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비
로마서 11장 25-36절 2015/12/16(수)
가끔 저에게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성경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없는 분 같아요.’
어떻습니까?
그렇게 보이십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사실은 아닙니다.
사실 여러분처럼 저도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다만, 먼저 준비하고 공부해서 성경을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것입니다.
부족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뜻이나 정신이 담긴 글이 아니라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이 땅에 유일하게 계시한(사람들에게 나타난, 증거 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영)을 보이는 것(몸)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해석은 더 어렵구요.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말씀을 묵상할 때 늘 세 가지의 질문을 던집니다.
혹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닌가?
혹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 잘못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세 가지의 질문을 늘 염두 해 두고 세심하게 말씀을 준비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아는 말씀보다 모르는 말씀들이 허다합니다.
아직까지도 제가 이해하지 못한 감추어진 진리의 말씀들이 성경 안에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경우 목회에 있어서 가장 큰 부담은 설교입니다.
설교자로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꽤 큰 고역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것은 그 감추어진 진리의 말씀을 찾았을 때의 기쁨.
그 기쁨이 저에는 날마다 샘솟기 때문에 성경 연구와 가르치는 일 곧 설교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지요.
설교는 은혜입니다.
제가 이렇게 서두에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기록된 25절 26절 27절에 대한 말씀의 해석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우선 어떤 내용인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11: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 본문의 해석이 어려운 이유는 25절에 등장하는 ‘신비’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예전 개역성경은 이것을 ‘비밀’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신비’, ‘비밀’
바울이 특별히 이 단어를 사용한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언약의 백성으로 택한 이스라엘에게 먼저 향해야 합니까?
아니면 언약도 모르고 할례도 모르는 이방인에게 먼저 향해야 합니까?
당연히 언약의 장자, 택함을 입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현실은요?
그러지 못합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 앞에서 강력하게 논증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열매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바울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인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방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바울사도에게 묻는 것입니다.
11장 1절
‘하나님이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을 버렸는가?’
여기에 대한 바울의 답은 시종일관 분명합니다.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요?
하나님을 믿는 이들 곧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하나님의 복음뿐만 아니라 그 복음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복음 즉 예수님이 나왔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순이지요.
전도자 바울을 보세요.
유대인 사울일 때 그를 핍박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후에는 핍박이 끊이지 않습니다.
누가 사도 바울을 핍박합니까?
이방인입니까?
아닙니다.
동족 유대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율법 속에서 파 묻혀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그리스도인들이 납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왜 이러한 일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용납하셨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용한 말이 ‘신비’라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문제’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이 행하고 있는 완악함의 문제’.
서로 상충되는 이 문제는 ‘이해’의 부분이 아니라 ‘신비’의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타난 현상만 보지 말고 그 현상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신비, 그 비밀의 진실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을 푸는 열쇠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신비는 무엇인가?
다시 25절입니다.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택함을 입은 이스라엘이 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완악한가?
장자 이스라엘이 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우둔한가?
그 이유는?
바로 이방그리스도인들 너희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수가 충분히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더러는 우둔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주의 하십시오.
이스라엘 전체, 이스라엘 모두가 아닙니다.
‘더러는’입니다.
‘더러는’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그리스도인들이여! ‘스스로 지혜 있다.’
그렇게 잘난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더러는’ 완악해서, ‘더러는’ 우둔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저 버린 사람도 있지만 이스라엘 전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방그리스도인들,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너희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언약의 신비가 있다는 것을 결코 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25절 후반부와 26절 그리고 27절의 내용입니다.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11: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경건치 못한 야곱을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바꾸신 것처럼 지금 경건치 못한 이스라엘의 완악함 그 무지를 하나님의 주권(강권)으로 반드시 돌이켜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 그대로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의 구원입니다.
27절에 말씀처럼 하나님의 언약은 온 이스라엘의 죄를 사함으로 반드시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상기해야할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특히 당시 이방그리스도인들처럼 먼저 구원받은 자가 범하기 쉬운 오만과 편견 그리고 배타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이 기억해야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로마서 9장 15절과 출애굽기 33장 19절입니다.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말 속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구원이든 택한 백성 선민 이스라엘의 구원이든
구원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열심이나 사람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의 복음이 너희 이방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행은총, 곧 먼저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그 은혜가 아니면 너희도 다 멸망의 대상 심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주장입니다.
11: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이방그리스도인들, 그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지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부분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 복음에 있어서 원수 된 이스라엘은요?
아직 그들에게 구원의 날, 회개의 날, 돌이킴의 날, 죄 사함의 날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2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긍휼의 날입니다.
그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방 그리스도인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구원받은 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심을 입은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9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사 곧 은혜로 구원 받은 자와 부르심 곧 택하심을 입은 사랑받는 자.
이 모두 긍휼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든 저런 방법이든 하나님의 후회가 없는 것입니다.
29절입니다.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사(은혜) 곧 믿음이나 이스라엘을 향한 부르심(택함) 곧 언약의 율법이나 서로 상치되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어떠한 하나님의 잘못도 후회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사 곧 은혜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나 다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11:3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11: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처럼 하나님의 긍휼 그 자체가 신비, 비밀이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 지혜의 깊음과 하나님의 지식의 풍성함을 알 자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구원에 있어서 꼭 기억할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믿음’이든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택하심, 언약의 율법’이든. 그 뿌리, 그 출발은 긍휼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 ‘ㄱㅇ파’처럼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순종하는가?
순종에 대한 의무와 책임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믿음’의 길이든 이스라엘의 ‘선민, 예정’의 길이든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이 베푸시는 긍휼하신 사랑 앞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가? 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런 말로 오늘 본문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11:34 22)"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주님의 조언자가 되었습니까?" 사 40:13(칠십인역)
11:35 23)"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욥 41:11
11:36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따라서 ‘이방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막을 자가 없다’
이것이 로마서 11장의 결론이며, 이스라엘의 구원과 관련된 9장 10장 11장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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