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제 17주 10월 10일(목) 새벽묵상말씀
“시편 2편”
오늘 여러분과 나눌 말씀은 시편 2편입니다.
시편 2편, 거의 주목하지 않은 시입니다.
하지만 시편 1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편 2편입니다.
왜냐하면 시편 전체의 주제이자, 그에 따른 서론이, 시편 1편과 시편 2편에 오롯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이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구절로 시작해서, 시편 2편은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로 끝나고 있는 것입니다.
1편 ‘복(히, 아쉬레이/헬, 마카리오스)’으로 시작해서, 2편 마지막을 ‘복(히, 아쉬레이/헬, 마카리오스’)으로 끝내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전체의 주제이자 서론이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편은 시편 1편의 내용을 좀 더 깊이 들어갑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인가?’
‘누가 행복한 그리스도인인가?’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2 ➀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➁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첫째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는’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이 누구입니까?
독생하신 하나님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입 맞추는 자’ 다시 말해 ‘예수님을 구세주(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복’이지요.
‘누가 복 있는 사람인가?’
‘예수 믿는 복’이 있는 사람이 복자,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둘째 전제 조건은 ‘여호와께 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 행복한 그리스도입니다. 늘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지요.
‘교회 다니는 복’입니다.
‘교회 다니는 복’이 있는 사람이 복자,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예수 믿는 복’과 ‘교회 다니는 복’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계명을 점점 더 ‘족쇄와 사슬’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눈에 띄는 단어 하나가 나옵니다.
바로 ‘어찌하여’라는 ‘부정을 뜻하는 의문 부사’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어찌하여’가 한번만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과 새 번역 성경을 보시면 ‘어찌하여’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새 번역 성경으로 1-3절까지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2:1 어찌하여 뭇 나라가 술렁거리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2 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전선을 펼치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함께 꾸며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거역하면서 이르기를
2:3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하는가?
무슨 말인가 하면, 이런 뜻입니다.
‘어찌하여 예수 믿으면서, 우리를 구원한 여호와의 말씀과 계명을 족쇄와 사슬로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교회 다니면서, 그분께 피하는 것 곧 예배생활과 기도생활을 족쇄와 사슬로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복 받는 길을, 행복한 길을 어찌하여 족쇄와 사슬로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시편 2편의 전체 상황과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연약해서, 이웃 강대국에게 침략과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참한 세월을 보냈지요.
그러다가 드디어 이웃 강대국보다 더 강한 임금(즉 메시야)이 나타나서 그의 자비로 해방과 자유를 맞게 됩니다.
그때, 자비를 베푼 임금, 그 메시야를 우리가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가를 시인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대접해야 할까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 말씀과 계명을 족쇄와 사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참 이상하지요.
구원의 길인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점점 더 족쇄와 사슬로 여깁니다.
행복의 길 곧 하나님께 피하는 예배시간과 기도시간을 점점 더 족쇄와 사슬로 여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인이 탄식하면서 ‘어찌하여’라는 부사를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서 두 번 2절에서 두 번 반복해서 사용하십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쓴 ‘교리 문답서’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그리스도교 교리의 필수 항목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십계명
둘째, 우리 신앙의 주요항목인 사도신경
그리고 셋째,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주기도입니다.
이것을 설명하면서 마르틴 루터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상 세 항목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니 조건 달지 말고 단어 하나하나를 공을 들여 배워야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매일 아침 일어나서 식사 때 자리에 누울 때마다 암송하는 습관을 들 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암송할 때까지 밥도 주지 말고 마실 것도 주지 마십시오.(중간 생략)
어떤 교인이 아주 무식하고 야만적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참지 마십시오. 이 세 항목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전체를 아주 짧고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요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십계명에 매인 삶, 사도 신경에 매인 삶 그리고 주기도의 매인 삶을 불편해 하거나 어려워하지 말고, 그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자, 하늘의 은총을 입는 축복의 길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
하나님께 피하는 예배 시간과 기도 시간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첫째 ‘나도 너희를 보고 비웃겠다’는 것입니다.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또 하나는 5절입니다.
분노와 진노를 사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웃음을 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노와 진노를 사는 불행한 인생이 되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족쇄와 사슬로 여기지 마십시오.
둘째, 삼위일체 하나님께 입 맞추는 예배 시간을 족쇄와 사슬로 여기지 마십시오.
한 가지 더, 셋째 언제든지 하나님께 피하는 기도의 시간을 족쇄와 사슬로 여기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의인인의 길임을 잊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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