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로마서 1:1-7절 2014/12/3(수)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오늘부터 로마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설교자로서 나름대로 정한 몇 가지의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강해설교를 설교에 중심축에 둔다는 것입니다.
강해설교란 본문에 대한 역사적, 문학적, 신학적 주해를 바르고 철저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말씀을 듣는 회중들에게 복음의 기초, 신앙의 기초를 다지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설교를 말합니다.
제가 강해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우연치 않게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설교자인 제 자신이 성경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강점입니다.
그리고 회중들에게 강해설교를 통해서 복음의 기초, 신앙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저는 강해설교를 선호합니다.
두 번째 설교에 대한 원칙은 강해설교를 하되 그 순서를 복음서를 먼저하고 그 다음에 서신서를 강해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기록된 복음서가 모든 성경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주일은 복음서 중심으로 강해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성서공회가 발간 한 관주성경을 보면 한 단락과 다음 단락을 나누는 기준으로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한 본문으로 해서 강해하는 방식으로 설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교하면 한 10여년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도 복음서를 먼저 차근차근 정리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 시간에 했던 빌립보서 강해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로마서 강해는 맛보기이면서 동시에 신앙의 균형감을 위한 안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충 준비하는 것이 아니만큼 여러분도 비록 맛보기 차원에서 하는 로마서 강해이지만 좀 더 열심히 집중해서 듣다보면 깊은 영적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로마서 강해를 통해서 참된 구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 자유해지는 참된 구원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하면 로마서와 연결된 대표적인 인물 세 사람이 교회사에 등장합니다.
교부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우구스티누스보다는 어거스틴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성 어거스틴입니다. 이 어거스틴이 방탕한 생활을 접고 성 어거스틴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헌신적인 기도와 또 하나 바로 이 로마서 덕분이라는 것이 모든 교회사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니까 어거스틴의 회심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이 바로 로마서라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20세 젊은 나이에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지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죄의 대한 문제입니다.
특히 성적인 욕망. 이것이 젊은 어거스틴에게는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비록 몸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삶을 괴롭히는 성적인 욕망에 대한 죄 의식의 문제가 어거스틴의 마음을 늘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거스틴이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일어나 성경을 펴서 읽어라."
그래서 찾아 읽은 말씀이 로마서 13장 13-14절입니다.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것을 통해서 어거스틴이 깨달은 말씀의 결론은 ‘인간은 결코 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강조한 것이 절대적 은총론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이 아니면 인간은 결코 죄에서 승리할 수 없고 자유 할 수도 없다는 것, 이것을 어거스틴은 로마서를 통해서 발견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나중에 칼빈을 통해서 은총의 예정, 구원의 예정으로 발전하게 되는 신학적 근간이 되기도 하지만 어째든 어거스틴은 로마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을 본 것입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변화된 대표적 인물 두 번째 사람은 종교개혁을 이끈 지도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아버지는 한스 루터입니다.
광산업에 종사했던 한스는 아들 마르틴이 아주 유능한 법률가가 되어서 사회적으로 덕망을 받는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법대로 유명한 에르푸르트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법학도로서 한창 꿈을 키우던 청년 마르틴은 집에 왔다가 다시 학교로 가던 도중에 난생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안겨주는 무시무시한 벼락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가 1505년 7월 2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무시무시한 벼락이 바로 앞에서 떨어지는 순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성 안나’의 이름을 걸고 하나님에게 서원하게 됩니다.
‘성 안나여, 나를 도우소서, 저는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성 안나’는 광부들의 수호성인입니다.
살려주시기만 한다면 평생 동안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서약입니다.
그래서 법률을 공부하던 마르틴 루터가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보면 볼수록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고민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과연 구원은 우리가 행하는 경건한 행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인가? 에 대한 고민입니다.
루터가 살고 있던 당시 중세사회에서는 상당한 고민거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고 있듯이 오직 믿음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대리자인 교종이 거짓말 하고 있는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의 대리자인 교종의 말대로 면죄부라는 행위라고 한다면 성경이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대리자 교종입니까? 아니면 성경입니까?
교황청이 행하는 면죄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에 대한 믿음입니까? 이것이 늘 풀리지 않는 숙제였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서 주석을 하면서 발견한 말씀이 로마서 1장 17절과 3장 23-24절입니다.
차례대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기서 마르틴 루터가 꼬꾸라지면서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구원을 맛보게 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게 된다는 그 믿음을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를 통해서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청의 명령을 거부하고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로마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감리교회(운동/구세군, 성결교, 오순절계통)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입니다. 성공회 신부의 아들로(19남매 중 15번째) 태어난 요한 웨슬리는 영국의 명문대학 옥스포드에서 교편을 잡을 만큼 뛰어난 인재요 신학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단히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옥스퍼드 시덜 ‘홀리클럽’을 만들어서 매일 같이 성경읽기와 신앙서적읽기 그리고 기도생활을 규칙적으로 한다고 해서 ‘매도디스드’즉 ‘규칙쟁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경건생활에 열심이었던 사람이 웨슬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웨슬리가 미국 조지아 선교에 실패하고 돌아와서 영적 침체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저녁 올터스케잇이라는 거리에서 열린 모라비도 집회에서 깊은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때 들은 말씀이 마르틴 루터가 쓴 로마서 서론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믿음을 어떤 사람이 생각하듯이 인간적인 환상이나 꿈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성령을 덧입혀 우리 안에 있는 옛 아담을 죽이며 우리로 하여금 마음과 뜻과 생각과 모든 능력에 있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선한행위를 하느냐 마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묻기 전에 이미 그것을 행했으며, 언제나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로 하여금 선한 행위를 하게 하는 믿음. 즉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구원은 즉각적으로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웨슬리는 로마서 서문을 통해서 깨닫게 되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웨슬리의 고백입니다.
“나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올더스케잇 거리로 가서 한 신도 모임에 참석하였다.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45분 경,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변화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이 생겼는데,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하셨다는 확신이었다.”
요한 웨슬리는 그 길로 동생 찰스 웨슬리를 찾아가 그 동안 풀어 내지 못했던 믿음에 대한 의문의 답을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믿는다.”라고 외쳤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매 주 수요일은 로마서 말씀을 나눕니다.
이 때 우리가 세 가지의 기준점을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 은총입니다.
어거스틴이 그런 것처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 절대적 은혜 속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구원은 오직 은혜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행위의 값이 없다는 말입니다.
선물로서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원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실체가 내주 하시는 성령으로 즉각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를 깊이 있게 묵상한다면 로마서가 우리를 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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