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17:1-13 높은 산

心貧者 2019. 1. 9. 20:18

높은 산

마태복음 17:1-134912015/3/8(주일)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17: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17: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17: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17: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7: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7: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7: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7: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마태복음 16장을 보시면, 예수님 자신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자신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 동안 꼭꼭 감추어두었던 자신의 실체를 드디어 제자들에게 밝히시는 내용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이고, 또 어떤 존재인지를 아주 소상하게 직접 밝히십니다.

 

예수님이 직접 밝힌 자신의 실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곧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메시야,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제자들에게 드디어 밝히십니다.

내가 바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온 참 하나님이요, 사람의 친구가 되는 참 인간이심을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밝히십니다.

 

그런 후 자신과 관련된 비밀 한 가지를 더 언급하십니다.

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십자가의 삶과 부활의 삶입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생명, 예수님 사역의 핵심이지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죄 사함 그리고 몸이 다시 사는 부활의 새 생명.

곧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하나님 복음의 핵심적인 가치들을 제자들에게 낯낯이 밝기시게 됩니다.

 

그런 후에 드디어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하십니다.

2의 공생애이지요.

우선 가장 믿을 만 한 제자 셋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십니다.

가까운 제자 셋 누구입니까?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야고보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그의 형제 요한입니다.

이 세 명의 제자를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십니다.

이 때 오른 산, 어디에 있는 무슨 산일까요?

이 번 주 속회공과에서는 어디로 나와 있습니까?

헐몬산’(속회공과38)

안티레바논 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해발 2814m의 헤르몬 산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아마도 1년 내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그 산을 보면서 사람들은 신성한 느낌을 받았을 테이고, 그리고 예수님이 활동했던 갈릴리 지역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높은 산이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된 변화 산을 해발 2814m의 헤르몬 산과 어떻게든지 연결 짓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산을 일 년 내내 아주 즐겨 찾습니다.

등산복이 일상복이 될 정도로 산을 참 많이 찾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산은 여가를 보내거나 건강을 위해 찾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 왜 산에 오르지요?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생활의 터전으로 그리고 신령한 것을 찾아서, 이 두 가지입니다.

주로 마을에 있는 얕은 산은 생활의 터전으로 여겼습니다.

나무도 얻고, 먹을 것도 얻고, 약초도 얻고, 그리고 땅 없는 사람들의 집터가 되었습니다.

 

반면 높거나 깊은 산은 주로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깊은 산 그리고 높은 산은 다른 곳과 달리 아주 신령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하늘과 맞닿은 높은 산이 그런 믿음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종교는 영성 수련과 심신 훈련의 장소로 산을 찾았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까닭은 더욱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것도, 그리고 이세벨을 피해 달아나던 엘리야가 호렙산에 오른 것도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언급한 산은 일상적 삶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나를 구원 하시는 하나님, 나의 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언급한 산은 삶에 지친 이들이 유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 그리고 유일하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시편 1211절입니다.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른 곳이 바로 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태는 예수님이 오른 산을 '높은 산'이라 특정지어 부르고 있습니다.

높은 산.

물론 문자적 의미 그대로 해발고도가 높은, 높은 산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오를 수 없는 해발 2814m의 헤르몬(헐몬) 산이 변화 산이 아닐까 그렇게 사람들은 추측을 합니다. 갈릴리 지역 근처에는 이 보다 높은 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태가 지금 언급 한 높은 산은 그저 고도의 높음을 의미하는 높은 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의 구원이 있는 바로 그 자리.

곧 하나님이 임재 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바로 그 자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일부러 오늘 본문에서 높은 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할 표현이 하나 더 있습니다.

‘17:1 엿새 후에 라는 표현입니다.

성경에 기록 된 수는 셈을 위한 수라기 보다는 상징적인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3, 7(땅의 수 4, 하늘의 수3), 12 모두 완전을 뜻하는 상징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좀 이상하게 시작합니다.

