 자신에게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부요함만을 취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자, 곧 천상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러한 거룩한 목적에 이끌려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추수를 마친 한 부자처럼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삶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4-5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육체를 신뢰할 만한 인물이 바울입니다.
거기다가 그는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그런 그가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인생의 푯대를 발견하면서 이 모든 것을 무엇으로 여겼고 합니까?
8절, 배설물(똥)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발견한 새로운 인생의 푯대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이것이 지난 시간에 살펴 본 10절과 11절입니다.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여기에 보면 사도바울이 자기 인생을 건 푯대 3가지가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
그리스도가 행한 부활의 권능을 아는 것.
그 부활의 권능을 얻기 위해 고난의 참예하는 것.
이 3 가지가 사도 바울의 푯대이고,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 모두의 푯대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한 가지입니다.
이 푯대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날마다 날마다’입니다.
점진적인 구원의 여정입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골인 점을 향해서 한 걸은 한 걸음 힘겹게 나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께 대한 부요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한 걸음 한 걸음의 발걸음이 힘들고 때로는 장애물 때문에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훼방꾼으로 인해 돌아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고난을 거쳐, 광야를 거쳐 부활의 영광의 참예할 때까지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에 받게 될 하늘의 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구원의 여정에 관한 아주 중요한 말씀을 12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천국을 얻은, 천국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예비한 상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 쫒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날마다입니다.
찬송가 433장입니다.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하늘나라 나 올라가 구주의 품안에 늘 안기어 영생의 복 받기 원합니다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바로 이것입니다.
그 분이 붙드시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이 예비한 상을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날마다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부활의 영광입니다.
부활의 영광에 참예해서 저 하늘나라에 올라가 구주의 품안에 늘 안기어 영생의 복 받기 원하는 것. 바로 이것이 푯대를 향해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민수기 23장 19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모세가 출애굽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언약)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룩한 푯대, 가나안을 향하여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신 거처럼 천국에 대한 약속,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 부활의 대한 약속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약속하신 말씀위에 굳게 서는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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