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4:12-22 그늘에 비추어지는 빛

心貧者 2016. 2. 20. 10:31


그늘에 비추어지는 빛

마태복음 4:12-222016/2/14(주일오후)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 받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았다.’

예수님이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임을 마귀로부터 검증 받았다는 말입니다.

 

마귀가 찾아와 말합니다.

3 시험하는 자(여기서는 마귀를 뜻함)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흔하고 흔한 것이 돌입니다.

그런데 그 돌들로 사람이 먹고 배부를 수 있는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그 옛날 모세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만나를 통하여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 곧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했던 것처럼 너도 그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시험입니다.

시험이 자 곧 마귀가 이번에는 들판이 아닌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갑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전이지요.

예루살렘 성전 가장 높은 꼭대기에 세워 놓고 말합니다.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9111절과 12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처럼 정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 곧 천사들을 보내서 손으로 너를 받아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니 그렇게 한 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세 번째 시험입니다.

지극히 높은 산에 올라가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네 발아래에 있는 천하만국을 봐, 이 세상을 지배하는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네가 이 모든 것을 줄게, 돌들을 떡덩이로 만들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능력, 그거 다 줄께

 

저는 이 마귀의 시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모세처럼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 자기 드러남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처럼 자기 부인의 길을 갈 것인가? 입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므리바에 이른 모세가 자기 백성들에게서 이런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물 없는 이곳에서 당장 물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 때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아주 보기 좋게 시험하는 자들에 시험을 당합니다.

민수기 20장입니다.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자기 손에 들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는 것을 통하여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능력,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 결국 그렇게 원했던 가나안 땅을 보기만 했지 들어가지는 못하게 됩니다.

비극이지요.

 

반면 마귀의 시험 속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무능력하리만큼 그 어떠한 행동도 행하지 않습니다.

정말 바보같이 아무 움직임도 행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검증의 대상, 시험의 대상이 아닌 경배의 대상 찬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이 땅이, 이 거짓된 세상이 검증할 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이처럼 마귀의 시험을 통해 더욱 확고해진 사실 하나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마귀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시험 곧 검증의 대상이 아닌 믿음 곧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공고한 입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마귀에 시험 받은 이 사건을 성령의 역사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서로 공존할 수 없는 두 주체가 등장)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바로 그 때 마태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세례 요한이 큰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던 그 무렵.

세례 요한은 헬롯 왕의 군대에 의해 요단강에서 체포당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

당시 세례 요한은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돈으로도 매수할 수 없고 자리로도 매수할 수 없는 아주 별난 사람이었습니다.

분봉 왕 헤롯 안티파스가 그를 탐탐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그가 지금 자기 백성들을 요단강에서 선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모욕당하고, 천대받고, 억압당하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던 백성들 속에 잠들어 있던 혼과 영을 세례 요한이 깨웠기 때문입니다.

시인 신동엽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의 머리를 뒤덮고 있던 무지의 쇠항아리를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굳이 무지한 백성들이 알 필요도 없는 것들을 알게 하는 선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을 가만두고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분봉 왕 헤롯 안티파스가 자신의 군사를 동원해서 세례요한을 요단강에서 체포해 가두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시점에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십니다.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갈릴리.

여기서부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생애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이 출애굽의 완성과 연관된 요단강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를 시도했다면, 예수님은 갈릴리라는 변방에서부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갈릴리 중에서도 갈릴리 북서쪽에 있는 도시 가버나움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가버나움.

그곳은 어부들의 마을입니다.

그리고 다메섹에서 가이사랴를 거쳐 애굽에 이르는 해변 무역 도로(via maris)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관도 있었고, 로마군의 수비대도 주둔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같은 어부 제자들과 세리 마태를 부르신 곳이 바로 그곳이고,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8:10)는 칭찬을 받았던 백부장이 주재하고 있던 곳도 바로 이곳 갈릴리 가버나움입니다.

 

갈릴리에서 그래도 돈이 제법 도는 마을이 가버나움입니다.

하지만 헤롯 안티파스에게 막대한 세금을 내야 했고, 로마의 군인들에 의해 시도 때도 없이 수탈을 당했기 때문이 그 삶은 오히려 더 어려웠고 더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로 우리 주님이 나사렛에서 이사한 것입니다.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당시 가버나움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했던지 마태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해서 가버나움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가버나움.

그곳은 흑암에 앉은 백성이 있는 사망의 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요.

흑암의 땅, 사망의 땅 가버나움에 예수님이 정착하지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아십니까? 다시 16절입니다.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그곳에 정착하자 큰 빛 곧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품은 예수님의 첫 설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설교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회개하라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러분 회개가 무엇입니까?

돌이킴입니다.

뉘우침과 아울러 삶의 방향을 바꾸는 행동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왔던 삶에서 하나님을 마주보며 사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다른 이들을 다 주변화 시키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다른 이들의 아픈 사정을 헤아리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가능성에 의지하여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의지하여 살기로 다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 볼까요?

옷 두 벌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 먹는 것입니다.

군인들은 누군가를 강압하여 자기 이득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리들도 정한 것 이외에 더 거두지 않는 것입니다.

탕자처럼 자기의 죄와 무능 그리고 비참한 형편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무인정한 것입니다.

삭개오처럼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를 처서 갚아주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말처럼 우리의 돈 지갑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회개를 합니까?

왜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긍휼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드디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 과 전혀 다른 삶, 회개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가버나움, 그곳에서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입니다.

아무리 물고기를 많이 잡아도 헤롯 안티파스처럼 힘 있는 사람들에게 수탈당해 평생 가난뱅이로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물고기를 많이 잡아도 신나거나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시대의 모순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이지요.

그런데요.

그들이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됩니다.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 우리의 형편을 봅시다.

어쩌면 우리 삶의 자리가 그늘진 땅 가버나움입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지만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소망을 꿈꿀 수도, 품을 수도 없는 어둠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조국의 청년들은 그 땅을 헬조선이라고 말합니다.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빛으로 오시면 그늘진 땅 어둠으로 가득한 인생도 사람 낚는 어부 곧 주님의 제자가 되는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늘진 이 땅에서도 절망으로 가득한 이 어둠의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살아가는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믿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