완전 수 7에서 하나가 모자란 숫자 6으로 시작합니다.

엿새 후에

6, 불완전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이레도 아니고 사흘도 아닌 엿새라고 일부러 언급한 것은 그 때가 인간이 기다릴 수 있는,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마지막 극한의 한계점, 극한의 시간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위기의 시간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처형 장면과 그 시간의 흐름을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745절입니다.

27: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12, 정오를 의미하는 유대인의 시간은 제 육시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그 시간이 바로 온 땅에 어둠이 임하는 위기의 시간, 극한의 시간인 것입니다.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 버틸 수 없는 마지막 한계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 육일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망의 무덤에 갇힌 시간입니다. 이처럼 마태는 의도적으로 '엿새'를 언급하면서 예수님과 관련된 어둠의 시간, 절망의 시간, 위기의 시간을 지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엿새 후

온 땅에 어둠이 임하는 그 위기의 시간, 그 극한의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십니다.

어떻게요?

그 얼굴이 해 같이 그리고 그 옷이 빛과 같이, 변형되십니다.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어둠이 아니라 빛입니다.

어둠이 순식간에 빛으로 바뀐 것입니다.

반전입니다.

마치 혼돈과 공허와 어둠에 잠겨 있던 세상에 하나님이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는 창세기 1장의 기록처럼, 변화 산에서 벌어진 사건은 새로운 창조의 사건인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 얼굴에 해 같이 빛나는 빛은 창세기 1장의 빛입니다.

그 동안 무수히 귀로만 들었던 그 태초의 빛을 제자들이 지금 예수님의 얼굴을 통해서 직접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어둠의 권세도 빼앗아갈 수 없고 이길 수 없는 그 강력한 빛을 본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삶이 예수를 잘 믿는 믿음의 삶일까?

오늘 본문에서 깨달은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의 전환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의 '변화'입니다.

이 전과 다른 삶의 방식입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그리고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소망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높은 산. 제 육시.

그 곳, 그 시간에 제자들은 이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소망, 새로운 삶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들이 본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함께 서 있는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17: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모세와 엘리야는 각각 율법과 예언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율법과 예언의 성취입니다.

모세, 어떤 인물입니까?

이집트의 어둠에서 해방의 빛, 자유의 빛을 준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어떤 인물입니까?

아합과 이세벨의 어둠에서 여호와의 대한 믿음, 그 신앙의 빛을 비춘 사람입니다.

 

이처럼 모세와 엘리야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둠에 잠겨 있을 때 나타나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춘 인물들입니다.

특이한 점은 둘 다 무덤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덤조차 남기지 않은 모세와 엘리야에 대한 민중들의 기대는 곧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의 대한 기대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확신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등장시킴으로가 그와 함께 한 예수가 바로 우리가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야가 맞다는 것을 지금 공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어디서 많이 듣던 말입니다.

어디이지요?

그렇습니다.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을 때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입니다.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것이 바로 마태가 전한 하나님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유독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고백이 많습니다.

순서대로 요약하면, 방금 읽은 마태복음 217, 그리고 오늘 본문에 배경이 되는 마태복음 1616절의 베드로의 신앙고백,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변화 산사건 속에 175, 그리고 십자가 아래 있었던 백부장의 고백(27:54)이렇게 넷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의 순간입니다.

언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옵니까?

그렇습니다.

위기의 순간, 죽음의 순간입니다.

그 때 마다 희망처럼 들린 하늘의 음성이 바로 이는 내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가 신앙의 힘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엿 세 후입니까?

위기이고, 절망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산, 기도의 산, 예배의 산에 오르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닫힌 귀, 닫힌 마음을 여십시오.

그리고 하늘로부터 들리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사실, 저는 이 한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우리 주님이 참 친절하고 좋은 분이라는 것을 7절에서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7, 우리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17: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면서 하시는 말씀, "일어나거라.(rise, arise)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왜요?

부활의 능력, 새 생명의 능력이 우리에게 내미시는 그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