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산다고 하는 것
요한일서 2:1-6절 2015/11/22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2: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오늘은 교회력 상으로 성령강림절 후 마지막 주일이며, 왕국주일입니다.
강대상보가 무슨 색으로 바뀌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흰색입니다.
백 보좌 심판 날을 의미하기도 하고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왕국, 통피)의 임재, 도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광, 빛의 색, 흰색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신 성탄주일 그리고 죄와 사망에서 부활하신 부활주일에 흰색 강단 보를 거는 것입니다.
교회력은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일생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교회의 일곱 절기,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1)대강절부터 시작해서, 2)성탄절, 3)주현절, 4)사순절, 5)부활절, 6)성령강림절 그리고 성령강림절 후 마지막 주일인 오늘이 7)왕국주일입니다. 영어로는 Kingdom- tide라고 합니다.
이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하나님 나라 주일(절기)’이 됩니다.
특별히 왕국주일을 하나님 나라 주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령 강림의 최종 목표가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왕국주일인 오늘은 교회력 상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이면서 동시에 이 예배 역시 마지막 예배인 셈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현실을 보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사실, 고민이 좀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 보통 우리가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하늘나라, 장소의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그렇게 이해해도 좋습니다.
또 하나님 나라를 통치 곧 존재의 개념으로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 그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꿈속에서 또는 환상 속에서 천국을 보거나 또는 임종 후에 천국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럴 수 있지요.
이성으로 감지할 수 없는 신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체험하는 곳이 아닙니다.
온전히 임함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사실 막연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이 땅에 허락한 것이 하나님 나라의 예표인 교회입니다.
믿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이지요.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이 땅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비로써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교회를 비하하고 비난해도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임재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교회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을 믿게 되는 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위로와 보호도, 고난을 이기는 연단의 힘도 그리고 형제자매들로부터 받게 되는 큰 사랑과 위로도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는 꼭 어머니 품과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흔히 “지상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으로 태어나게 하고, 신앙으로 양육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죄 많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키워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기 자녀들을 온전하고 성숙한 인격체로 키우기 위해 애쓰며 기도하는 것처럼, 지상의 어머니이신 우리 교회도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여 우리가 온전하고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수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신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교회를 뭐라고 표현합니까?
‘거룩한 공회와’
이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거룩한 공회’, 그 뜻은 이런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우리들이 거룩한 사람들이라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거룩한 공회란 하나님이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를 통해 죄 사함과 함께 우리들을 거룩한 성도들로 변화시켜 가신다는 뜻입니다.
대속의 은총, 성화(聖化)의 은총입니다.
거룩한 공회, 그 교회의 가장 큰 사명, 큰일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이 사도신경에 나옵니다.
‘거룩한 공회와’ 그리고 그 다음의 나오는 말이 그 답인데, 무엇입니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라틴어로 Communio Sanctorum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다시 번역하면 “거룩함의 교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누구와의 거룩한 교제입니까?
첫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하나님의 숨을 쉬고 있는 형제자매들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요한일서 1장을 보시면 사도 요한은 성도의 삶을 역시 하나님과의 사귐, 그리고 성도들과의 거룩함의 교제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를 듭니다.
청춘남녀가 만나 교제한다고 합시다.
어떻게 해야 사귐이 깊어질 수 있을까요?
첫째는 자꾸 만나는 것입니다. 사귐의 기초이지요.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둘째, 경청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귀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 담배)
이는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해야 거룩한 공회인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깊은 사귐, 성도와의 깊은 사귐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첫째, 자주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생활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둘째, 경청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이지요.
셋째,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이 세 번째를 특히 더 강조합니다.
사도 요한이 묻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입니까?
그러면 어둠 속, 곧 죄의 습관에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장 6절만 새 번역으로 다시 읽습니다.
1: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습관과 버릇, 참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늘 몸에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항상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다 그렇게 사는 것 아냐?‘
‘돈 앞에서 여자 앞에서 성인군자가 어디 있어?’
맞습니다.
죄로 말미암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 못된 습관과 버릇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지요.
그래서 죄라는 놈이 무서운 것입니다.
죄가 무서운 것은 그 죄를 제어할 힘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죄를 말할 때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마르티아, '과녁에서 벗어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하나님은 궁수이고 우리는 화살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과녁을 향해 궁수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쏩니다.
그 때 화살인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지요.
'내가 꼭 이리로 날아갈 이유가 없잖아. 내게는 자유의지가 있는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피곤하잖아?‘
그리고는 빗나가지요.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입니다.
이처럼 죄라는 놈은 무서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죄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방법을 오늘 본문에서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첫째, 죄 앞에서 너무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설사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의로우신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1절만 새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 죄의식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참 좋은 고백이지요.
하지만 거기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순간 할 수 있는 일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시도하려 하지 않는 소극적인 그리스도인 향해 이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 죄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새번역)
주님이 우리 죄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화목 제물이 되셨으니 더 이상 죄에 사로잡힌 자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죄에서 완전히 자유 할 수 있을까?
세 번째 방법입니다.(새번역)
2:3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2:4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요, 그 사람 속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2:5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속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참으로 완성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압니다.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이지요.
요한복음 13장입니다.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머리에서 일어나는 자각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2장 4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행동들이 우리 안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하나님 안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2장 6절입니다.
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이것 역시 서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행동들이 우리 안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써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역사를 입술에 고백 속에만 담아 두지 마시고 우리 삶으로 용기 있게 번역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강해 11:11-24 이방인의 부르심과 이스라엘의 구원 (0) | 2015.12.03 |
---|---|
로마서강해 11:1-10 은혜로 남은 자 (0) | 2015.11.24 |
로마서 12: 17-21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십시오 (0) | 2015.11.24 |
잠언 12: 10-19 새로운 인생의 길, 의인 (0) | 2015.11.17 |
누가복음 11: 24-26 새로운 인생의 출발, 하나님 모심 (0) | 201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