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강해 1:21-32 상실한 마음

心貧者 2019. 1. 10. 10:03

상실한 마음

로마서 1:21-322015/02/25()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바울은 로마서 서문에서 우리에게 놓인 두 가지의 상황을 아주 심도 있게 설명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복음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경이 기록한 하나님의 복음 안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능력이 동일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의를 더욱 힘써 이루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상황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복음과 정 반대의 상황입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 이 땅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무시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죄가 가지고 있는 힘의 무게를 알고,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죄가 가지고 있는 힘을 무시하고나 죄 아래 팔린 우리의 모습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죄로부터 놓임을 받고 자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의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인 만큼 늘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은혜아래 거하라는 것이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 바울의 설명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좀 더 깊이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였을까?

무엇이 그렇게 우리에게 잘못된 것일까?

118절에서 320절까지 긴 내용을 통해, 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죄에 대한 무지,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것이 바울의 설명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죄에 대한 인간의 무지가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을 진노하게 할 만큼 못된 짓만 저지르는 더럽고 추악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118절에서 시작해서 320절까지 조목조목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흔히 고백하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수치스러운 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내가 얼마나 더럽고 치졸한 죄인인지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아주 벌거벗깁니다.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우리 안에 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리고 우리의 죄가 얼마나 더러운지, 우리 안에 꼭꼭 숨겨두었던 원초적인 죄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우리 안에 꼭꼭 숨겨 두었던 죄의 모습들을 바울은 낱낱이 벌거벗길까요?

그래야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온전한 구원에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완전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감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생 중에 하나가 속회입니다.

속회와 타 교단의 구역회’(소그룹 모임)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직고Accountability입니다.

우리의 죄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과 속도원 앞에서 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형제를 미워 한 죄.

간음할 마음을 품은 죄.

물질의 유혹 속에 빠진 죄.

남을 속인 죄.

부지런 하지 못한 죄 등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과 속도원 앞에서 고하는 것이 직고입니다.

 

직고가 주는 두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악을 떠나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능입니다.

레위기 192절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선한 행실로 이끄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속회의 힘이었고, 감리교회의 힘이었습니다.

속회는 결코 예배 잘 드리고 남이나 험담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 와서,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어리석음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하였는가? 입니다.

첫째 불경건함입니다.

18절입니다.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복음을 막는 불경건함입니다.

이것에 대한 내용이 21-25절까지 아주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경건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을 말한다.

반면 불경건함이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불신앙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을 말합니다.

이것을 바울은 25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이런 고약함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 고약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이런 짓을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21절 다시 읽습니다.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여러분, 알면서 지는 죄가 더 큰가요 아니면 모르고 지은 죄가 더 큰 가요?

어떤 죄가 더 큰가?

알고 지은 죄입니다.

누가복음 1247절입니다.

12: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이처럼 알고 지은 죄가 더 큰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면서도 진리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불경건함의 죄가 고약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불경건함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얻게 하는가? 입니다.

불경건함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생의 결과입니다.

26-27절입니다.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하나님이 정한 이치, 그 순리를 거스르는 인생을 살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를 들어 언급한 동성연애 대해서는 자세하기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그릇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용납해야 하느냐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님이 정한 이치, 그 순리를 거스르는 인생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어리석음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하였는가?

상실한 마음입니다.

첫째는 불경건한 행위이고, 둘째는 상실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얻게 된 주님의 마음을 상실한 마음입니다.

 

28-32절입니다.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특징이 있다면 하나 같이 부정적인 내용들입니다.

1:29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1:30 비방, 미움, 능욕, 교만, 자랑, , 거역

1:31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하는 행동들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냥 내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28절입니다.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노아시대처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물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또 소돔과 고모라시대처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불로 심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불경건하고, 주님의 마음을 상실한 죄인들을 심판합니까?

그냥 내어버려둔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방법은 물 심판 불 심판보다 더 무서운 심판입니다.

내어 버려두사라는 말의 헬라어는  '하레도켄'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give up' 'abandon'입니다.

파선한 배를 버리듯 포기한다. 단념하다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물 심판 불 심판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내어 버려두사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이런 기도를 했으면 합니다.

하나님 나를 만져주세요.

영어로 ‘Touch Me!’이지요.

하나님 제발 그냥 내버려 두세요’ (Don't touch Me)가 아니라 하나님 제발 나를 만져주세요’(Touch Me!)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것이 고난의 모습, 실패의 모습, 역경의 모습, 십자가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Touch Me!’ ‘하나님 제발 나를 만져주세요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인생,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자녀를 포기하지 않고 영생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