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빌립보서 강해 2:1-4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길

心貧者 2019. 1. 25. 08:58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길

빌립보서 21-42014/3/26()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가장 강조하는 단어는 기쁨입니다.

4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편지이지만 무려 10번씩이나 기쁨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게 될 기쁨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을 마치 모든 문장의 주어처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기쁨의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네 거할 때만이 어떤 경우 어떤 처지 어떤 상황이라도 참된 기쁨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325

예수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이것이 바울의 노래이고 찬송이고 고백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하심의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기쁨

이것이 사도 바울의 기쁨이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지키는 에너지가 되었던 기쁨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마지막 절에서도 바울이 또 강변합니다.

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첫째 자신의 믿음을 돌보고, 둘째 서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 즉 믿음의 일들을 돌봄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내 안에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빈 틈 없이 가득 채우라는 것입니다.

불안이나 염려나 공포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그래서 악에게 거짓의 영에게 패하지 않도록 빈틈없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안에 주어진 구원의 기쁨을 충만하게 할까?

이것이 오는 본문의 본론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의 해법입니다.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그리스도 예수가 베푸신 대속의 십자가.

그분이 친히 베푸신 사랑을 가지고, 그 뜻을 합하여 그리스도에게 향하는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그리스도 안에서 갈라지거나 대립하거나 반목하지 말고 모든 일에 뜻(의지)을 합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랑하는 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있어서도 이 모든 일에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임한 구원의 기쁨을 충만케 하는 유일한 비결이라고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이 일이 싶지 않습니다.

성도들 마다 교회들 마다 한 뜻 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이 일이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또 교회마다 행하는 허세부리는 경쟁심 때문입니다.

교만한 우리의 마음 때문입니다.

이것이 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허세 부리는 경쟁심 때문에 크고 작은 분쟁으로 늘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성경 지식에 대한 허세

은사에 대한 허세

교세의 대한 허세

이런 것들로 교회는 늘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가면 형제교단에 속한 교회 중에 오른발교회와 왼발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교회 이름이 오른발교회 왼발교회입니다.

참 별난 이름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웃지 못 할 사연이 있습니다.

형제교단의 특징은 예배시간마다 세족식을 거행합니다.

천주교회가 미사 때마다 성찬식을 행하는 것처럼 형제교단은 예배 시간마다 세족식을 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 담임 목사님이 세족식을 할 때마다 발을 씻는데 꼭 왼발을 먼저 씻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던 성도들이 어느 날 목사님에게 정중하게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제사장 직임: 오른쪽 귀 오른쪽 엄지손가락, 오른쪽 엄지발가락)

목사님은 왜 왼발부터 먼저 씻습니까? 오른발이 성경적인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목사님은 계속해서 세족식을 할 때 마다 왼 발부터 씻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른발을 주장하는 분들이 시험에 드는 것이지요.

축제의 잔치가 되고 은혜가 되어야할 예배가 아주 짜증스러운 고역이 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앉아 있지만 요즘말로 짜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구원의 기쁨은커녕 인간적인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이것을 반대하는 장로와 교인들이 분리해서 세운교회가 오른발교회(Right Foot church)라고 합니다.

 

이처럼 교회들마다 비본질적인 문제로 서로 반목하고 다투고 분쟁하는 이유는 허세 부리는 경쟁심 즉 인간의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64-5절입니다.

6: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이처럼 모든 투기와 분쟁과 다툼의 원인에는 마귀가 주는 교만함이 교묘하게 경쟁심으로 숨어 들어와 생기는 것입니다. 다툼과 분쟁의 당사자는 단언컨대,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마귀적인 교만함이 교회 내에서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고, 다툼과 분쟁이 결국에는 성도들의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기쁨에 있어서 최대의 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교만함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부유한 도시에 세워진 빌립보 교회가 처한 문제였습니다.

빌립보 교인들 쟁쟁한 사람들이지요.

그러니 어찌 자기의 드럼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터진 문제 중에 하나가 바울의 사도권 논쟁입니다.

로마에서 옥살이를 하는 것을 놓고 서로의 의견이 분분하다 결국 사도권에 대한 논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진정한 사도인가?

거짓 사도가 아닌가?

혹 우리가 모르는 우리에게 숨기는 그 어떤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 무슨 구원의 기쁨, 예배의 기쁨이 있겠습니까?

서로가 피곤한 것이지요.

그 결과 예전처럼 모이기에도 힘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1장에서 뿐만 아니라 2장에서도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한 뜻 한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만이 우리 안에 있는 구원의 기쁨을 충만케 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안에 주어진 구원의 기쁨을 충만하게 할까?

두 번째로 바울이 제시한 해법은 교회공동체 안에서 행하는 서로서로의 격려와 위로, 교제와 긍휼, 자비입니다.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여기에 보면 권면이라는 말이 나오고 위로라는 말이 나오고 교제와 긍휼과 자비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같이 따듯함과 힘을 주는 말들입니다.

권면(격려와 칭찬), 위로, 교제, 긍휼(동정심), 자비(남을 크게 사랑하여 가엽게 여기는 마음,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자비이다. 사랑 자의 또 다른 듯이 어머니 자)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또 하나의 비결입니다. (첫째, 한 뜻 한 마음)

 

문제가 있는 교회의 특징이 있습니다.

서로 흔듭니다.

목회자는 교인들을 흔들고 교인들은 목회자를 흔듭니다.

또 교인이 교인을 흔듭니다.

그러면 교회는 끝장나는 것입니다.

 

반면에 부흥하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의 특징이 있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칭찬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교제하고, 베풀고 나누는 것이 익숙한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 부흥의 지름길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겸손함입니다.

구원의 기쁨을 충만하게 유지할 마지막 비결은 겸손의 덕입니다.

3절입니다.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함이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뭉치는 힘이 있고 하나가 되는 힘입니다.

왜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한자를 중심으로 싶게 하나가 되고 싶게 뭉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무너짐을 세워주는 묘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 중에는 잘 뭉치는 함박눈이 있고 잘 뭉치지 않는 싸라기눈이 있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가 되는데 자신을 눈 녹듯이 희생하는 성도가 있는 반면에 죽어도 자기 것만을 주장하는 쌀알처럼 것 도는 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뭉치고 하나가 되는 겸손함이 있습니까?

아니면 겉도는 교만함이 있습니까?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주님이 처절한 핏 값으로 내 주신 기쁨. 그 구원의 기쁨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마십시오.

첫째 주 안에서 한 뜻 한 마음이 되십시오.

둘째 서로서로 권면, 위로, 교제, 긍휼, 자비를 아끼지 마십시오.

셋째 눈 녹듯이 녹는 겸손함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기쁨이 살아 역사할 것입니다.

삶의 부흥으로 건강함의 부흥으로 교회의 부흥으로 역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