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누가복음 12장 13-21 그때 만일 그 부자가

心貧者 2017. 5. 23. 11:45


그때 만일 그 부자가

 

누가복음 12:13-212017/05/21(부활절 6주 웨슬리회심주일)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우리 감리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명절, 존 웨슬리회심 기념주일입니다.

1738(279주년) 524일 저녁 845분경입니다.

영국성공회 목사였던 존 웨슬리는 런던의 작은 거리 올더스게이트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이 모인 기도회 뒷자리에서 주님의 은혜로 자기 죄가 완전히 용서되었다는 사실이 드디어 마음으로 믿어지게 된 것입니다.

 

미국 조지아 선교에서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웨슬리의 삶은 비참 그 자체였습니다.

더욱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죄의 힘이었습니다.

원망과 분노’ ‘절망과 좌절이지요.

이 죄의 법에 의해서 자신이 포로로 잡혀 있다는 현실이 그는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사바나 식민지 장관의 딸 소피아 합키라는 연인과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떠난 연인과 그 남편에게 성찬을 베풀지 않았던 치조함은 결국 종교 재판에까지 회부되는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거기다가 교인들은 노골적으로 웨슬리에게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호기롭게 시작했던 조지아 선교는 실패로 돌아갔고 웨슬리는 아주 극심한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올더스게이트라는 작은 거리 그리고 모라비안 교도들이 모인 작은 기도회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대속의 은총입니다.

로마서 8장입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8: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8: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웨슬리는 이 말씀이 드디어 믿어지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없었던 일 즉 죄와 죽음의 법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결해 주셨습니까?

자기 육체 곧 자기 몸에다가 죄의 선고를 내리심으로 이 지긋지긋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대속의 은총이지요.

계속해서 15절로 넘어갑니다.

새 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8: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8:16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8: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8:18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기서 웨슬리는 원망과 분노 그리고 좌절과 절망이라는 죄의 터널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1738524일 저녁 845분경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 후 얻게 된 웨슬리의 회심입니다.

 

회심

회심이란 우리 마음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찾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원망과 분노 그리고 좌절과 절망에 팔렸던 우리 마음을 되찾아 원 주인이신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적인 변화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그리고 마음먹는다고 되어지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때와 하나님의 때가 딱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바로 회심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은 때 그리고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항상 찾아옵니다. 그래서 회심을 경험한 이들이 공동적으로 고백한 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입니다.

 

회심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설명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회심을 경험했다고 모든 신앙의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졸업이 없습니다.

또한 회심했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지향입니다.

지향점이 바뀌는 것이지요.

어떻게 바뀝니까?

로마서 85절입니다.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늘의 생명그리고 하늘의 평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끊어지지 않은 옛 사람 즉 구습의 인력에 벗어나기 위해서 매일 같이 그리고 숨 쉬는 순간순간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마음에 우리 마음을 비끌어 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 감리교회 공동예식서에 나오는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를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소개할까합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오늘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마음을 거처로 삼아주십시오.

종일토록 우리 안에 머무시어 잘못과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오늘 하루 우리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해주시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를 도우시어 주님과 더불어, 그리고 이웃들과 더불어 깊은 사랑의 친교 속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다른 이들이 주님께 바치는 기도의 응답이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이 세상에 희망의 징표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이 맘 때가 되면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심의 기회를 잃어버렸던 어리석은 부자이지요.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그때 만일 그 부자가 입니다.

 

그때 만일 그 부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삭개오처럼 회심했다면 그는 두 가지의 선물을 얻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하늘의 생명, 영생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늘의 평안입니다.

하지만 이 부자는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이 부자를 향해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어리석다라는 형용사를 이 부자가 얻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자기 밖에 몰랐던 그 부자 만에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겠지요.

다른 이가 아닌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정작 문제는 우리 자신도 그 부자와 별반 다를 바 없으면서도 나 자신에게는 어리석다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날 말씀을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합니다.

누가복음 12장입니다.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유산상속을 둘러싼 형과의 다툼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던 한 사람이 부탁합니다.

선생님, 내 형에게 명해서, 유산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어쩌면 온화하고 공정하고 믿음직한 예수님이시라면 형을 설득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권위를 이용해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자 우리 주님이 자신의 입장을 단호하게 밝히십니다.

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형제간의 일어난 재산 분쟁에 나를 개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리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어떻습니까?

이 말씀이 마음 판에 새겨지십니까?

그러면 여러분도 웨슬리처럼 회심의 때가 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맘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 말씀에 목숨걸고 살아가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온갖 탐욕을 가까이 하기 때문입니다.

없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탐욕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가사장삼에 사는 벼룩도 남아나지 않다는 말처럼 그 맛을 알기 때문에 탐심과 탐욕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그 소유의 넉넉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탐욕을 부리는 것입니다.

 

탐욕.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두 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첫째, 재화를 더 많이획득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만족을 모르지요.

둘째, 이웃들의 배고픔이나 고통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볼멘소리를 합니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쓰겠다는 데 누가 뭐래.’

하지만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고 사는 모든 것들은 공공의 것으로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이런 어리석음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시기 위해서 아주 적절한 비유 하나를 들어 주십니다.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우리가 이 비유에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영혼을 향한 어리석은 부자의 선언입니다.

또 하나는 그런 이의 생명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우선 어리석은 부자, 자기 영혼을 향해 무엇이라고 선언합니까?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는 자기 영혼을 향해 뻐기듯이 말합니다.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두었으니 이제부터는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보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자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님은 다른 선언을 하십니다.

두 가지인데 그 첫째가 20절입니다.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둘째는 21절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기는 하였지만 결국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없어지지 아니할 하나님은 붙들지 못하고 없어질 재물만 붙들고 있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

아마 이 말보다 무서운 말을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때 만일 그 부자가 회심해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었다면 어떠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왜 우리 주님을 만나고도 삶의 지향점을 바꾸지 못했을까요?

바로 내일에 대한 염려때문이었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리고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하는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고도 형의 재물을 탐하는 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쌓아두는축적의 욕구

내일 일을 예측할 수 없으니 축적이 꼭 나쁜 것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34절입니다.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래서 생겨진 초대교회 성도들의 별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염려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룰 수 있는 권세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생명과 하늘의 평안을 누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도 또 하나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도 부유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겨진 초대교회 성도들의 별명이 염려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바라기는 이런 축복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