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고린도후서 3:1-6 그리스도의 편지

心貧者 2019. 1. 11. 14:38

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후서 3:1-62014/1/12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3: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3: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고린도 교회는 아주 각별한 교회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도시 고린도 지역에서 뜻하지 않게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린도 지역은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에 그리 좋은 토양은 아니었습니다. 전형적인 항구도시답게 고린도는 한 몫 잡으려는 뱃사람들과 상인들 그리고 외국인 용병들로 가득한 도시였기 때문에 늘 화려했고 향락과 사치 그리고 사행성 소비문화가 만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는 점을 쳐주고 예언하는 미신 산업이 아주 성행했으며, 항구로 몰려드는 남자들의 적적함을 달래주기 위한 술집과 유곽이 꽤 발달한 도시었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언급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리 매력적인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울은 뜻하지 않은 만남을 통하고 고린도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사도행전 18장에 그 해답이 나옵니다.

로마로부터 이주해 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난 것입니다.

어떤 경로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뜻하지 않게 낯선 땅에서 같은 혈통의 유대인이면서, 거듭난 그리스도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이 부부의 직업은 천막업자입니다.

항구 도시 고린도는 늘 나그네 여행자들로 붐비는 도시였기 때문에 천막을 만드는 사업이 꽤 괜찮은 사업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천막을 다루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어울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머무는 동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천막 공방에서 노동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고린도 교회에서 얻은 새로운 교인들과도 깊은 정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이 돌변하게 됩니다.

교인들 간의 다툼이 벌어지더니 급기야 교회 내에 파벌이 생긴 것입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이렇게 네 개의 파로 교회가 갈라진 것입니다.

더욱 난감하게 한 것은 자신을 향한 고린도 교인들의 비난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직에 대한 시비와 함께 바울이 전한 복음의 순수성 그리고 전도자로서의 진실성마저 의심을 받게 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소식을 들은 바울이 다급한 마음에 써 보낸 편지가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동안 가깝게 여겼다고 생각했던 성도들로부터 갑자기 낯선 자 취급을 받는다는 것, 자격 없는 자처럼 취급을 받는다는 것, 참 씁쓸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다소 감정이 격한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편지에 담습니다. 고린도후서 217절입니다.

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이것을 제가 새번역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격한 감점은 오늘 본문 3장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더욱 격해진 감정을 담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는 즉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복음을 전할 자격증이나 추천장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또 우리가 복음을 전함에 있어 여러분들이 인정하는 자격이나 추천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는가? 라고 묻습니다. 사도직이라는 어떤 자격증, 사도직을 증명하는 어떤 추천서를 가지고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이런 주장을 펼칩니다.

복음의 열매요 전도의 열매인 당신들, 즉 고린도 교인들의 존재 자체가 추천장이고 자격증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당차게 증명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존재 자체가 하늘로부터 온 추천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직에 대한 시비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소 격해진 감정으로 사도직에 대한 자신의 변론을 써 내려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잊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도직을 맡은 자로서의 책임감입니다. 바로 목회에 대한(목약에 대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본분, 고린도 교인들의 정체성,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가치, 참된 교회의 가치를 일깨우는 일을 놓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바울의 위대함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일깨우고자 했던 참된 교인, 참된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이 3절에 나옵니다.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강력한 은유입니다.

너희가 바로 우리가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쓴 편지로서의 그리스도인.

이것이 바로 참된 교인,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바울은 주장합니다.

참된 교인,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한 지역에 있는 교회공동체 안에 소속된 자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곧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온 편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아주 강력한 은유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온 편지,

이것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시기와 분란이 고린도 교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이렇게 네 개의 파로 교회가 갈라지더니 서로 반목하고 서로 대립하는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문제를 풀어 줄 유일한 사람 바울마저 사도직에 대한 시비를 걸어놓고 배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보아도 교회라고 보기에는 좀 그런 상황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말아야할 사실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 그 은총마저 무효화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현실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지만 그래서 서로 시기하고 반목하는 부정적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 그 은총마저 무효화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편지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3절 후반부입니다.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그리스도로부터 온 편지.

편지의 발신인은 그리스도이고 편지의 수신인은 세상입니다.

그 편지는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입니다.

그 편지는 율법처럼 돌 판에 쓴 것이 아니라 우리 육체 안에 있는 마음 판에 쓴 것입니다.

우리 육체 안에 있는 마음 판에 새겨진, 절대로 지워지지 않은 그리스도의 편지.

그래서 이 편지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참된 그리스도인답게 완벽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 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갈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또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책임지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하늘로부터 온 그리스도의 편지로 삼았다면 반드시 그 삶을 온전함으로 의의 삶으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편지인 우리도 이 땅에서 발신인인 그리스도의 뜻을 온전하게 따라야 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결코 책임을 회피하는 불법을 행하거나 게으름을 피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 붙여진 그리스도의 편지답게 그 책임을 다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더 사랑하고 더 나누고 더 선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을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표현합니다.

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율법의 조문 즉 구제, 기도, 금식, 십일조와 주일성수 같은 종교의 형식 그 자체에 충실한 책임뿐만 아니라 죽은 영을 살리는 생명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모범을 보이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병으로 고통 받고, 귀신 들려 고통 받고,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 차별로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이 병든 이들을 고치고,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내쫓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신 것을 신비한 능력으로 보지 마십시오. 그것은 긍휼함, 사랑이 일으킨 기적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교회의 부흥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그 책임을 다하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십시오.

이것저것 지시하는 선장이 되지 마십시오.

교회로부터 시중이나 받는 손님이 되지 마십시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십시오.

말없이 섬기는 사람, 궂은일을 먼저 택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신 주님처럼 살아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는 까닭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답게, 그리고 새 언약의 일꾼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인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숨결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지?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에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책임감이 담겨져 있는지?

바울은 고린도전서 1031절에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지?

자신을 속이지 말고 한 번 물러 보십시오.

 

요즈음 제가 깨닫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살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은 교회에 대해서 많이 아는 이들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오는 것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신앙의 경력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힘입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사랑의 힘입니다.

이 힘을 소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편지, 새 언약의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