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세례
누가복음 3:1-6절 2014/12/19(금)
3: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3: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3: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3: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중국의 고 문서인 ‘어부사’에 나오는 이야기의 한 대목입니다.
어느 날 굴원이 모함으로 벼슬에서 쫓겨나 강가를 거닐며 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던 한 영감이 그를 알아보고는 어찌하여 그 꼴이 됐느냐고 조롱하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굴원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보다 오늘 우리 시대를 잘 대변해 주는 말은 없는 듯합니다.
맑은 사람이 배척당하고, 혼탁한 사람이 선택을 받는 세상.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홀로 깨어 있어서 버림당하는 세상.
오늘 우리 시대를 너무 잘 대변하는 말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며칠 후면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모시는 성탄절인데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할지 참 암담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말합니다.
혼탁한 사람들이 약속의 땅 곧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이스라엘 이지만 그 어디에도 빛도 희망도 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증거로 누가는 그 때를 상징하는 혼탁한 인물들의 이름을 죽 열거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혼탁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는 듯합니다.
먼저 3장 1절의 디베료(Tiberius, 주후 14년-37년)황제입니다.
디베료, 그는 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를 이어 통일로마제국의 제2대 황제가 된 사람입니다. 초기에는 젊은 황제답게 개혁적인 조치를 참 많이 행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서 주변 사람을 믿지 못했던 황제 디베료는 카프리 섬에 들어가 요비스 빌라라는 요새를 짓고 거기서 칩거하며 살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암살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비스 빌라라는 요새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스스로 갇혀 살게 됩니다. 요비스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신 주피터를 말하는데, 자신이 주피터 곧 최고의 신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항상 반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황제 디베료는 공포정치를 실시하였고, 그것 때문에 정말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공포정치, 이것이 유대땅을 다스렸던 로마제국의 황제 디베료입니다.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혼탁한 인물이 총독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로마제국의 황제 디베료가 파송한 총독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어디에 등장하는 이름이지요?
사도신경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본디오 빌라도, 그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유대 땅을 다스렸던 헤롯대왕의 아들, 헤롯 아켈라오를 폐위시킨 후 로마에 의해 파견된 총독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기와 거의 비슷한 주후 26년경부터 36년까지 총독으로 재임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정치스타일은 헤롯대왕과 달리 유대교와 유대 문화를 아주 멸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사사건건 충돌하게 됩니다.
그 대표인 사건 가운데 하나가 황제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을 예루살렘에 들고 들어 온 일입니다. 우상을 둘 수 없다는 유대인들의 유일신 신앙을 완전 무시한 처사였고 이 일 유대인들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수로 정비 사업과 건설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대제사장외에는 그 누구도 손 될 수 없는 성전 금고에 손을 댔다가 거의 봉기 수준의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과 사사건건 충돌한 인물이 총독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테트라아르케스, 예수님이 주로 활동했던 갈릴리의 분봉왕입니다.
‘분봉왕’이라는 왕의 칭호를 사용하고 이지만 아버지 헤롯 대왕이 다스렸던 영토의 1/4 중 하나를 다스렸던 영주에 해당합니다.
‘테트라아르케스’,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 그는 헤롯대왕의 4명의 아들 중 가장 헤롯대왕을 닮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헤롯대왕처럼 야심만만했던 그는, 분봉왕 ‘테트라아르케스’의 지위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입니다. 아버지 헤롯대왕의 영토를 전부 다스리는 진정한 의미의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 꿈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람이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헤롯 안티파스, 그는 어떻게든지 로마황제에 환심을 사야 했기 때문에 건축이라는 방법을 통해 로마황제에 환심을 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그의 첫 작품이 로마식 신도시 세포리스입니다.
예수님이 나고 자랐던 나사렛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도시 세포리스를 로마식으로 재건해 수도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후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곳에 또 하나의 새로운 수도를 건설합니다.
디베랴입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인 디베랴(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딴 신도시를 건축합니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두 번에 걸친 대 토목공사 때문에 갈릴리 사람들의 형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그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의 농민들을 수탈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아주 혼탁한 분봉왕이었습니다.
당시 갈릴리의 전체 인구가 15만 명이 채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갈릴리 사람들이 겪은 억압과 수탈이 어떠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3장 1절을 보시면 예수님 시대 또 한명의 혼탁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헤롯 안티파스의 동생 빌립입니다.
빌립 역시, 분봉왕 ‘테트라아르케스’ 로 갈릴리의 북부와 동쪽 지역인 이두래와 드라고닛을 거쳐 루사니아까지 다스린 영주입니다. 루사니아는 레바논 산맥 너머의 땅으로 갈릴리로부터 아주 먼 땅까지 다스립니다. 그 역시 형 헤롯 안티파스처럼 백성을 수탈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아주 혼탁한 인물이었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혼탁한 정치적 지형도를 제시한 후, 이번에는 혼탁한 종교지도자의 이름을 3장 2절에서 언급합니다.
첫 번째 사람 누구입니까?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입니다.
안나스와 가야바, 그들은 로마제국에 의해 임명된 제사장들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상당히 정치적인 제사장입니다.
그러니 그 행실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보다는 황제의 뜻을 더 따르겠지요.
이처럼 예수님 시대는 혼탁한 황제, 혼탁한 총독, 그리고 혼탁한 테트라아르케스 분봉왕, 거기다가 혼탁한 제사장까지, 정치도 종교도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던 시대였습니다.
누가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요약한 후, 딱 한 마디를 3장 2절 후반부에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여기에 오늘 제가 전하고자 하는 말씀에 핵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이 메시지에서 무엇인가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요한은 어둠이 가득한 혼탁한 시대에 홀로 깨어 양심의 등불을 밝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빈들입니다. 광야이지요.
하나님 앞에 유일한 단독자로 서 있는 자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유일한 단독자로 외롭게 서 있는 자리.
홀로 서 있는 그 고독의 자리
그 빈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더라는 것입니다.
혼탁의 시대, 그래서 그 어디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없는 시대
하나님 앞에서 홀로 흐느끼면서 진리 안에 외롭게 서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희망이 들려오더라는 것입니다.
화려한 성전이나 크고 안락한 예배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빈들과 같은, 광야와 같은 외로운 삶속에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부시당한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더라는 것입니다.
곧 성탄절인데 저는 여러분들이 이것을 꼭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광야와 같은 삶속에서 천둥같은 하나님의 북소리는 또렷하게 들었으면 좋겟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이 번 성탄절을 맞아 꼭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경험한 분은 아시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면 어쩔 수 없습니다.
외쳐야 합니다.
무엇을 외쳐야할까요?
프리덤, 자유입니까? 아닙니다.
브레드, 빵입니까? 아닙니다.
죄 사함을 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위한 회개의 촉구입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참된 구원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3: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말씀을 마칩니다.
말씀을 마침에 있어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이 베푼 세례, 물세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그것을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씀이 10절과 11절 그리고 13절과 14절에 나옵니다.
3: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3: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3: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3: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
진정한 세례란 불의한 마음을 고쳐먹고 하나님이 원래 주신 선한 양심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지킬 것을 지키고, 양심의 법을 따라 사는,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의 삶은 사실 쉬운 것입니다.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양심에 따라 살면 그만입니다.
이 번 성탄절을 맞아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양심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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