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본받을까?
빌립보서 3:17-21절 2016/4/3(주일)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잘 아는 전래 동화 중에 '해님 달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깊은 산골에 홀로 된 엄마와 함께 사이좋은 오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했던 엄마는 날마다 부자 집에 일하러 갔다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그렇게 홀로 된 엄마가 힘든 일로 채운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오지 않은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루 품삯으로 받은 떡을 가지고 돌아오다가 호랑이를 만나 다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잡아먹혔기 때문입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랑이의 이 뻔한 거짓말에 순진한 엄마가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호랑이의 배, 호랑이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엄마의 옷을 걸쳐 입은 호랑이는 오누이가 사는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럴싸한 목소리를 꾸민 채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엄마가 왔단다. 얘들아 문 좀 열어줘’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챈 오누이는 재빠르게 뒷마당 우물가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얼마나 욕심 많은 호랑이였던지 도끼 구해오더니 나무를 찍어가며 따라 올라갔습니다.
그 때 오누이는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립니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그러자 하늘로부터 굵은 동아줄이 내려와서 그 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호랑이도 질세라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 나에게도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그렇게 해서 동아줄을 잡고 오누이를 쫒았지만 그것은 썩은 동아줄이어서 얼마 못가 줄은 끊어졌고 결국 호랑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반면 하늘에 올라간 오누이 가운데 오빠는 달님이 되고 동생은 해님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같지만 사실 이 동화에 등장하는 제 욕심껏 자기 배만 불리는 호랑이는 백성들의 가난한 삶은 아랑곳하지 않는 가혹한 관리들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는 동화입니다.
자기 배만 생각하는 지도자, 그들은 항상 거짓과 폭력입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들은 한결같은 이 거짓말과 폭력으로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도 역사가 주는 교훈을 뒤로하고 세상의 정치가를 존중하며 그 정치가의 입만 보고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토록 왕을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람을 이 땅의 지도자로 허락하지 않았는지를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어디에도 욕심 없는 정치가, 지도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변화.
세상의 변화는 정치가의 말이나 약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겸허히 무릎 꿇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부활 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부터 강단보가 흰색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여기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습니다.
영광 받으신 우리의 유일한 왕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공포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왕, 그리스도, 메시야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땅에서 누구를 본받아야 할지 잘 분별해야합니다.
썩어질 사람인지 생명의 그리스도인지?
오늘 본문을 보시면 사도 바울이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휘둘린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다소 격양된 어조로 말을 시작합니다.
어찌 보면 아주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는 말인데 이렇게 말합니다.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그리스도의 본이 된 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함께 살아가는 나의 동역자들, 그들의 삶을 너희들이 눈여겨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어떠했는지, 우리의 행실이 어떠했는지 너희들이 제대로 판단하고 분별해 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또 교회의 스승으로써 얼마나 힘이 넘치는 말인 줄 모릅니다.
이런 바울의 자신감,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울이 두 가지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빌립보교회가 어려움을 당해 분란을 겪고 있는 이유는 거짓교사의 그릇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그 거짓 교사의 가르침과 다른 확실한 증거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그는 거짓 교사와 달리 십자가를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란 철저한 자기 부정, 자기 희생을 말합니다.
죽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 욕심이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거쳤다는 말은 곧 자기 욕심과 싸워 이겼다는 말이 됩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바울의 고백을 보시기 바랍니다.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소위 율법의 ‘의’라고 하는 것들 예를 들자면, 이스라엘이라는 선택된 족속, 베냐민지파라는 혈통 그리고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라는 언약의 기업, 그리고 언약의 증표로서의 할례 등 이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자기 부정 자기 희생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고백이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옵니다.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처럼 바울은 예수 십자가로 말미암은 자기 희생 자기 부정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닫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나를 본 받으라.’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 바울이 이렇게 강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거짓 교사와 달리 부활을 경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생명입니다.
물론 바울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현장 속에 있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직접 목격한 사람이 아니지요.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심장을 띄게 하는 부활의 생명입니다.
로마서 8장입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서 ‘너’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실은 부활의 생명을 경험한 바울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생명의 법과 성령의 법이 바울을 지배했기 때문에 바울의 삶은 거짓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를 본 받으라.’
결코 오만한 말이 아닙니다.
만일 바울이 말만하고 하고 가르치기만 즐겨했던 바리새인과 같은 선생이었다면 그의 진정성을 의심해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믿는 바와 자신의 삶을 일치시킨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를 본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울의 말은 오만이 아니라 사랑의 권면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랑의 권면을 통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라는 것 3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복음에 대한 확신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그 복음의 위대한 능력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의 할례를 통하여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여기에는 좀 오해의 소지가 있고 설명이 필요해서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3:2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지금 빌립보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은 '율법주의'를 신봉하는 유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죄 사함의 증표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증표로 몸의 할례를 아주 집요하게 주장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빌립보 교회에 속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몸의 할례를 꼭 받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삶을 거치고 부활의 생명을 품은 바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몸의 할례, 그 눈에 보이는 증거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인 ‘부활의 생명’입니다.
개역개정보다는 새 번역이 이해하기 쉬어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3:2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3:3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우리들이야말로,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3:10 내가 바라는 것은, ①그리스도를 알고, ②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③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④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3: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⑤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다시 정리합니다.
십자가의 복음, 그 복음의 능력 속에 들어가 부활의 생명을 소유한 이들의 특징 5가지입니다. 특히 순서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①그리스도를 알고,
②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③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④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⑤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삶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리스도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19절에서 그리스도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일로 지적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불신앙의 사람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
그 복음의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마침은 곧 멸망이니 그들 가운데 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자기 배 곧 자기 몸을 신으로 여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땅의 것으로 자기 배만 채우는 세속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우리 배에, 우리 몸 안에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성령이지요.
요한복음 7장입니다.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런데 성령이 있어야할 그 자리에 자기 영광, 자기 욕심, 자기 인생으로 가득하다면 그것은 곧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세 번째 권면입니다.
천국의 시민권을 소유한 자답게 천국백성의 삶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비록 지금은 우리의 몸이 그리고 우리의 삶이 비천하지만 그 비천함만을 보지 말고 장차 변화될 영광의 몸을 보라는 것입니다.(새번역)
3:20 그러나 우리의 8)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는 '나라'
3:21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을 앞둔 늙은 사도가 마지막으로 눈물을 흐리면서 한 유언과 같은 말씀들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여권(패스포드)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한민국이라는 패스포드이고 또 하나는 천국이라는 패스포드입니다.
이 중에서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꼭 소유해야할 패스포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천국의 여권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천국의 여권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일을 멈추십시오.
'세상이 다 그런 데 뭘?'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이 거짓말에 이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말씀, 그 진리의 말씀과 그 생명의 말씀을 만날 때마다 자기가 깨지는 경험을 하십시오.
그래야 오늘 본문의 결론인 21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낮은 몸이 우리의 천한 몸이 영광의 몸 곧 부활의 생명을 얻는 그 영광의 자리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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