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사도행전 10:44-48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는 성령

心貧者 2018. 12. 19. 14:34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는 성령

사도행전 10:44-48절                                                                                                           2015/6/7(주일)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10: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오늘은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이면서 감리교회가 지키는 평신도 주일입니다.

성령강림 주일부터 시작해서 지난 몇 주간 틈나는 데로 찬송가 182장부터 195장에 이르는 성령강림절 절기찬송 14곡을 조용히 읊조리며 지냈습니다.

먼저 가사를 읊조리고 그리고 나서 가락을 담아 읊조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가사의 의미를 좀 깊이 있게 새기고 또 새겨보았습니다.

 

한 번씩 다 부르면 참 좋겠지만 우리 입과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은 몇 곡만 선정해서 불러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절과 끝 절만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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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장 김응조(성결대학교 창립자)

1931년 일입니다.

목포교회에서 목회하던 어느 날 새벽 유달산에 있는 바위 위에서 기도하다 성령 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 김응조 목사는 훗날 이런 신앙고백을 남깁니다.

 

나는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하였으나 1931910일 목포 유달산에서 성령의 불 세례를 받은 후에 모든 세상의 잡서를 버리고 성경에만 전무한 것이 동기가 되어서 성경을 열심히 읽는 동시에 성경에 대한 지식을 알고 깨닫게 되었다. 어떤 주석이나 강해 보다 더욱 신비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30년 전까지는 성경 연구에 대하여 많은 취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반대로 세속적 서적에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30년 전 어느 날 성화(聖火)의 세계가 임할 때에 신앙의 정화를 받고 성서의 빛을 받음으로 성서의 경이적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신앙의 혁명인 동시에 성서로 돌아가는데 획기적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에서 따르

는 결과는 성서연구에 방해되는 제반 속서(俗書)를 숙정하고 성서연구에만 전심치의(專心置意)하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이 같은 경험을 가진 자마다 성서에 대한 진미를 깨달을 줄 믿는다.’

 

성령의 체험을 통하여 성경에 대한 참 진미, 참 맛을 깨닫게 되었다는 김응조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193장 우리가락 느낌으로

194장 모스크바에서 출판 된 러시아 침례교 찬송가

 

우리 찬송가에 기록된 성령, 주로 어떤 이미지로 나타나는지 그 대표적인 이미지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생명의 근원인 의 이미지입니다.

1821강물 같이 흐르는 기쁨 성령강림 함이라

4생명시내 넘쳐 흘려서 마른 광야 적시니

183장 후렴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주어 새 생명 주옵소서

 

둘째, 우리 죄와 악을 정화시키는 의 이미지입니다.

1842절 주의 제단 위에 우리 몸과 영혼과 우리 가진 모든 것 지금 바치옵니 다.

1941절 저 하늘 거룩하신 주여 성령의 큰불을 주소서

내 영혼의 기도 들어 주사 성령의 큰불주소서

주 약속 하신말씀대로 다 정결케하여 주소서

2절 내 주여 기도들어주사 성령의 큰불주소서

주 말씀 따라 살아갈 때 성령의 큰불주소서

내 영혼 차고 넘치어서 새사람이 만들어지고

내 헛된 것을 태우도록 성령의 큰불주소서

 

셋째 어두운 심령을 밝히는 의 이미지입니다.

1861절 영화로신 주 성령 나의 마음 비추사

어둠몰아 내시고 밝히하여 주소서

1881절 무한하신 주 성령 우리 어둔 성품에 생명의 빛을 주소서 보혜사시여

 

네 번째 생명의 기운, 바람의 이미지입니다.

1921절 임하소서 임하소서 바람같은 성령이여

에스겔 골짜기에 불어 닥친 생명의 바람

1931절 성령의 봄바람 불어오니 믿음의 새싹이 움터오고

 

다섯 번째 치유하는 기름의 이미지입니다.

1924절 임하소서 임하소서 기름같은 성령이여

은혜로써 치료하고 사랑으로 싸매시어

 

여섯 번째 동행하는 길동무의 이미지입니다.

1891절 진실하신 주 성령 성도 곁에 계시사

순례 길을 갈 때에 손을 잡아주소서

1911절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후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성령은 생명의 물로서 단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둘째, 헛된 것들을 태우고 차가운 것을 따뜻하게 하는 입니다.

셋째 성령은 어둠 가운데 걷는 이들 앞을 비추어주는 입니다.

넷째 성령은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바람입니다.

다섯째 성령은 우리의 상처 그리고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는 기름입니다.

