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다니엘 3:19-30 풀무불 속을 걷는 사람들

心貧者 2019. 1. 11. 14:39

풀무불 속을 걷는 사람들

다니엘 3:19-302013/1/5(주일오후)

3: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3: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3: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3: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3: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3: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3: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3: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3: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3: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3: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다니엘서는 꽤 오래 전에 일어났던 사건 하나를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태어나기 약600년 전의 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600년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있었던 어떤 사건 하나를 배경으로 기록된 말씀이 다니엘서입니다. 다니엘의 이야기가 얼마나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인지 이제 감이 좀 오십니까?

뿐만 아니라 다니엘서의 배경은 하나님이 약속한 땅 이스라엘이 아니라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 사건의 기원을 품고 있는 고대 도시 바벨론입니다. 지금의 이라크 지역입니다.

 

이처럼 다니엘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면 사실 우리와 별 상관이 없는 역사 속에 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본문의 말씀을 우리가 다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말씀 속에, 이 역사 속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리스도교 참된 신앙, 그 핵심가치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를 좀 더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니엘서가 기록 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고 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내용, 다니엘서에 기록된 사건은 주전 600년 전에 일이지만, 그 내용을 수집하고 편집해서 기록한 시대는 그로부터 350년이 지난 주전 2세기 중엽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에는 이 시대의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 약 400년간의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와 신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 사이의 400년간의 역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신, 구약 중간기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성경이 아니 다른 역사적 자료의 도움을 받아야 그 시대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도움을 받아야할 대표적인 책이 요세푸스가 기록한 유대 고대사입니다. 거기에 보면 다니엘서가 기록될 당시 주전 2세기 중엽, 이스라엘은 아주 큰 신앙의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을 다스린 왕조가 시리아 안디옥을 수도로 한 셀류쿠스 왕조인데, 당시 왕이었던 안토니우스 에피파네스 4세가 유대인들의 신앙과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종교탄압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우선 율법 두루마리를 읽거나 소지하는 것 자체를 금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의 상징인 할례도 금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유대인들의 정체성이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근간인데, 이 모든 것을 금지시킴으로 유대인의 신앙과 정신을 말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 금지 조항을 어기면 유대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직 하나, 죽음뿐이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유대인들이 가장 신성시 하는 곳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그런데 안토니우스 에피파네스 4세가 유대인들이 가장 불결하게 여기는 돼지를 잡아 예루살렘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놓고는 거기에 돼지 피를 뿌림으로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유대인으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신앙의 수치였고 오욕이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에 등장한 책이 다니엘서입니다.

이처럼 다니엘서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는 주전 600년 즉 바벨론과 그 뒤를 이은 메대 페르시아이지만, 다니엘서를 읽는 잠정적 독자들은 신앙의 최대 위기를 겪고 있었던 주전 2세기 중엽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다니엘서를 기록한 목적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다니엘서를 기록한 저자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즉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감동적인 신앙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앙,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살피고, 또 그 신앙과 믿음을 하나님의 후손들인 너희들이 잘 지키라고 독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서를 기록한 목적입니다.

다니엘이 어떤 책인지 이제 좀 감이 잡히지요?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다니엘서를 읽으면 다니엘서만큼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책도 없는 것입니다.

 

자 이제 본문의 내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3: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여기 등장하는 느부갓네살은 당시 바벨론 제국을 다스리는 제국의 왕이었습니다.

막강한 무소부재의 권력이지요.

그런데 그에게는 한 가지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세운 제국이 곧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운 대 제국, 바벨론. 그 제국을 이어갈 그의 아들이 교만과 자만과 독선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니엘서 525절에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그의 아들이 받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신흥 강대국인 메대 사람 다리오에게 결국 바벨론 제국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5: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5: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5: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5: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그래서 바벨론 제국의 왕 느부갓네살은 뭔가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려진 정책이 자신의 모양을 빼닮은 거대한 금 신상을 바벨론 땅 두라 평지에 세워놓고, 거기에 온 나라 온 백성들이 숭배하기를 강요한 것입니다.

그가 세운 금 신상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높이가 예순 자, 너비가 여섯 자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오늘날로 환산하면 대략 높이 27미터에 너비 2.7미터의 거대한 신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왕은 신상 제막식에 제국의 관료들을 다 불러 놓고는 이렇게 공포를 합니다.

3:4 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3: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3:6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누구든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즉시 풀무불, 곧 불타는 화덕 속에 던져 넣겠다고 공포 정치를 선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정면으로 거부한 이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유대 땅으로부터 포로로 잡혀온 청년 유대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존재감도 없는 나라, 그 유대 땅으로부터 잡혀온 포로들입니다.

그들의 원래 히브리식 이름은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이지만, 우리에게는 바벨론식 이름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더 익숙합니다.

어찌되었든 이 세 명의 유대 청년들이 왕의 금 신상을 낙성하는 그 자리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금 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참된 신앙은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순간 결단을 요구합니다.

신앙과 양심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세상과 적당히 타협점을 찾을 것인지.

결국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호의를 거부하고 자신의 신앙과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택하게 됩니다.

317-18절입니다.

3: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화덕, 풀무불 속에서 반드시 구해주신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설사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멋진 신앙 아닙니까?

이처럼 참된 신앙은 우리에게 바른 결단을 요구합니다.

참과 거짓, 하나님과 하나님이 아닌 것 사이에서의 결단입니다.

 

그러니 느부갓네살 왕이 그들을 가만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 19절입니다.

3: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3: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3: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결박된 채 풀무불에 던져진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믿음, 그들의 신앙대로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친히 맛보게 됩니다.

할렐루야!

3: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3: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말씀을 마칩니다.

다니엘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명백합니다.

비록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풀무불 속을 걷는 것 같은 현실이지만 그래서 한치 앞도 바라보기 힘든 현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가만히 내 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버리기는커녕 그들 곁에 들어가 풀무불 속을 함께 걸으며 당신의 백성들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그렇습니다.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도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도우시분들이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여기서는 신들의 아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바로 보혜사 성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하십시오.

이 방법 외에는 우리가, 우리 교회가 살 길이 없습니다.

그래야 세상으로부터 이런 최후의 고백을 받아내지 않겠습니다.

3: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이 부분을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를 믿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신은 다시 없을 것이다."(3:29c)

아멘.

결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

세상의 절대 권력자, 세상의 독재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고백, 이러한 의의 최후 승리는 하나님을 목숨 걸고 믿는 우리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입니다.

바라기는 여기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