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사무엘상16:6-13 다윗의 상처

心貧者 2019. 1. 9. 23:27

다윗의 상처

사무엘상16:6-13                                       2015/2/13()

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16: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16: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6: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6: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감추고 싶은 상처 하나쯤은 누구나 다 가지고 살아갑니다.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가난에 대한 상처, 가난에 대한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고생 없이 자랐겠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 날 상처를 조금 말하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설마 목사님도 그랬어요?’ 오히려 반문을 합니다.

이유인 즉, 고생의 그늘이 전혀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시절 학생회 대표로 있을 때입니다.

3개 신학대학교 체육대회를 위한 찬조금을 얻기 위해 김홍도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금란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김홍도 목사님과 1:1면담을 하였습니다.

당시 김홍도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가 세계적인 부흥 강사로 소위 가장 잘 나갔던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요청하는 집회와 각종 모임으로 늘 바쁜 일정을 보내야만 했던 분이 김홍도 목사님입니다. 그 교회에서 일하는 부목사님들도 만나기 힘든 분이 이분입니다.

 

그런데 아무 친분도 없는 제가 담임목사님 실에서 그분과 개인면담을 했습니다.

저희학교 출신 선배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분과 개인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그분의 첫 질문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 아들이신가?’

이름 있는 교회의 목사님 아들쯤으로 본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이 저를 본 첫 인상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다윗,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이름이지요.

최고의 왕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 족보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다윗의 이름이 거론 될 정도로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었고, 말 못하는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역시 우리처럼 아픈 상처가 있었고,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었던 사람 중에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상처,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그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질 것을 약속받은 역사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역설적이게도 다윗의 상처가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161절입니다.

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운 사울을 하나님이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 중에 하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울 것을 사무엘에게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무엘은 천신만고 끝에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집을 찾아 갑니다. 사울의 눈을 피해 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이새에 집에서 사울은 이새의 장남 엘리압과 대면하게 됩니다. 엘리압을 보자마자 사무엘은 흥분합니다.

세상에 이런 촌 동네에 이런 인물이 다 있다니. 역시 하나님이구나!’

이것이 사무엘 선지자의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입니다.

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세상에 이런 촌 동네에 이런 인물이

이것이 사무엘 선지자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엘리압 외모에 감동하고 있는 사무엘을 향해 하나님이 쓴 소리를 합니다.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엘리압, 그의 외모를 보지 말라. 그는 아니라라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이번에는 둘째 아비나답을 이새가 부릅니다.

아비나답, 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덟 아들 중에 일곱째까지 차례로 불러도 하나님은 하나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그 때 사무엘이 이새에게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네 아들들이 이것이 다냐?’

이새가 답합니다.

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막내가 하나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아이는 지금 형들을 대신해서 양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을 지키는 막내.

무슨 말입니까?

그 아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어린 다윗에게 미칠 만큼 그런 아이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이새의 생각이었고 형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이새의 안중에 없었던 아이가 바로 다윗입니다.

 

결국 이것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다윗에게 납게 됩니다.

아버지와 형들로부터 외면당한 다윗

이것이 다윗의 상처가 됩니다.

결국 이런 상처에 고착이 된 다윗은 여자에 대한 집착으로 퇴행하게 됩니다.

어릴 적 애정결핍이 이성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25장에 나오는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취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잔인한 줄 모릅니다.

나발이 죽자마자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2544절 이하를 보면 다윗과 사이가 나빠지자 사울 왕이 다윗의 아내인 자기 딸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줍니다.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이지요.

이처럼 다윗이 사울 왕에게 완전 무시를 당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어떻게 하냐하면 끝까지 쫓아가서 자기 아내를 빼앗아 옵니다.

그리고는 아내와 각방을 씁니다. 소심한 복수이지요.

다윗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상처의 모습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다윗도 별 수 없는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윗이 이렇게 여자에 대한 지나친 편력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상처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사랑에 대한 굶주림.

애정 결핍에 대한 상처가 이런 집착과 퇴행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상처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 상처로 인해 때로는 하나님을 찾는,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 곧 하나님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바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다윗에게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의 왕에 오른 후에도 다윗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여전히 여자에 대한 집착에 빠져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터진 사건이 사무엘하 11장 이후에 나오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이전과는 좀 무게가 다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여자문제로 인해 다윗의 행실이 악하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하 11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11: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의 경우와 다르게 하나님이 아주 크게 진노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이 전과 다르게 다윗을 대합니까?

왜 다윗의 행실을 악하다고 하십니까?

부하 장수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한 다윗의 악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그 면에는 이런 하나님의 뜻도 숨어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자기 상처에 머물고 있을 것인가? 입니다.

언제까지 자지 상처에 대한 보상으로 그릇된 짓만 행할 것인가?

이것을 지금 하나님은 다윗에게 따져 묻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다윗은 자기 내면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게 됩니까?

이점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어떻게 치유 됩니까?

바로 회개의 영이 임했을 때입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할 때까지 자기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과거에도 한 번 있었던 일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보낸 나단 선지자로 통해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었던 자신의 상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처지와 같은 한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불륜의 씨앗으로 태어난 자식입니다.

자신으로 인한 또 하나의 상처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 버림받은 아이를 위해 금식하면서 대성통곡을 합니다.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이 아이를 죽입니다.

아이를 죽인 것이 아니라 실은 악행의 근원이었던 다윗의 상처를 죽인 것 입니다.

이후로 상처로 인한 여자 문제가 더 이상 다윗에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런 상처는 원하든 원치 않던 간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기에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시기에 악행만 일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상처가 크면 클수록 악행은 더욱 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상처로부터 고착된 우리의 마음을 반드시 치유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악행이라는 퇴행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다윗이 그런 것처럼 먼저 자신 안에 숨겨졌던 상처와 그 상처로 말미암은 죄악을 회개의 영이 임함으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모자람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나위 치료자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치유하십니다. 우리 안에 상처, 그 상처가 치유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