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립보서 1장 27절-30절 2014/ 4/ 23(수)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1: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지난 주 2장 11절까지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지나오면서 좀 이상한 점 없으신지요?
네, 1장 27-30절까지 말씀이 빠졌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2장 5절의 말씀이 선행되지 않으면, 1장 27절의 말씀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장 5절입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이 마음을 우리가 품어야 그래야 1장 27절의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그렇다면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먼저 정리해야할 단어가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개념입니다.
복음은 복음 인데 ‘그리스도의 복음’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이라는 것에 우리가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복음, 세상의 복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복음의 특징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 듣기에 좋은 소식만을 전합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걸림도 없고 어떠한 고난도, 어떠한 십자가의 삶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그저 자기 자신에게 듣기에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내 귀가 즐겁고 내 눈이 즐거우면 그만인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이야 어떻든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오직 자기 자신만의 복음이 사람의 복음, 세상의 복음, 마귀의 복음입니다.(파주시장 경선, 세월호 침몰)
반면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복음을 말합니다.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적 복음입니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에 참 좋은 복음을 말합니다.
창세기 1장31절에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소식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소식이 ‘그리스도의 복음’이기 때문에 인간입장에서는 이것이 때로는 걸림이 되기도 하고 종종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9-11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이 세상의 복음으로 오신 예수님을 오히려 세상은 걸림돌 여겼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복음은 풍요의 복음, 성공의 복음, 부요함의 복음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서 53장에서 예언한 것처럼 ‘그리스도(메시야) 복음’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을 멸시하다가 결국에는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버린 것입니다.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소식이며 복음 중에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말구유에 누이신 구유의 복음과 십자가의 복음이 복음 중에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약속된 주의 백성들을 구원할 유일한 방법, 유일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십자가의 복음이 참된 복음인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노래한 고난주간 때마다 부른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입니다.
입니다.
1절 만왕의 왕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2절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3절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함과 그 큰 은혜로 말미암은 십자가의 복음 곧 속죄함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복음에 사로잡힌 자로서 늘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고난도 유익하고 죽음도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늘 그의 삶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으로 무장한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여기서 사용된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은 그리스말로 ‘폴리튜에스데’를 행하라는 말입니다.
‘폴리튜에스데', 정치적 용어로 ’시민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은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답게 살라’는 뜻입니다.
어느 나라 시민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 하나님의 시민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의 뜻입니다.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 하나님의 시민답게 사는 생활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1장 27절 중반부에 나옵니다.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협력하는 진짜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나라의 복음의 신앙을 서로 굳세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의 신앙을 세우기 위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빌립보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 내 분열입니다.
그리고 이 분열의 원인 제공자가 사도 바울 자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빌립보 교인들이 동요한 것입니다.
복음의 진보다. 아니다. 복음의 걸림돌이다. 서로 의견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한 마음 한 뜻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고 천국의 시민 된 자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사람의 말이나 일로 분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이 한가지만을 놓고 한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다시 잡고 한 뜻이 되어서 서로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이 복음의 신앙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적자들로 인해 두려워하거나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1: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자,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대적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멸망의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리스도 복음에 충실한 우리에게는 무엇이 됩니까?
구원의 증거가 되고 구원의 사인이 됩니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삶이요 천국의 시민답게 사는 자의 당당한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복음을 거부하는 자, 복음을 대적하는 자 즉 사탄 마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멸망의 증거 즉 멸망의 사인을 가지고 있는 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고난입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구유의 삶이요 십자가의 삶이라는 것이지요.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온전하게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하나님이 그냥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내친 것이 아닙니다.
그 광야와 같은 고난 속에는 불기둥 있었고 구름기둥도 있었고 만나와 메추라기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도 함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합당한 생활 역시 고난이지만 거기에는 불기둥과 같은, 구름 기둥과 같은, 만나와 메추리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공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겠다. 죽겠다.’ 하지 말고 그 은혜의 삶을 한번 멋있게 누려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의 증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 사람들이요. 천국의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9절입니다.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곧 폴리튜에스데,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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