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립보서 3장 1절 2014/07/16(수)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주제로 오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한 절에 지나지 않는 짧은 본문이지만 실은 이 한절 안에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핵심 주제가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주 안에서(in the Lord) 기뻐하라"
마치 바울이 사도의 권위로 문제가 있는 교회를 향해 명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라’는 명령형이 아니라 사도로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축복의 인사말 형태가 "주 안에서(in the Lord) 기뻐하십시오"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공동번역 성경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많은 기쁨을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축복의 인사말로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주 안에서(in the Lord) 기뻐하라"
이 축복의 인사말이 얼마나 중요했던지 바울은 마지막 인사말에 앞서 ‘끝으로’라는 강조 어구를 사용합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종(끝)말(끝)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종말로’
바울의 편지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독특한 표현입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자신의 편지에서 사용할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편지의 결론을 말할 때, 그리고 편지의 내용을 아주 강조하고 싶을 때, 그리고 아주 강력한 주의가 필요할 때 이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서는 ‘끝으로’, ‘종말로’라는 표현이 5번 등장하는 데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① 빌립보서 앞에 나오는 에베소서 6장입니다.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6:12 (왜냐하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이기 때문이다)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② 그 다음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빌립보서 3장 1절입니다.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3:2 (왜냐하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해야 하기때문이다)
③ 빌립보서에 한 번 더 나옵니다.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때문이다)
④ 데살로니가 전서
4: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4:2 (왜냐하면)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알기 때문이다)
⑤ 데살로니가 후서
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3: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왜냐하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끝으로’, ‘종말로’라는 표현은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만 등장하는 아주 독특한 표현으로 편지의 결론을 말하고 싶을 때, 그리고 편지의 내용을 아주 강조하고 싶을 때, 그리고 아주 강력한 주의가 필요할 때 이 표현을 꼭 사용합니다.
이제부터 하는 말이 아주 중요하니 잘 새겨들으라는 말입니다.
하여튼 오늘 본문에서는 라는 ‘끝으로’라는 강조형을 쓰면서 그 주제를 "기뻐하라"에 맞춥니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빌립보서는 4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이지만 기뻐하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할 정도로 기쁨을 아주 강조한 편지입니다.
물론 바울이 쓴 다른 서신에서도 기뻐하라는 말이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빌립보서만큼 그렇게 많이 나오거나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 또는 희락의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처지는 부자유스러운 연금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게 되는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고 막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나의 형제인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것이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인사말입니다. 사실 이런 인사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이 무게감은 흉내 낸다고 되는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에게 기쁨이 될 만한 어떠한 조건도 어떠한 환경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 그는 이미 늙은 사도입니다.
사도직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이 붙이는 상황입니다.
거기다가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앓고 있었던 지병이 육체의 가시가 될 정도로 깊은 질병에 놓인 있는 사람입니다.
복음 전도라는 명목으로 로마에 입성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의 신분은 죄인의 몸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볼 때 기쁨을 논할 만한 어떠한 조건도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이 바울의 처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세상을 향해서 교회를 향해서 그리고 오늘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힘 있게 외치는 말씀이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입니다.
여러분 어디서 이런 고백이 나올까요? 어디서 이런 담대함이 나옵니까?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은혜 안에 있는 바울 속에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충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도의 심장이 그 안에서 벌떡이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은혜 가운데 기쁨이 충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이처럼 입만 열면 이 고백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바라기는 사도 바울처럼 우리 역시 노년에도 이런 고백이 거침없이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절대 기쁨.
바울은 여기에 조건을 하나 제기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 안에서(in the Lord)' 입니다.
사도 바울의 전용어이지요.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안에서'
이러한 표현이 그의 편지 가운데 132회나 나올 정도로 그 만큼 사도 바울은 주님이 절대적인 존재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기쁨을 이야기 할 때도 ‘주 안에서’라는 절대적인 단서를 꼭 붙이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사도로서 누렸던 실제적인 기쁨이고, 이러한 기쁨을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네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구원의 기쁨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기쁨을 말합니다.
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게 되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울, 원래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한자 입니다.
자신이 말한 것처럼 죄인 중에 괴수가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다메섹 여정 중에서 직접 체험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기쁨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제 일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란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연합함으로 누리게 되는 영원한 기쁨을 말합니다.
즉 보혜사 성령이 주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도 바울은 말 할 때마다 '주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을 자주 반복해서 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교제를 통한 기쁨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란 약속된 미래에 대한 기쁨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누리게 되는 성도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천성을 향한, 본향을 향한 충만한 기쁨을 말합니다.
마치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뻐했던 것과 같은 그런 기쁨이 주안에서의 기쁨입니다.
마지막 넷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함으로 충성함으로 얻게 되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깊이 묵상해야합니다.
우리는 기쁨을 말할 때 자꾸 조건을 따집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은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어도 절대 기쁨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주안에서의 기쁨은 절대 기쁨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절대기쁨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고 충성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절대기쁨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나 주안에서의 기쁨을 누리고 맛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주안에서 누리는 절대 기쁨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위한 수고와 충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58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오늘 우리가 이 밤에 나와서 말씀 나누는 것. 헛된 수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고를 통해서 이러한 작은 충성을 통해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을 조금씩 조금씩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기쁨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 기쁨에 지배당하는 삶을 누려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바울의 권면처럼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이 인사말이 우리 교회의 인사말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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