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빌립보서 강해 2:5-11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心貧者 2019. 1. 25. 08:59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빌립보서 25-112014/4/9()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이 세운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소원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으로 인한 빌립보교회의 분열을 치유하고, 교회다운 교회로 빌립보 교회가 다시 거듭나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반목하는 분쟁과 시기를 치유하고, 그리스도가 주신 복음에 따라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다시 기억하고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날마다 충만케 하는 것. 이것이 바울이 사도로서 빌립보 교회에 거는 기대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분열된 교회 공동체를 하나가 되게 하고, 분쟁과 시기로 인해 빼앗겼던 성도의 기쁨 즉 구원의 감격을 다시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바울은 세 가지의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

첫째 주 안에서 한 뜻 한 마음이 되십시오.

둘째 서로서로 권면, 위로, 교제, 긍휼, 자비를 아끼지 마십시오.

셋째 눈 녹듯이 녹는 겸손함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 거하십시오.

이것이 분열된 공동체를 치유하고 빼앗겼던 성도의 교제와 그 안에 누리게 되는 기쁨을 회복하게 하는 바울의 해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입니다.

이미 반목과 시기로 분열된 교회를 어느 누가 치유할 수 있을까? 입니다.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아주 원론적인이야기지만 은혜 받은 자가 먼저 시작하면 됩니다.

은혜 받은 자가 먼저 한 뜻 한 마음을 품고 하나가 되는 일에 힘을 쓰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 먼저 권면하고 위로하고 교제하고 긍휼을 베풀고 자비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 먼저 겸손함의 덕을 교회 공동체 안에 세우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입니다.

그러면 교회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 됩니다.

그 어떤 프로그램이나 훈련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반드시 해 낸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하고 있는 빌립보교회의 문제 해결도 같은 이치입니다.

빌립보교회의 문제, 그것은 공동체 훈련이나 친교의 프로그램으로 해결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성도 각 사람마다 받은 은혜가 충만하면 저절로 해결될 일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십시오.

은혜의 방법이 아니라 훈련이나 프로그램의 방법으로 교회의 문제를 접근하려고 합니다.

교회의 일치와 교회의 회복을 공동체 훈련이나 친교 프로그램으로 접근합니다.

물론 군대문화처럼 훈련으로서의 친교가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동지의식 가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의 생명력입니다.

교회의 생명력을 불어 넣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끼리이지 우주적인 교회의 생명력으로 불어 넣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방법이 중요한 것입니다.

 

, 생각해 봅시다.

내 안에 넘치는 은혜가 없는데 어떻게 주 안에서 한 뜻 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내 안에 넘치는 은혜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높일 수 있겠습니까?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데 어떻게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속으로 끓어도 겉으로는 아닌 척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교인들을 가식 덩어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목사로서 미안한 이야기지만 저는 연합집회나 지방 부흥회 때마다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도 옆에 아는 사람이 앉아 있으면 부담이 조금 덜 한데 전혀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려고 하면 얼마나 어색하고 부담스로운줄 모릅니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시다. 주의 사랑으로 환영합니다.’

은혜 받읍시다.’

말도 좋고 뜻도 좋은데 이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 안에 넘치는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 사람 앞에서 가식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한 장에 걸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예수님이 아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화 있을 진저하면서 아주 무섭게 비판하십니다.

왜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우리 주님이 비판합니까?

외식과 가식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없는 사람들이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통한 서기관을 예수님이 꾸짖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이 아주 신랄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은혜 받은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헌금을 드려도 언제 마음이 뿌듯하고 기쁨과 감동이 밀려옵니까?

은혜가 임할 때 입니다.

같은 헌금이라 해도 은혜가 충만히 임할 때 헌금을 드리면 그것이 충만한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같은 헌금을 드려도 은혜를 모르고 드리니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억지로 드리니 헌금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일전에 어느 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부활절 예배를 드린 후에 헌금내용을 주보에 실었는데 최고액수로부터 시작해서 최하의 액수까지 차례대로 실었습니다.

보통은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순으로 헌금 내용을 기입하는데 특단의 조치로 헌금 내역을 액수대로 주보에 기록한 것입니다.

교회가 난리가 났지요.

이단이다. 목사가 미쳤다. 별의 별 소문이 다 났습니다.

 

목사님이 왜 이런 특단의 조치를 치한 줄 아십니까?

성도들이 교회의 역사와 전통만 자랑했지, 그 역사만큼 그 전통만큼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물질로 증명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몰라도 너무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헌금내역을 1000원 단위까지 액수와 이름을 주보에 낱낱이 공개한 것입니다. 물론 이 목사님의 조치,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해는 됩니다.

 

모르긴 몰라도 추수감사헌금, 부활절헌금보다 더 많은 액수가 나왔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목사님이 원하는 데로 감사헌금에 대한 훈련은 되고, 헌금의 액수는 늘어날 수는 있어도 헌금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기쁨, 그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훈련이 가진 한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흔히 은혜 받았다고 할 때 그 은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품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바울도 여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물 한 그릇 대접 받는 것도 은혜이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통째로 품는 것 그것이 바로 성도의 진짜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있어야 하나 됨의 역사,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친교의 역사, 그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 회복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계속해서 6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요 하나님과 동등 된 자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8절에 말씀처럼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그 은혜를 품으면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한 뜻 한 마음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권면, 위로, 교제, 긍휼, 자비를 아끼지 않는 참된 친교의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함으로 교회 공동체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그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높이시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심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말씀을 마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그 은혜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 주님처럼 낮아지십시오. 죽음의 자리까지 낮아지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죽음의 자리까지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자신의 영광으로 삼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