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한 사람이다
로마서 5:12-15절 2017/05/14(부활절 5주)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난 아담과 하와, 그들과 늘 함께 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죄’라는 그림자입니다.
바울의 설명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12절을 보겠습니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첫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한 사람이란 아담을 가리킵니까 아니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하와를 가리킵니까?
그렇습니다.
아담입니다.
하와 아니라 아담이라는 점에 여러분들이 꼭 주목하셔야합니다.
왜냐하면 형제, 타인의 죄는 그 한 사람의 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죄의 연대성이지요.
둘째, 바울은 말합니다.
그 한 사람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망 곧 죽음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 정원에서 내어 쫒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셋째, 바울의 결론입니다.
따라서 그 한 사람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결정된 모든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사망, 곧 죽음의 지배를 ‘모든 사람이’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은 분이 딱 한 분 있었습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나사렛 사람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바울이 강력하게 거부했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고, 그 분을 땅 끝까지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종이자 사도가 된 것입니다.
사망, 곧 죽음의 지배로부터 유일하게 해방된 분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첫 사람 아담을 지으셨을 때 기대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복의 근원’이자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다른 피조물이 가질 수 없는 두 가지의 복을 얻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는 복을 얻게 하십니다.(창1장27절)
둘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뿐만 아니라 땅을 정복하고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창1장 28절)
그런데요.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이 두 가지의 기능이 완전히 망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시쳇말로 말하는 ‘사탄의 권세’ ‘어둠의 권세’ 아래 놓이기 되었는데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땅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한 사람의 죄는 그 한 사람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그 한 사람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도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입니다.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피조세계 곧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자연이 왜 망가집니까?
하나님이 지은 세계를 하찮게 여기는 한 사람
그 탐욕스러운 인간의 죄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4대강 사업을 보십시오.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길을 막아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른 인간의 탐욕이 결국 ‘녹조라떼’와 ‘생태계 파괴’라는 저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둘째, ‘선한 양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선한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양심의 법’이지요.
‘율법’과 함께 주신 또 ‘하나의 법’입니다.
그래서 양심에 좀 거리끼는 일만 해도 본능적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아담, 한 사람의 원죄로 인해 그 기능이 다 망가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이 사라지고 ‘자기 합리화’ ‘자기 핑계’ 그리고 나만 이해해 주고 나만 대접해 달라는 ‘뻔뻔함’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 가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입니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자를 그리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쳐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지요.
더 한심하고 실망스러운 것은 그 어떠한 반성도 없는 가인의 후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이런 악한 행실들이 멈추지 않고 이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입니다.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방금 읽은 말씀은 가인의 후예 중에 한 사람인 ‘라멕’이 흥얼거린 노랫말입니다.
그는 두 아내 ‘아다’와 ‘씰라’에게 자신의 악한 행실을 숨기기는커녕 떠벌리듯 자랑하며 의기양양하게 노래합니다.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창세기 4장 23-24절입니다.
‘아다와 씰라는(라멕의 아내들이지요)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은, 내가 말할 때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 남자를 내가 죽였다.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이 없지요.
‘자기 합리화’ ‘자기 핑계’ ‘뻔뻔함’ 그 자체입니다.
더욱 한심하고 암담한 것은 대통령 후보였던 어떤 분처럼 폭력을 자랑스레 떠벌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가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셋째 한 사람의 죄로 말마 암아 망가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황폐함’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 흥분된 마음으로 수르 광야로 들어가게 됩니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던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이런 노래로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15장 1-18절까지 인데 그 중에서 1-6절까지만 읽도록 하겠습니다.
15: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15:4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15:5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15: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면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사흘 길을 걷게 됩니다.
‘광야부흥회’지요.
그런데요.
그들이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 속으로 들어가 만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라’입니다.
‘마라’란 ‘쓰다’ ‘고통스럽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고생’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입니다.
15: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15: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3절 각주 1번을 보시기 바랍니다.
밑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습니까?
‘쓴 것’입니다.
이처럼 아담 한 사람의 범죄는 그 인생이 마감되는 죽음의 심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아담과 아무 상관도 없는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둘째, 가인의 후예처럼 악한 행실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양심이 사라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셋째, 구원의 은혜 속에서 사흘 길을 걷고도 ‘마라’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은 사망의 그늘들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12절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바울은 자신의 죄를 거부하고 인정하려하지 않는 이들을 향하여 한 가지 사실만은 꼭 인정하라고 요구합니다.
바로 내가 그 한 사람의 후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죄를 들어오게 한 그 한 사람, 아담의 후손임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아담.
창세기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인물이지요.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하지만 아담이라는 이름이 '흙'을 뜻하는 '아다마'에서 유래된 것을 생각해보면 그는 모든 인류를 뜻하는 인물이자 우리 모두를 상징합니다.
그러니 죄 아래 있는 우리가 둘째 아담이라고 해서 크게 무리될 것이 없다는 것이 바울의 설명입니다.
계속되는 바울의 설명입니다.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5: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5:14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율법 양심의 법)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담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14절,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양심의 법을 통해서는) 원죄와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는 진실입니다.
물론 율법과 양심의 법이 아주 무익한 것은 아십니다.
롬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계속해서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이처럼 죄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율법이고 양심의 법입니다. 문제는 율법과 양심의 법이 훌륭하고 귀한 것이지만 우리 속에 뿌리 깊이 자리한 죄 즉 한 사람의 원죄를 없애주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죄와 사망의 지배로부터 벗어 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목숨 걸고 평생 동안 질문을 던졌던 분들이 바울, 어거스틴, 루터, 웨슬리입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공통적인 해답이 오늘 본문의 결론인 15절입니다.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 세상에 생명이 유입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Incarnation’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느 누가 망가진 땅, 고장 난 세상을 고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양심을 저 버린 세상을 향해 복음의 쓴 소리를 외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마라’의 신음으로 가득한 이들을 향해 위로와 평안의 인사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바로 우리 한사람 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넘치는 은혜와 하나님의 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그 한사람 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깊은 일치를 갈망하고 또 늘 그분과의 접속을 유지하며 살기를 소원하는 그 한사람 한 사람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이 쓴 장편시 ‘흰 손’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나는 영이로다, 참이로다, 생명이로다, 인격이로다.
내게 오는 자 참으로 오라, 영으로 오라, 자유로 오라.
맘을 다 뜻을 다 성품을 다 힘을 다한 사랑으로 오라.
내 사랑의 피 네(너는) 과연 믿고 왔느냐?
어디 보자, 내 앞에 서라, 하나씩 서라. 아들답게 똑 바로 마주서라.
내 아들 본 듯 너를 보마, 네 속을 보아주마."
얼굴을 들어라, 내 아들에 입 맞춘 네 눈동자를 보자.
손을 내밀어라. 그 피를 움켜 마셨을 그 네 손을.
그렇습니다.
문제는 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그 보혈을 움켜지고 마신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우리 교회는 그리고 우리나라는 참으로 생명으로 인격으로 그리고 자유와 사랑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언 19장1-3 표리부동(表裏不同) (0) | 2017.05.23 |
---|---|
마태복음 7장 13-14 웨슬리의 산상설교 11 (0) | 2017.05.23 |
베드로전서 1:17-23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0) | 2017.05.10 |
데살로니가전서 5:19-23 신앙을 유지하는 길 (0) | 2017.05.07 |
마태복음 7장 1-12 웨슬리의 산상설교 (0) | 2017.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