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5:1-12 복 있는 사람

心貧者 2015. 12. 6. 15:44

복 있는 사람

마태복음 5:1-122015/12/4()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5: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전한 하나님의 복음.

그 복음의 핵심이 가장 잘 요약된 곳이 오늘 본문의 팔복의 말씀입니다.

이 팔복의 말씀을 통하여 한해살이를 마감 짓는 노잣돈으로 삼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팔복의 말씀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오늘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들립니다.

아니, 좀 더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좋은 말씀이지요.

참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조금 낯설고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실현자체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이라고 말씀하신 것들 하나 하나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심령이 가난 한 자

우리 성경은 아주 멋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있어 보이지요.

미처 우리가 깨닫지 못한 좋은 뜻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사용된 가난이라는 그리스어는 포토코스는 사흘에 한 끼 먹기도 힘든 어려운 극빈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거지지요. 거지 중에서 상거지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

애통하는 자입니다.

슬픔을 늘 달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다음은요?

온유한 자입니다.

글쎄요.

온유한자가 대접받는 시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바보 취급받겠지요?

그 다음은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주리고 목마르다.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참 좋은 말씀들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항상 세상에서 손해 보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박해를 받는 자.

아무리 를 위한다고 하지만 고문당하고 멸시당하고 수치 당하는 일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 지속적인 행복의 길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팔복은 하나님과 접속된 사람곧 믿음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팔복은 하나님의 빛이 예수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굴절되어 나타난 여덟 가지 색깔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좀 뒤집어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요즘말로 금수저물고 나온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부모가 재력이 있고, 학벌도 좋고, 직장도 좋고, 인물도 좋다고 합시다.

그 때문인가요?

베테랑의 주인공처럼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안하무인으로 대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나로는 부자청년처럼 영적인 세계를 향한 눈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눈으로 보면 참 부러운 사람이지만 영의 눈으로 보자면 이 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반면 흙수저 인생은요?

자기가 선택한 길이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흙수저 물고 태어나고 싶겠습니다.

그래서 이 흙수저 인생은 늘 자기의 약함과 작음을 인식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전능하신, 그리고 나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영적인 세계 곧 천국에 대한 눈을 뜰 확률이 높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마음의 가난이 주는 힘이고 복입니다.

 

두 번째,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 또한 낯선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참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 여기 자기만족에 겨운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모든 것이 제 힘대로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아마 이런 사람에게는 하늘의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칭찬에 눈 먼 사람에게는 하늘의 위로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늘 한계에 부딪치는 사람은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은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작음 자신의 나약함을 알게 될 것이고 누군가가 자신의 노력을 위로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아시지요. 아시지요, 아시지요. 주님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하늘의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사람이란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말합니다.

사나움이 없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스스로도 편안하지만 다른 사람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는 곳마다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평안을 주기 때문에 온유한 자에게는 낯선 땅, 낯선 사람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유산)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이 여러분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사실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되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주림과 목마름은 견디기 어려운 원초적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사흘 굶어 도둑질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몇 끼만 굶어도 인생관이 확 달라집니다.

그만큼 무서운 것이 주림과 목마름입니다.

 

그런데 그 주림과 목마름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라면 우리 믿는 사람의 인생이 확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름 곧 채움의 역사 성령의 충만함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렇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고, 자비한 사람이 자비를 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이치입니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세상은 요지경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확정하여 말씀하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여섯째,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린다.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이 주신 본래 마음에 불순물이 끼지 않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윤동주의 서시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창문만이 깨끗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깨끗한 마음만이 비로써 하나님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일곱 번째,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절의 말씀처럼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면,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부름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입니다.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불의한 세상 속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

심령이 가난한 자처럼 그들도 천국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해와 가난, 가난과 박해항상 쌍을 이룹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길들입니다.

박해도 가난도 다 피하고 싶은 길입니다.

왜냐?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수 없는 것처럼 박해와 가난을 거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길을 찾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이고 이것이 복음의 신비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기회,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기회,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