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몫
전도서 5:18-20절 2014/8/29(금)
5:18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5: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5:20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언제부터인가 우리교회가 돈 맛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맛, 은혜의 맛을 알아야 교회가 돈의 맛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우리 입맛이 원재료가 아닌 조미료에 길들어진 것처럼 우리 교회도 믿음이 아닌 돈의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차마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도 사고팔고 직분도 사고파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제는 이러한 일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컴퓨터로 글을 쓰다가 ‘신실하신 하나님’이라고 친다는 게 그만 잘못하여 ‘실신하신 하나님’이라고 쳤다고 합니다.
‘실신하신 하나님’
무엇인가 우리에게 암시하는 실수가 아닐까요?
정말 우리교회가 이렇게 막가다가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실신하신 하나님’이 될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교회가 돈의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소중한 것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믿음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교회에 끼어들면서 이제는 믿음의 힘, 기도의 힘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힘도 사라졌고 하나님의 응답만을 기다리는 기도의 힘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성도들의 삶의 자리가 믿음의 자리에서 돈 버는 자리로, 기도의 자리에서 돈 걱정하는 자리로 자꾸 밀려나가는 것 같아 여러분의 신앙을 책임지는 목회자로서 마음이 아주 불편하고 무겁습니다.
교회가 가난할 때는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믿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믿음의 힘, 기도의 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돈이 교회에 끼어들면서 돈의 힘도 꾀 쓸모가 있다는 것을 교회가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교회가 돈 만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면 예전처럼 믿음의 힘, 기도의 힘으로 접근하지 않고 세상처럼 돈의 힘을 빌립니다.
교회 건축, 예전처럼 믿음의 힘, 기도의 힘으로 하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힘, 기도의 힘 그러면 무식하다고 생각합니다.
돈부터 계산하고 돈으로 짓습니다.
은행에서 빌린 돈 의지해서 짓습니다.
그것이 위험한일이지 알면서도 그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힘보다는 돈 먼저 계산합니다.
계산해보고 수지타산이 맞으면 선교하고 그러지 않으면 선교를 접습니다.
선교도 돈으로 하려고 하지 믿음의 힘으로 하려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전도서 기자(솔로몬)는 돈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안 사람입니다.
그래서 돈의 폐해를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전도서 5장 10-12절입니다.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5:11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5: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새번역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5:10 돈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헛되다.
5:11 재산이 많아지면 돈 쓰는 사람도 많아진다. 많은 재산도 임자에게는 다만 눈요기에 지나지 않으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5:12 적게 먹든지 많이 먹든지, 막일을 하는 사람은 잠을 달게 자지만, 배가 부른 부자는 잠을 편히 못잔다.
어떻습니까?
수긍이 되는지요.
그러면서 전도자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13절입니다.
5:13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비참한 일을 보았는데 그 아끼던 재산이, 그 임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돈은 좋아할 수 있지만 의할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충고입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울증과 스트레스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자살률 세계1위입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물질이 풍성해질수록 사람들의 가슴에는 공허함과 우울이라는 악마가 터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삶의 조건이 그 어느 때보다 나아졌는데도 사람들은 만족할 줄 모릅니다.
윌리엄 제임스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이면서 심리학자인데 이 분이 재미있는 공식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자존감self-esteem’을 공식으로 나타냈는데 자존감=성공/허세.
성공할수록 자존감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임스는 분자(성공)가 늘어나는 것보다는 분모(허세)가 줄어드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허세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자존감은 저절로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1장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를 잘못 읽으면 허무주의 교과서처럼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전도서의 목적은 인생의 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도서, 코헬렛은 진정한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책입니다.
전도자는 말합니다.
사람의 한평생이 헛되고 헛될 만큼 짧고 덧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덧없는 인생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큼은 영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더라는 것이 전도자(코헬렛)가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이고 이것이 전도자가 오늘본문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주제입니다.
18절부터 새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5:18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은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
5:19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정해진 몫을 받게 하시며, 수고함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니, 이 모두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
5:20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
덧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쓰지 말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그의 백성으로 허락하신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내자는 것입니다.
정해진 인생의 몫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아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보라는 것입니다.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는 것이 전도서를 기록한 지혜자, 코헬렛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정말 후회 없이 잘 살아낼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또 하는 주어진 삶의 몫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며 자족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滿足이 아니라 自足입니다. 주어진 인생의 몫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자족한 삶을 살아갈 때 행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왜, 내 인생만이 불행하다고 생각할까요?
혹, 나만 불행하다는 생각에 우리가 속아 사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선물이, 바로 지금의 인생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만족을 향해 전력질주하지 말고, 자족의 비결을 배우기 위해 달리던 걸음을 좀 멈추고 하나님에게 한번쯤 묻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는 이현주 묵사님이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배에게 물어보고 음식을 먹어 본적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기 전에 배한테 물어봤다고 합니다.
초콜렛을 먹고 싶은데 먹을까요?
—먹지 말아라.
그럼, 사과는 먹을까요?
—먹어라.
두 개 먹을까요?
—아니다.
한 개만 먹을까요?
—그래라.
그래서 초콜렛은 먹지 않고
사과를 그것도 한 개만 먹습니다.
뭐든지 이렇게만 먹는다면
속탈이 날 수가 없지요.
그런데도 만일 탈이 났다면
보셔요, 하늘이 뒤집어졌을 겝니다.
-이현주, <먹기 전에>
여러분 왜 우리의 인생이 탈이 날까요?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주신 선물이 우리의 인생이 왜 이토록 탈이 날까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주님에게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힘, 기도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을 나로 여기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내 인생의 몫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것이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이지요.
그러니 탈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힘겨울 때마다 이 질문 앞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우리 주님께 ‘어떻게 할까요?’라고 한번만이라도 여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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