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룻기 1:1-5 인생의 흉년

心貧者 2019. 1. 13. 10:15

인생의 흉년

룻기 1:1-5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2014/9/26()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1: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40년 동안 광야 생활에서 유목민으로 살아왔던 이스라엘 민족이 농경문화가 발달 된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은 흉년을 맞이할 때입니다.

특히 밀농사에 필요한 늦은 비 곧 겨울비가 넉넉하게 오지 않으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유목생활을 할 때는 흉년과 상관없이 백리 길이든 천리 길이든 물이나 풀을 찾아 나서면 그만이었지만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이스라엘은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흉년을 피해 아브라함과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간 것을 유대인 랍비들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해석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흉년은 한 개인을 넘어, 그 개인이 속한 사회와 국가에 위협을 줄 정도로 아주 무서운 재앙입니다. 모든 것을 부족하게 하고 모든 것을 메마르게 하고 그래서 우리의 인생마저 삭막하게 하는 흉년은 모든 생명을 위협할 만한 아주 무서운 재앙입니다.

그런데 그 흉년이 사사들이 치리하는 시대 유대 베들레헴에 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곧 유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룻기의 배경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사사시대입니다.

사사, 좀 낯선 이름이지요.

사사, 뭐하는 사람일까요?

사사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사사가 이스라엘 역사 속에 등장했는지에 대한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사가 이스라엘 역사 속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죄를 짓게 됩니다. 가나안 족속과 구별된 백성, 거룩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가나안 족속이 행했던 우상 숭배의 악행과 더러운 악습을 그대로 따라한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흉년을 피하고 풍년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가나안 족속을 통하여 비를 주관하는 신, 바알이 있다는 것을 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비의 주관자 바알을 섬기는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실어하시는 우상 숭배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서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진노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의 도구로 주변 민족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심판하십니다.

그 때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로 세워진 사람이 바로 사사입니다.

다른 말로는 판관이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등장하는 12명의 사사들의 이야기가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를 끝맺으면서 그 시대의 특징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2125절입니다.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영적 흉년이지요.

물론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이 12명의 사사들을 그때 그때 세우셔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푼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구원을 입은 그 어느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유일한 왕으로 경외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사시대를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영적인 흉년인 사사시대에 설상가상으로 유다 베들레헴까지 흉년이 듭니다.

영적인 흉년에 육적인 흉년까지 겹친 것입니다.

아주 최악이지요.

이런 바탕에서 룻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4장으로 구성된 룻기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영적 흉년과 경제적 흉년에 처한 한 가정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되었고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이것이 룻기의 내용이고 핵심 주제입니다.

 

그런데요.

룻기를 자세히 탐구하다 보면 이 전과 좀 다른 구원의 내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위기가 처할 때 마다 특히 흉년이 임할 때 마다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남성 중심으로 펼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 모두 남성이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룻기는 다릅니다.

구원의 역사에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등장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언약과 거리가 먼 이방 여인 즉 모압 여인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구약성서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언약은 항상 남자 중심이고 이스라엘민족 중심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전부 남자 중심입니다.

그런데 룻기만은 예외입니다.

유대 출신 시아버지 엘리멜렉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고 모압 출신 며느리 룻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여기까지 읽으면 엘리멜렉이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곧 주인공이 룻으로 바뀌게 됩니다.

엘리멜렉,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주 훌륭한 이름입니다.

이름 중에 이름이지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이름이 엘리멜렉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내 삶의 왕이 되신다는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는 이 이름은 분명 자랑할 만한 이름입니다.

 

거기다가 그의 아내의 이름을 성경은 나오미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영적 암흑기인 사사시대에 보기 드문 신앙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훌륭한 가정이 흉년이라고 하는 고난의 문제가 닥치자 아주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두 아들 기론과 말론의 이름처럼 병약하고 나약한 현실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이 선택한 것은 결코 떠나서는 안 될 약속의 땅 유대 베들레헴을 버리게 됩니다.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자리를 벗어난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언약의 자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정의 위기가 시작됩니다.

 

유대 베들레헴, 그 뜻을 풀이하면 떡 방앗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올리브기름 짜는 틀’)

늘 먹을 것이 풍성한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먹을 것이 모이는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흉년이 들었다고 하나님이 정한 고향 땅을 등지고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모압 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잠시 흉년을 피한 것이 아니라 아예 정착합니다.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여기서부터 엘리멜렉 가정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신약시대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탄생한 곳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 기적사화에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하늘로부터 온 산 떡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서로 연결하면 베들레헴은 곧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단순한 떡집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 생명의 본향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근원, 생명의 본향인 베들레헴을 등지고 엘리멜렉이 자신에게 속한 모든 가정을 이끌고 모압으로 내려 간 것입니다.

악수 중에 악수이지요.

 

그 결과 엘리멜렉은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가문의 대를 이을 두 아들마저 잃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1: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여러분,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언약의 자리, 언약의 땅을 떠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약속한 땅, 그 언약의 자리를 떠나면 멸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엘리멜렉과 나오미처럼 신앙고백이 확실하고 신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할지라도 베들레헴 곧 생명의 본향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그 어는 누구도 생명을 얻을 자가 없다는 진리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엘리멜렉이라 할지라도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나오미라 할지라도 생명의 본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 역사를 결코 멈추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선택 받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몫을 감당하지 못하면 다른 이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외면한 구원의 역사를 전혀 예상 밖에 인물인 모압 여인 룻을 통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 역사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총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생명의 역사를 다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구원의 자리 생명의 자리를 떠난다고 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 사역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스라엘이 아닌 모압 여인 룻, 즉 이방여인을 통해서라도 다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너희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을 받지 않으면 그 구원의 은총, 구원의 역사를 너희들이 원수로 여기는 모압 여인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다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 구원의 역사는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언약의 땅 유대 베들레헴에 있는 데도 흉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 믿음 안에 굳게 서 있는데도 인생의 흉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할까요?

엘리멜렉과 나오미처럼 모압 행입니까?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비록 주님이 약속한 자리가 흉년으로 망가지고 상처 난 곳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영적 고향인 베들레헴 곧 생명의 본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 생명이 베들레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생의 흉년을 만나셨습니까?

그럴수록 더욱 생명의 본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간절함을 생명의 본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 하나님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을 살리십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의 결론이 될 만한 말씀 하나를 소개함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317-26절입니다.(새번역)

3:17 내게서 평안을 빼앗으시니, 나는 행복을 잊고 말았다.

3:18 나오느니 탄식뿐이다. 이제 내게서는 찬란함도 사라지고, 주님께 두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3:19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3:20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3:21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3:22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3:23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3:24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

3:25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3:26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