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믿음
로마서 3장 19-31절 2015/ 4/ 22(수)
로마서 주제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율법의 완성으로써의 ‘믿음’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그래서 사망의 권세로 인해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죄함을 받거나 멸망당하지 아니하고 공의로우신 재판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로마서 신학의 핵심이고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의 핵심 주장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복음 아래 놓인 인간이었습니다.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음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 안에 죄가 들어온 이후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죄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마저도 잃어버린 죄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더욱 큰 절망은 어느 누구도 이 심각한 죄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된 것도 심각 한 일이지만 그 문제를 해결한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더욱 절망적입니다.
그 결과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불경건한 삶 곧 못된 짓만 일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장 21절부터 보겠습니다.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과 바꾼 어리석은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거룩하게 구별 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치 못한 일만 일삼는 못된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다 이 죄 아래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과 바꾸는 어리석음의 죄와 그리고 합당치 못한 일만 일삼는 못된 불경건함의 죄가 우리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나 양심의 법을 가진 이방인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죄의 법, 죄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펼친 주장입니다.
물론 이러한 바울의 주장에 대해 못 마땅하게 여긴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는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아주 특별한 지위가 그 옛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모세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토라)이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출애굽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으로서의 율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 이것이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자랑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들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의 이름 곧 ‘여호와’의 이름을 계시 받은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니 그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민족 그래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토라)을 가진 민족,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유일하게 계시된 민족, 정말 자랑할 만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2장 17-24절입니다.
2: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2: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2: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첫째,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할 뿐 만 아니라 둘째,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모독당하는 일을 유대인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인(찬양, 자랑)이라 불리는 너희가 오히려 하나님의 모욕을 안겨주고 있으니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 할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유대인 너희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유익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으로 말미암아 첫째 죄를 깨닫고 둘째 죄를 시인하는 것 외에는 죄로부터 구원할 만한 능력이 율법 안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3장 19절입니다.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철길에 뛰어드는 어린 아이를 보자 그 뛰어든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의인 입니까? 아닙니까?
우리는 의인이라 여깁니다.
살신성인한 그 사람을 의인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떻습니까?
인간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도리입니다.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율법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늙은 노모를 돌보고 모시는 것 의로운 것입니까? 아니면 당연한 일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을 비추어 볼 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해마다 5월만 되면 효부라고 해서 상을 주고 의인화 시킵니다.
왜요?
요즈음 세상에 그런 사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도리이지 칭찬받아 마땅할 만큼 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구약성경 욥기 4장 17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세상에서 아무리 칭찬받는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볼 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 당연한 일이지 결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19절과 20절입니다.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 (다만)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의 대한 깨달은 그리고 죄의 대한 시인이 바로 율법의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유대인 너희가 자랑하는 모세의 율법과 그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너희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안식일법, 정결법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도대체 ‘누가 의인인가?’의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누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의 사람이 되는가?
누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가?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아주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21-22절입니다.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미쳐 율법이 해결하지 못한 하나님의 의(구원)가 나타났는데 율법과 선지자 즉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그 믿음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율법과 선지자가 증거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절대 조건이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384장 1절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주 안에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죄로부터 형통하시길 원하십니까?
이 세상으로부터 물질로부터 형통하시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찬송가 384장 1절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내 길 고집하지 말고 우리 주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순종하면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율법의 의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
율법의 조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믿음의 법에 지배당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만사형통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형통함의 축복뿐만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영광도 되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아무 대가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오직 믿음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 하나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못됐는지 모세의 율법에 장로의 유전 곧 ‘미쉬나’와 같은 종교적 관습을 덧붙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자꾸 종교적 관습을 교회가 덧붙인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해석한다는 명명하게 자꾸 비본질적인 것을 덧붙인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마리아 성모 신앙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가 오직 믿음이라는 깃발을 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곧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여러분 이 율법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떻습니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 한다 해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율법을 온전하게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목적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목적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없는 자신의 죄를 깨달아 시인하는 것입니다.
27-28절입니다.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우리가 자랑할 만한 율법의 행위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1절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그 율법을 굳게 세우는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3장 24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 한 가지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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