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강해 11:11-24 이방인의 부르심과 이스라엘의 구원

心貧者 2015. 12. 3. 14:29

이방인의 부르심은 이스라엘의 소망이다

로마서 1111-242015/12/2()

 

오늘 본문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11장에 흐르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아야합니다.

로마서 11장의 주제가 1절에 나옵니다.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사람들이 묻습니다.

특히 로마에 사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바울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곧 그리스도의 예수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버리셨는가?

바울의 답입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의 길로 내버려 둘 무자비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관련된 일 하나와 그리고 성경에 증거 된 일 하나를 예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은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게 됩니다.

 

첫째 이유입니다.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111절 후반부입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열심으로 따지면 유대인 중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인 그리스도 예수를 핍박하는 일에 늘 앞서는 자였다.

하지만 지금 나를 보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 하나님 복음 전파에 열심인 자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5절의 말씀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 때 바알과 아세와 앞에서 무릎 꿇지 않은 자 칠 천명을 남겨 두신 것처럼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남은 자가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대한성서공회 120주년 기념회 초대를 받아 잠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는 한국교회가 공인하는 성경을 제작하고 반포하는 사업을 하는 초교파단체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바로 여기를 통해 다 거쳐 가게 됩니다.

주목할 것은 세미나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입니다.

대한성서공회 자료에 따르면 제작된 성서의 반포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하향곡선을 이루게 되었는가하면 ‘1992입니다.

그 이후 맥을 추지 못합니다.

성경을 찾고 읽는 이들이 줄어들었다는 반증이고 교회 역시 성장이 멈추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교회의 위기.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가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합니다.

교회세습, 헌금횡령, 성추문 등 분명 부흥의 걸림돌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관점은 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절의 말씀처럼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교회가 눈을 떠야 하는 것입니다.

 

부흥의 여정이라는 책을 쓴 김우현 kBS PD가 있습니다.

주로 다규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는 분인데 이 분이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흥의 불길이 다 사위어버린 잿더미들 속에서 혹, 오늘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흥의 불씨들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혹 타다 남은 그루터기들 속에서 부흥의 새싹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소망을 품고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일어났던 부흥의 여정을 따라 여행하게 됩니다.

20세기 부흥의 발화점인 1904년도 영국의 웨일즈로부터 시작해서 1905년 인도 카시아의 대부흥운동, 1906년 미국 아주사의 오순절 대부흥운동 그리고 1907년 평양의 대부흥운동, 1908년 만주(용정)대부흥운동까지 그 긴 여정을 영상과 글로 담은 책이 부흥의 여정입니다.

 

여기서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거룩한 부흥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잿더미가 된 그루터기들 속에서 부흥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외면했던 부흥의 불씨들이 타다 남은 잿더미 속에서 남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검증한 것이 부흥의 여정입니다.

 

이처럼 남은 자를 향한 부흥의 역사는 이스라엘도 예외일수 없습니다.

바울의 말입니다.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1: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1: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잿더미가 된 그래서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희망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배신자 이스라엘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완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그들 가운데서 남은 자를 찾고 있는가? 입니다.

왜 배신한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을 하나님은 끊지 않고 있는가? 입니다.

이것에 대한 바울의 설명이 11-14절입니다.

11절 후반부입니다.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하나님이 먼저 자녀삼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악하게 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배신자가 되게 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시기심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전도의 문이 닫히자 사도들이 택한 길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절입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부목 할 단어가 사마리아땅 끝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향한 전도의 문이 비로써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도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성령이 역사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 빌립

이집트(콥트) - 마가

중앙아시아 구르지아(조지아) - 안드레

안디옥 바나바

시리아(동방 인도) - 도마

터기 그리스 로마 스페인(서바나, 물론 이루지 못함)-바울

 

이처럼 유대인에게 닫혔던 전도의 문이 이방에게 열리자 시기심이 가득한 유대인들 중에 얼마가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남은 자가 구원에 역사에 참여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11: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우리가 누구인가?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 아닌가?

그런 우리가 왜 장자권을 이방인들에 빼앗길 수 있는가?

그럴 수 없지.‘

이러한 시기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얼마를 구원하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두 번째 요지는 이런 것입니다.

이방그리스도인이여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은 이방인을 들어 쓰시지만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들어 쓸 날이 곧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완악하게 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역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방그리스도인인 우리까지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 앞에서 교만하지 말라입니다.

 

다시 11-12절입니다.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1: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세상 곧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이스라엘 구원에 있어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우리가 잘나서 구원의 촛대가 이스라엘로부터 옮겨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구원 앞에서 겸손해야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배척하고 죽인 유대인들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그들을 판단하거나 심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히틀러 나치즘과 홀로(전체) 코스트(번제)’

 

세대(시대)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해석방법론 중의 하나인데 성경의 전체 세대(시대)7부분으로 나눕니다.

1.홍수 이전까지의 족장세대

2.노아세대

3.아브라함 세대

4.이스라엘 세대

5.이방인 세대

6.성령세대

7.천년왕국세대

 

1.무죄시대

2.양심시대

3.인간통치시대

4.약속시대

5.율법시대

6.은혜시대(교회시대)

7.왕국시대

 

1.이스라엘

2.로마

3.유럽

4.미국

5.한국

6.중국

7.다시 이스라엘

 

물론 성경의 시대를 이렇게 나눔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점도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 하는 구원의 믿음을 세대주의가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복음의 역사가 한국에 있다고 해서 한국 사람만 구원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구원의 역사가 유대인이 아니 이방인에게 있다고 해서 이방인에게만 구원에 역사가 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 앞에서 겸손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5절입니다.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이스라엘 속에도 남아 있으니 그 남은 자 이스라엘을 찾아가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스라엘 백성이 마지막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영광스러운 축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아름다운 결말입니다.

11: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바울은 이스라엘 구원에 있어서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 하나를 알려줍니다.

이스라엘의 버림이 결국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버림이 결국 에서와 같은 세상과의 화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떡덩이에 대한 예입니다.

율법에 따라 처음 익은 곡식가루로 만든 떡덩이를 만들어 하나님에게 살라 바침으로 그 후의 모든 떡덩이가 거룩하게 되는 것처럼 처음 익은 곡식 곧 이스라엘을 살라 바침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만들어진 떡덩이 곧 이방인들도 거룩하게 되는 화목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돌감람나무 가지와 참감람나무의 비유입니다.

17절입니다.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화훼 학으로 볼 때 이것은 틀린 정보입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접붙여야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 사실을 정말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일부러 그렇게 설명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입니다.

돌 감람나무 곧 못된 열매를 맺는 나무의 가지가 참 감람나무인 곧 좋은 열매 맺는 나무에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그 뿌리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아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이방인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에게 접붙임을 인해 그 뿌리인 하나님으로부터 은 영향을 받아 참감람나무 곧 이스라엘과 동일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이스라엘의 귀함을 잊지 말로 이로써 화목하게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구원은 분명히 실패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남은 자를 통하여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너희가 겸손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