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길
창세기 12:1-4절 2014/7/14(주일오후)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열국 즉 모든 민족의 아버지), 본명은 아브람(큰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창세기 11장 말미에 나오는 그의 아버지 데라의 족보로부터 시작됩니다. 좀 어색하지만 데라의 족보 속에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편집된 그런 형태입니다. 성경은 데라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여기에 보면 아주 낯익은 고대의 두 도시 이름이 나옵니다.
어디와 어디입니까?
우르와 하란이 등장합니다.
고대 수메르 문명과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룬 상징적인 두 도시로 우르와 하란이 나옵니다.
먼저 우르입니다.
우르는 고대 수메르 문명을 이른 도시 국가로 이곳에서 살던 사람을 가리켜서 갈대아인이라고 불렸습니다. 갈대아란 ‘약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약탈이 이 민족이(이 도시가) 살아남는 생계 수단으로 활용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은 ‘갈대아인의 우르 즉 갈대아인이 사는 우르’를 떠나 이렇게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반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중간에 머문 '하란'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신흥 상업도시였습니다.
두 도시의 공통점이 하나있다면 두 지역 모두 ‘신’ 또는 ‘난나’라고 부르는 달신(Sin, Nanna)을 주신으로 섬겼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브라함의 이동 경로와 달신 숭배로 유명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이 서로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갈대아인들이 사는 우르로부터 시작해서 메소포타미아와 티그리스 강 유역, 그리고 시리아와 가나안 지역, 그리고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까지 아브라함의 이동 경로와 달신 숭배로 유명한 초승달 지역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달신 숭배, 말 그대로 달을 신처럼 숭배하는 종교입니다.
달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달의 변화가 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고대 사람들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주기로 변화되는 달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삶의 은유와 인생의 희로애락을 읽어낸 것입니다. 이처럼 달신 숭배는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신앙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구약 성서 속에서도 '달신 숭배'의 흔적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하루'와 '보름'을 중시한 사상입니다.
에스겔 46장입니다.
46: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초하루에도 열고
46:2 군주는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군주는 문 통로에서 예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46:3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초하루에 이 문 입구에서 나 여호와 앞에 예배할 것이며
46:4 안식일에 군주가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 마리와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라
46:5 그 소제는 숫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 씩이니라
46:6 초하루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어린 양 여섯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이처럼 달신 숭배 사상은 구약성서에서도 여러 번 등장할 만큼 일반 백성들에게 별로 거리감이 없는 보편적인 신앙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르 출신의 데라가 하란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하란은 달신 숭배의 신흥 메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역사의 전환점이 생깁니다.
달신 숭배의 신흥 메카인 하란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기에 보면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첫 명령이 등장합니다.
명령의 내용,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명령 아브라함이 어떻게 대처 합니까?
그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그대로 그냥 행합니다.
불순물 없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 그는 그의 아버지 데라처럼 평생 달신 숭배 문화권에서 산 사람입니다.
그가 고향과 거처로 삼았던 곳은 당대 최고의 문화권을 이룬 도시입니다.
보여 준 땅이 아니라 앞으로 보여 줄 땅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처음 만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곧바로 순종합니다.
대단한 믿음이지요.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브라함을 이렇게 소개한 것입니다.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주님으로부터 받은 부르심, 소명이 있습니까?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불순종의 불순물을 남기지 말고 소명 받은 대로, 받은 말씀 그대로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참된 믿음이 반석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과 주님의 복이 늘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가르침과 복이 항상 함께 공존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나오는 팔복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주님의 복이 일치합니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떠나라 그리고 가라'고만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그 명령과 함께 하나님의 강복을 약속하십니다.
특히 12장 2절과 3절을 주목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복'이라는 단어가 몇 번 등장합니까?
다섯 번이나 등장합니다.
복이란 히브리어 'bãrak'의 번역인데, 이 말의 뜻은 창세기 1장 28장에 나오는 생육을 왕성하게 하는 능력, 번성을 왕성하게 하는 번식력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 약속, 우리에게 한 명령을 그대로 이루시게 하는 힘의 능력이 바로 복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생육이 아니라 생육하게 하는 능력이 복입니다.
번성이 아니라 번성케 하는 능력이 복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이루게 하는 능력이 복입니다.
오늘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명령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입니다.
지금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여겨지십니까?
실제로 가난하고 궁핍합니까?
그것이 현실입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이라면 우리 안에 가난으로부터 궁핍으로부터 절망으로부터 낙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능력 또한 있다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그 날이 언제인가라는 질문이 남아 있지만 반드시 약속하신 하나님이 그 약속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한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인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약속 한 세 가지의 복 중 첫 번째 복입니다.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실제로 이런 복은 야곱 즉 이스라엘을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해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절정을 이룹니다.
두 번째 복은 보호하심에 대한 약속입니다.
12장 3절 상반부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여기서 말하는 '너'는 1차적으로 아브람과 그의 후손을 지칭하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좀 더 확대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모험적인 삶에 뛰어드는 모든 사람들 즉 오늘 우리 시대, 복음에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일 겁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 삶 속에 들어오셔서 복을 주시고,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이란 마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는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사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하나님 나라로 가는 확실한 길이 무엇인지, 그 길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혹도 당하고, 방황도 하고, 때로는 죄의 올무, 이단의 올무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에게 분명한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나라, 천국,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그 길이지만 약속한 그 길에 이루도록 내가 반드시 너희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몫은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천국의 길을 걷는 이들이 가져야할 믿음의 정의로 이렇게 설명한 것입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새번역)
이 말씀을 우리가 붙들고 살 때 우리의 삶은 더욱 굳세고 든든해지는 것입니다.
죄로 치우치거나 우로 치우는 어리석음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삶의 길을 걷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은 누군가에게 복이 되는(be a blessing) 복입니다.
본문 12장 3절 후반부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복의 근원, 복의 저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받은 복을 이웃과 세상을 향해 값없이 흘려보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be a blessing, 그 누군가의 복의 근원, 복의 저수지가 되는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과 저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지금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복을 비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be a blessing, 복의 근원이 될 것인지?
이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be a blessing, 복의 근원입니다.
비록 지금은 주님의 소명, 주님의 부르심의 따라 가는 길의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래서 때로는 절망도 오고 낙심도 오고 신앙의 회의마저 든다 할지라도 우리가 가는 그 길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이라면 그 길이 우리를 진리로 생명으로 이끌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이 확신 안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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