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빌립보서 강해 2:15-18 나와 함께 기뻐하라

心貧者 2019. 1. 25. 09:03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립보서 215-1820145/ 5/ 21()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성도, 곧 믿는 자의 최대의 관심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언약으로서의 구원을 이 땅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천국 복음을 영접해서, 이 전에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죄와 악, 그리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된 자유 함에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의 궁극적인 관심이면서 동시에 바울 사도의 궁극적인 관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본문 21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이 이 부분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오지랖 넓게 남의 구원을 참견하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선 자기 자신의 구원이나 신경 쓰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은 구원하고 정작 자기 자신이 구원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상대방에게 걸지 말고, 우선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가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맞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의외로 이 일이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선생이 되려하기 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31, 야고보의 권면처럼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도 모르게 자꾸 남을 가르치려들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은 이렇게 하고, 예배는 이렇게 드리고, 기도는 이렇게 하고 등 일일이 참견하고 훈수하고 가르쳐 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친절하게 설명한다고 하는 일이 자꾸 가르치는 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 간의 불평이 생기고 시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입 꾹 다물고 교회만 다니고 예배만 드릴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생활과 복음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을 수도 없고. 이 문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의 해법입니다.

, 한 번 살펴봅시다.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여러분, 여러분과 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우리 안에서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가르치는 목사가 아니라 가르치는 어떤 자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는 주체는 우리 안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합니다.

만약, 신앙의 선배의 가르침이나 목사의 가르침이 꼭 필요하다면 바로 이 범주 안에서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래야 불평과 시비가 사라집니다.

 

구원의 주체가 되어서 내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모든 가르침의 기준점입니다.

이 범주를 벗어나기 때문에 가르침에 대한 권위도 없고, 불평과 시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누구를 가르치거나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 과연 이 가르침이 내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인지 아니면 사람의 생각에 의한 가르침인지를 우리가 꼭 분별해야합니다. 그래야 불평과 시비가 사라지고 가르침에 대한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여기서 사용된 행하시는의 그리스어가 참 재미있습니다.

행하시는의 그리스어는 엔 에르게이입니다.

에르게이’, 여기서 파생된 말이 에너지말과 에너자이저입니다.

이 두 말을 합치면 이런 뜻이 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데 어떻게 행하시느냐?

힘의 근원이 되고 능력의 근원이 되어서 우리의 구원을 활발하게 북돋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선생노릇 하면서 서로 김 빼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구원을 행하시는 엔 에르게이즉 구원의 에너지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이런 것들입니다.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첫째, 흠이 없어야 합니다.

사탄 곧 마귀가 틈탈 흠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흠의 그리스어는 '아멤프토이'입니다.

남에게 비판을 받거나 지탄받을 만한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세상을 향해서나 자신을 향해서나 그리스도를 향해서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 순전해야 합니다.

이 말의 그리스어는 '아케라이오이'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주 자주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 뜻은 섞이지 않았다. 또는 간음하지 않았다. 입니다.

바로 믿음의 순결을 말합니다.

 

셋째, 거스르는 세대에서 흠 없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흠 없다'의 그리스어는 '아모마'입니다.

이 말은 아주 허물이 없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부끄러운 흠이 전혀 없는 상태를 나타낼 때 쓰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흠이 없고, 순결하며, 거스르는 세대에서 아무 흠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불평과 시비를 야기하는 가르침은 이제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까지 내가 달음질 했던 선교의 사역, 복음 전도의 사역이 헛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날에 즉 마지막 날에 자랑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다시 16절입니다.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 빌립보 교인,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날에 당신들이 나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전한 복음의 달음질, 내가 행한 선교의 달음질이 헛되기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부탁에 부탁을 더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17-18절을 보니까 사도 바울이 이런 말까지 합니다.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전제의 제물로 드릴지라고 나는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전제라는 단어는 아주 무서운 말이면서 동시에 아주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전제라는 말은 말 그대로 기름을 쏟아 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성전에서는 주로 값 비싼 유향이나 몰약의 기름을 사용 했고 일반인들은 포도주나 독주를 번제단에 쏟아 부어 살라 바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개역 성경은 이것을 관제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새 번역은 이것을 이렇게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나를 희생 제물로 삼아 그 피를 전제로 드린다 할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 바울이 보여주었던 선교의 열정이었고 빌립보 교인들을 행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이런 바울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8절이 말하는 것처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도 이런 믿음의 전도자, 사랑의 전도자가 되어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헌신하시고 또 헌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