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기쁨
빌립보서 1장 15절-18절 2014/ 2/ 26(수)
1: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80년대 초,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사랑하는 아내(이희호 장로, 창천교회)와 자녀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옥중서신이지요.
이것이 나중에 ‘김대중 옥중서신’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이 책은 1984년에 출판되자마자 곧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판매금지가 됩니다. 그래서 1984년판 책을 시중에서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에 이 책이 한울 출판사에서 다시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보시기 바랍니다.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크리스찬이 된 행복은 무어라 해도 남(敵)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웃 특히 고난 받는 사람들에의 사랑의 마음과 봉사를 주님의 뜻으로 행하는 기쁨일 것이오.”(35쪽)
“사랑하려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려면 상대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처지와 심정을 알기 위한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화도 이해도 없는 가운데 곡해와 무지가 쌓여있는 가운데는 용서도 사랑도 있기 어렵습니다.”(143쪽)
“하나님의 축복이란 평탄한 생활과 번영의 보장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고난 역경 실패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 앞에 서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202쪽)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빛은 암흑의 권세와 싸워야 하고, 부패의 힘과 싸워야 한다. 그러므로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은 시련과 고난의 생활을 의미한다.”(286쪽)
이 책에 담겨진 편지의 내용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 같이 한 인간으로 그리고 진실하게 살고자했던 그리스도인의 한사람으로서 순수함과 열망이 잘 묻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절망스러운 감옥생활을 믿음의 진보를 이루는 계기로 삼은 좋은 예입니다.
이는 빌립보서를 쓴 바울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자신 감옥 생활을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목양했던 성도들의 신앙의 진보를 이루는 계기를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을 향한 사도 바울의 따스한 애정과 충고가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당시 여러 경로를 통해서 여러 교회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접한 소식이 빌립보 교회에 대한 소식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에 대한 여러 소식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5절입니다.
1: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여기에 보면 당시 빌립보 교회가 두 부류로 나누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바울을 선대하는 바울파와 바울을 시기하는 비 바울파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우선 바울파부터 살펴보지요.
이들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매이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옥에 갇힌 바울을 대신해서라고 자신들이 복음전도에 힘을 쓰자고 주장합니다.
그 내용이 16절에 나옵니다.
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이들은 바울의 옥살이를 불법을 행한 죄 값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전도,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바울이 옥살이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옥에 갇힌 사도 바울을 대신해서 착한 뜻을 품고 복음전도에 전심전력을 다합니다.
반면에 비 바울파는 사도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죄 없는 사람을 왜 하나님이 가두겠느냐는 것입니다.
교회가 모르는 어떤 죄를 지었으니까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도 바울을 옥에 가둔 것이지.
왜 무죄한 사람을 하나님이 옥에 가두겠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분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 입니다.
이처럼 바울을 미워해서 비 바울파가 아니라 바울에 갇힘을 못 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비 바울파 편에 선 것입니다.
그 내용이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비 바울파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이런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매임이 그들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보는 입장에 따라 자신의 매임이 충분한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매임을 두고 부정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 용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옥에 갇힌 자신의 처지가 오히려 복음을 변명할 수 있고 그래서 복음의 진보를 이룰 절호의 기회라고 자신은 생각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비 바울파가 말한 것처럼 바울의 갇힘이 복음의 갇힘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수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빌립교회의 뜨거운 논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이 복음의 진보를 이루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그 반대로 복음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러한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고 긍정적인 해석을 오늘 본문에서 내놓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입니다.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파든 비바울파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전파되는 것은 사도 바울이 아니라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파되는 것이 사도 바울 자신이었다면 심각한 문제이지만 바울파든 비바울파든 그들에게 의해서 전파되는 것이 오직 그리스도라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또 기뻐할 일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전도자 사도 바울이 보여준 전도의 시각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철저하게 복음 전파에 목적을 둔 사람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의 말씀처럼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을 받았고, 복음 전파를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복음전도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니 선교에 있어서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기쁨 그 자체인 것입니다.
자신을 용납하든 아니면 자신을 거부하고 욕을 하던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이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직 자기 인생의 목적인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 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감옥 안에 있든지 아니면 밖에 있던지, 매를 맞든지 아니면 맞지 않던지, 자신의 일이 잘되든지 아니면 잘 되지 않던지, 건강하든지 아니면 병이 들던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복음 전파를 위해 유익하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고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 바울이 보여 준 신앙의 참 모습니다.
바라기는 이러한 절대긍정의 신앙을 소유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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