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잠언 19장1-3 표리부동(表裏不同)

心貧者 2017. 5. 23. 11:37


표리부동(表裏不同)

잠언 19:1-32017/05/19()

19: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19:2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창세기 1장을 보시면 6일간의 창조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날 하나님은 빛을 제일 먼저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십니다.

둘째 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십니다.

셋째 날은요?

땅의 물을 한곳으로 모이게 하고 육지가 드러나게 한 다음 그 육지에 풀과 곡식과 나무들을 자라게 하십니다.

넷째 날 하나님은 궁창에 있는 광명 즉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십니다.

다섯째 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를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는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고 천지창조의 하이라이트인 사람 곧 남자와 여자를 지으십니다.

이것이 6일 간에 창조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그리고 누구를 염두 해 두고 이 모든 창조 사역을 하셨을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즉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 각자가 창조의 중심이자 목적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철없는 자식이 자기 부모 원망하듯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에게 왜 나를 지으셨나요?’ 하면 곤란해지는 것입니다.

 

창조와 관련해서 하나 더 묻겠습니다.

천지창조의 중심과 목적이 사람이라면 그 지음 받은 사람의 중심과 목적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도,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자연도,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도 아닌 이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특별하게 여겼던지 피조물 인간과 언약의 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이라는 주제 속에서 풀어 나간 책이 Old Testament구약성경입니다.

내용을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입니다.

노아(1-11장 원역사)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12-50 족장사)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지요.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신약은요?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됩니다.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모든 관심과 초점은 오직 자기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 여러분 손에 들려진 성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됩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바울의 따르면, 한 사람 곧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 온 이후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바울은 불의라고 표현합니다.

불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의(언약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건은 곧 언약의 관계를 회복하는 믿음이 된 것입니다.

를 이루는 믿음이지요.

이것이 바울 신앙의 전부이고 바울 신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721-25절입니다.(새 번역 성경)

7: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7: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7: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7:24 ,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을 깊이 있게 고민한 사람은 바울만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부 어거스틴도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 존 웨슬리도 모두 같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 모두가 동시에 깨달아 내린 결론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대속의 은총입니다.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8: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8: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 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8: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문제는 85절입니다.

대속의 은총을 이야기 하면서도 또 성령을 따라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성령에 속한 것즉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생명의 존귀함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들처럼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회칠한 무덤이라는 비난에서 자유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이지요

음흉해서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 엄청난 모욕 앞에서 우리가 서 있게 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전혀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묵으며 묵을수록 교회 안에서 높아지면 높아질수록돈과 자리와 제 이름값만 탐하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생명 존중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교회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

이 거짓의 심각성을 일깨워 분이 계십니다.

바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3 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 191절입니다.

19: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9:1 거짓말을 하며 미련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가난해도 흠 없이 사는 사람이 낫다.

 

하나님을 속여 가며 미련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가난해도 흠 없이 그리고 거짓 없이 사는 사람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동의하시는 지요?

 

예루살렘 바이블은 191입술이 패역하고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표리부동이지요

그래서 다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삶을 사는 미련한 사람보다는 가난해도 좀 부족해도 거짓 없이 사는 성실한 사람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이런 권면을 합니다.

19:2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요?

그래서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19:2 지식이 없는 열심은 좋은 것이라 할 수 없고, 너무 서둘러도 발을 헛디딘다.

 

열심참 좋은 성품이자 귀한 기질입니다.

하지만 지식이 없는 열심은 자기 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신앙 공동체에게 해악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서둘러서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삶이 표리부동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먼저 묻고 또 물으라는 것입니다.

계시의 산물인 성경 속에서 묻고 또 물으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가르침입니다.

자꾸 비열한 핑계를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표리부동, 신실하지 않은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천만가지의 핑계입니다.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습니다.

19:3 사람은 미련해서 스스로 길을 잘못 들고도, 마음속으로 주님을 원망한다.

 

표리부동의 책임, 누구에게 있습니까?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도 누구에게 핑계를 돌인다고 합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십일조 때어 먹고 주일 범하는 것이 죄 중에 죄로 여기는 여러분들의 신앙을 볼 때 마다 참 순수하다는 생각을 늘 갖게 됩니다.

또 목사 말을 하나님 말씀처럼 여기는 것을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갖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행실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죽을 죄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기 정욕대로 살아가는 표리부동

그 거짓 된 삶이 죽을 죄라고 인식하는 분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처럼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답게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실신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가운데 더욱 많아졌으면 더욱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