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
로마서 13장 8-10절 2016/1/27(수)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이 사랑의 빚입니다.
아무리 강조하고 강조해도 모자란 것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교회는 사랑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사랑을 모티브로 하는 교회 이름이나 사람의 이름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 도대체 바울은 지금 어떤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대속의 사랑입니다.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그 죄 값을 대신 갚아 주시려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 바로 대속의 사랑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것 역시 사랑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고 원수 되었던 인간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랑, 오늘도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이루기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지키시고 일깨워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사랑입니다.
제가 일 년 동안 하는 설교의 횟수를 헤아려보면 약 100편정도 됩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항상 주안점을 두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깨달음 곧 아는 것과 그리고 실천입니다.
알아도 좀 대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자면, 내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내가 다시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거듭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2015년 전반부까지 깨달음에 치중을 했다면, 2015년도 후반부부터 지금까지는 실천에 치중하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과부와 고와와 나그네에 대한,
강도 만나 이웃에 대한,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원수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것을 제가 매 설교마다 지나치리만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가르침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 복음의 내용이고 바울 사도가 교회에 가르쳐 준 하나님의 복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8절과 10절입니다.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
이타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에 대한,
강도 만나 이웃에 대한,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원수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랑만이 율법의 완성 이라고 말합니다. 율법, 곧 하나님 말씀의 완성입니다.
율법의 완성, 이것은 바울뿐만 아니라 예수님시대 모든 유대인의 고민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이나 옛날이나 종교적 가식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인 사랑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민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 그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바울은 철저할 정도로 율법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 11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빌립보서 3장입니다.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을 빌린다면, 율법의 의라는 잣대 그 기준으로 보면 바울 자신은 흠이 없는 자입니다.
성문율법 곧 모세 오경에 나오는 규례와 법도와 명령뿐만 아니라 모든 절기와 제사의 규정까지 철저히 지켰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전 율법인 ‘미쉬나’ 곧 장로의 전통까지 잘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을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알 수 없는 한계점에 부닥친다는 것을 바울이 깨닫게 됩니다.
율법의 한계입니다.
바로 거듭남의 삶, 속사람의 변화입니다.
경건(의)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의 능력을 보유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본 것입니다.
육체의 할례를 행하고 금식과 구제와 기도, 다 해보았지만 속사람의 거듭남, 속사람의 경건, 속사람의 의를 맛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라는 언약, 그 약속의 증표는 받았지만 아브라함의 씨로서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핵심 율법의 한 축인 이웃 사랑의 능력은 좀처럼 삶 속에서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 속에서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좀 쉽게 풀어 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곧 종교적인 행위들은 어느 정도는 문제 될 것은 없지만 문제는 눈에 보이는 이웃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의 행위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 보따리 내 놓으라는 격으로 오히려 악으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힘이 빠지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잘한다고 되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겉 사람은 율법의 사람인데, 여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아직 속사람은 율법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완성 곧 ‘남’을 향한 완전한 사랑은 불가능한 일인가?
그 깊은 영적 갈망 속에서 만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이들 곧 죄인들을 위해 스스로 멸시 천대의 십자가를 지신 분,
본체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고통의 몸을 입고 오신 분,
자신을 조롱하고 핍박하는 이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진실하게 기도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 대속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그 사랑의 실체와 그 실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10절까지의 말씀을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13: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13:9 1)"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2)"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출 20:13-15; 17; 신 5:17-19; 21,레 19:18)
13:10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사랑의 실천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사랑의 빚을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에게 매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은혜 아니며 나 서지 못하네’ 복음성가 가사입니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놀라운 사랑 그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두 번째,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웃이란 내 눈 앞에 있는 이웃을 말합니다.
하루는 바리새인이 묻습니다.
‘율법의 따르면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데, 그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 때 우리 주님이 비유하나를 들어 말씀 하신 것이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입니다.
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처럼 강도만난 사람이가 우리의 이웃이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강도 만나 자의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율법의 완성, 이것은 바울만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를 언급한 원조는 따로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지요.
마태복음 5장 17-20절입니다.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지극히 작은 것 하나’가 바로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에 대한,
강도 만나 이웃에 대한,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원수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입니다.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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