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창세기 32: 22-32 야곱의 기도

心貧者 2016. 1. 19. 12:02

야곱의 기도

창세기 32:22-322016/1/15()

 

얍복강에서 드린 야곱의 기도는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성경의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설교의 단골메뉴이지요.

그만큼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알기는 잘 아는데 잘못 알려졌고 그리고 잘못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이렇게 가르치고 이해합니다.

응답받는 기도, 능력의 기도란 무엇인가?

야곱처럼 하나님과 끈질기게 겨루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응답 받는 기도, 능력의 기도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기도의 정석이니 당신도 문제라는 나무를 붙들고 야곱처럼 씨름하듯 기도하면 그 문제의 뿌리가 뽑히는 능력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상당히 근사하고 매력적이지요.

저 역시 이런 종류의 설교 수십 번 들었습니다.

한 때는 야곱처럼 하나님 대신 나무와 씨름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도하는 습관 그리고 기도를 오래하는 모양새는 가지게 되었지만 야곱처럼 하나님을 뵙지는 못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 우리가 기도한 시간과 열정을 한 번 따져봅시다.

어때요?

불경한 이야기지만 사실 하나님께 좀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한 문제를 놓고 1020, 심지어 30년 기도했는데, 어떻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에 앞서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한번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했던 야곱은 20년 만에 큰 부자가 되어 이삭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성공했지요.

거기다가 처자식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큰 가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에게 큰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형 에서이지요.

장자 권을 빼앗기고 아버지의 축복마저 동생에게 빼앗긴 형 에서.

그 형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가 문제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좋은 감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렸지만 세월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야곱의 문제였습니다.

 

궁리 끝에 야곱이 꼼수를 부리지요.

미리 사람을 보내어 분위기를 살펴본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형 에서가 동생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게 됩니다.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궁리 끝에 또 꼼수를 부립니다.

자신의 제물과 가족을 세 떼로 나눕니다.

그리고 한 떼마다 형의 감정을 풀만한 뇌물을 따로 마련해 종들에 손에 맡깁니다.

그렇게 해서 한 떼, 두 떼, 세 떼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두 아내와 두 여종 그리고 그 밑에서 난 열한 아들을 먼저 얍복강을 건너보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야곱, 오직 자신뿐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야곱은 아주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24절입니다.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참 희한하지요?

씨름이라니요?

당시 씨름이란 양이나 염소를 치는 목동들이 자신의 힘을 키우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했던 놀이입니다.

그런데 동이 틀 때까지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씨름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어떤 사람이 야곱을 붙잡고 씨름한 것이지 야곱이 어떤 사람을 붙잡고 씨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의 정석처럼 하나님 붙들고, 문제 붙들고 씨름하라는 말은 본문의 내용과 맞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을 붙잡고 씨름한 이는 누구일까요?

사람인가요? 악한 귀신인가요?

희한한 것은 야곱을 붙잡고 씨름한 이가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도 이지기 못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급한 마음에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어떤 이입니다.

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이제 그만 하자는 것입니다.

 

그 때 야곱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옵니다.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야곱의 갈망, 야곱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사실 야곱 자신도 지금 자신과 씨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경험상 분명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일 수도 있다는 갈망과 믿음입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에게 구하듯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도에 대한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합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축복을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누구에게요?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긍휼과 자비가 넘치시는 하나님에게 입니다.

제 욕심을 채우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그 은혜를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기도의 본질이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왜 이름을 물었을까요?

그렇습니까?

그 이름을 불러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축복하신 것처럼 야곱을 이스라엘로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기도할 때마다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야곱처럼 제 이름이 불려 져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합니다.

정말 축복받기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제가 부른 이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축복을 받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를 축복하고 교회 성도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면서 축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부른 이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이것이 목사로서 주어진 제 직분입니다.

 

29절 봅시다.

야곱이 요청합니다.

32: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왜요?

축복 하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게신 이,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려주지 않고 그 이름을 묻는 야곱을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29절입니다.

32: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비로써 야곱은 자신과 씨름한 이가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무엇으로요?

축복하심으로, 구원하심으로 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정말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절망하고 낙심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찾아와 우리를 붙들고 씨름하십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 마저 하나님이 냉정하게 치십니다.

마치 야곱의 허벅지 관절처럼 마지막으로 힘을 지탱하고 있는 그것마저 하나님이 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야곱처럼 진심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갈망하며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요?

내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진짜 축복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소떼와 양떼가 아니라 아내들과 자식들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붙들리는 진짜 축복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한 것처럼 진짜 축복의 삶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축복의 삶을 허락하십니다.

30절입니다.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벧엘에서는 꿈에 하나님을 뵈었지만, ‘브니엘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