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강해 1장 18-23 하나님의 진노

心貧者 2019. 1. 10. 10:06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118-23                                                      2015/2/11()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의 진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자신의 편지 서두에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 그 복음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복음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간략하지만 아주 심도 있게 언급했습니다.

 

복습하겠습니다.

성경 곧 율법서와 예언서가 언급한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를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할 구세주,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에덴동산을 회복 할 구세주 왕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부터의 자유하게 할 메시아,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약속한 땅 이스라엘에 꼭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곧 율법서와 예언서가 언급한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약속 된 메시야가 어떻게 나사렛 사람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졌는가? 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성경적 근거는 다윗의 혈통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근거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능력, )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지정되신, 지명되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복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사렛 사람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질문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지 못한 우리들 특히 이방인과 같은 우리들이 어떻게 복음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가?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이스라엘 땅에 사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아래 놓일 수 있는가 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처럼 오직 믿음입니다. 한 마디로 구원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

 

여기에는 두 가지의 형태로 믿음이 나타납니다.

먼저 유대인들에 주어진 율법의 믿음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first faith(첫 번째 믿음) 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는 옳은 일이지만 그래서 죄를 인식하고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도록 우리에게 교훈은 주지만 완전히 자유롭게 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믿음이 있는 데 그것이 바로 last faith(마지막 믿음)입니다. 구원의 완전을 이루게 하는 은혜의 믿음입니다.

율법의 믿음으로 출발해서 은혜의 믿음로 마무리를 짓는 그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시간까지 드린 모든 말씀의 요약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시작하는 단어부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다소 따스한 분위기에서 하나님의 진노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 바울은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진노

아주 대조적입니다.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헬라인이나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방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가릴 것 없이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있어서 선과 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믿음에 있어서는 그 어떠한 차별도 없이 동일하게 모두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이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하나님의 복음이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복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나타날 수 있도록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복음이 되지만 반대로 그것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징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는 그것이 복음 그 자체로 역사할 수 있지만 또 누구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서 편지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가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불의함으로, 불의한 행동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계시의 실체인 성경도 거부하고, 성경이 약속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도 거부하고, 우리를 구원하게 하는 은총의 믿음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성령을 거역하는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성탄절이 기쁘다 구주 오셨네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서 성탄절은 저주다 심판주 오셨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교회가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위로와 축복과 사랑만이야기하지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저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두 가지의 모습이 마치 동전의 앞뒤처럼 하나님의 성품으로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하면 꼭 거론 되는 분이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가장 많이 연구하고 가장 많이 말한 신학자가 마르틴 루터입니다.

루터 신학의 기초를 '하나님의 진노'에 둘 정도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몸소 경험하고 체득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마르틴 루터는 천주교 신부입니다.

자신의 몸을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하겠다고 서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하나님의 대리자인 교황을 거부하고 거기다가 수녀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으니 당시 교회 입장에서는 마르틴루터만큼 끔직한 마귀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회는 마르틴 루터가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게 됩니다.

하루는 마르틴 루터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교황청에서 감독관을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 태어난 마귀의 씨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목격하고 그것을 교황청에 사실 그대로 보고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신부와 수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 마귀를 낳는 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로 뿔 달린 마귀를 낳았겠습니까?

아니면 건강한 아이를 낳았겠습니까?

이것은 마르틴 루터 자신도 당시로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건강한 사내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러니 마르틴 루터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것보다 확실한 종교개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가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교황과 교회를 향해서 오히려 일침을 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누구에게 임하는가?

교황을 거부하는 자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거부하는 자인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성령을 거부하고 진리의 길을 막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신명기 28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28: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28: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런 축복의 말씀이 14절까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15절 이하를 보시기 바랍니다.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28: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28: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28: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28: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이런 저주가 마지막절인 68장까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을 축복장 또는 저주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축복과 저주.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지켜 행하는가 아니면 지켜 행하지 않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축복하지만 그렇지 않고 말씀을 거부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명기서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말씀을 받은 이스라엘이 어느 길을 택합니까?

축복의 길입니까? 아니면 저주의 길입니까?

저주의 길입니다.

그래서 축복보다는 저주의 내용이 신명기 28장에 더 많이 기록된 것입니다.

사실 저주보다는 축복의 내용이 더 많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의 내용이 더 많이 기록된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던진 히든카드가 우리를 진리의 길 축복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진노 그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은혜의 풍성함을 얻는 것입니다.

진노의 자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바리기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과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