여섯째 성령은 외로운 이들 곁에 머무시며 돌보아주시는 길동무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의 이미지를 더 덧붙인다면,

일곱 번째, 성령은 우리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접속시켜주시는 분 곧 보혜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게 하시는 힘이 곧 성령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번째, 오늘은 이 부분을 좀 깊이 있게 설명할까하는데, 성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모든 장벽, 예를 들자면 인종 성별 신분 직업 등의 차별을 무너뜨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하시는 교체, 친교의 힘입니다.

어려운 신학적 용어로 이것을 ‘communion’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회에서는 이 단어를 공유나 교감정도로 해석하는데 그것보다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친교, 그리고 성도의 교제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사도바울의 자서전이라는 별명을 가진 고린도후서를 찾겠습니다.

1313절 외우십시오.

여기에 보시면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한 기도문이 나옵니다.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많이 들어보셨지요?

어떤 기도문입니까?

축복의 기도인 축도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축도입니다.

혹 이런 말 들어보셨는지요.

축도를 받지 않으면 그 날 예배는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축도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성령의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교통입니다.

이 교통이라는 말이 바로 ‘communion’ 친교, 교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 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공동번역 교제)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성령의 사귐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 그 사람은 나누고 가르는 단절의 사람이 아닙니다.

분리된 것을 모으고 나뉘었던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사귐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런 성령을 사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고넬료와 베드로입니다.

이 두 사람이 바로 성령의 사귐, 성령의 교제를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고넬료와 베드로, 베드로와 고넬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고넬료, 로마 군인으로 가이사랴에 주둔한 이탈리아 부대에 속한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이란 백 명의 수하를 둔 중간 계급의 장교를 말합니다.

 

반면 베드로는 유대인으로 로마 식민지의 백성입니다.

그의 삶의 자리는 갈릴리이고 그의 직업은 어부 입니다.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는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로마군인과 유대인, 가이사랴와 갈릴리, 백부장과 어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이 둘 사이에 있는 막힌 담을 헐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교통의 역사, 교제의 역사, 친교의 역사, 사귐의 역사를 이끌어 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이탈리아 부대에 속한 로마 장교 고넬료를 대단한 호의를 가지고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0:1 가이사랴(당시 이탈리아부대가 주둔했던 캠프가 있는 곳)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첫째, 그는 경건했고

둘째,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하는 사람이었고

셋째, 이 점이 중요한데 유대 백성들에게 자선을 많이 베푼 즉 식민지 백성들의 가련한 처지를 늘 헤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넷째,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늘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생활에 힘썼던 사람이 고넬료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로마 군인 백부장 고넬료의 성령 체험 사건을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회심사건과 함께 아주 비중 있고 그리고 자세하게 다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령 체험, 이것은 고넬료 한 사람만이 경험한 특별한 체험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아주 의도적으로 바울의 회심 사건과 함께 고넬료의 회심 사건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오후기도 중에 하나님의 천사를 보게 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10:3 하루는 제 구 시쯤(오후 3)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10: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0: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고벨료 앞에 나타난 천사가 말합니다.

가이샤라에서 약 50km 떨어져 있는 욥바에 가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묵고 있는 베드로를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참 신기하지요.

기도의 사람은 서로 통하는 법인 모양입니다.

그 때 베드로도 정오기도 중에 아주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늘이 열리더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린 채 땅으로 내려오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네 발 달린 짐승들과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로부터 천둥 같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입니다.

정오기도가 끝난 후라 몹시 시장 끼를 느꼈지만 선 듯 따르기 어려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로부터 내려온 보자기에는 율법이 정한 부정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어릴 때부터 이제까지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은 일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을 거절합니다.

역시 베드로다운 고집입니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0: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되자 베드로는 즉각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방인에 대한 즉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내려오시는 성령의 역사를 알아차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 성령의 역사적인 사건이 베드로를 통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귐, 교통의 역사입니다.

그 어떠한 담도 그 어떠한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사귐의 역사.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 고넬료와 베드로

사실 하나 됨이라는 사귐의 합의점을 찾기 매우 어려운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하나가 되는 사귐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하나의 신앙고백 안에서 베드로와 고넬료, 고넬료와 베드로, 유대인과 이방인,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는 놀라운 사귐의 역사가 성령을 통하여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 이제 오늘 우리의 모습을 살려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한 분을 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귐의 자리로 나아가고 않고 편 가름 속에서 단절 된 삶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권면을 드리겠습니다.

혹 편 가름의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까?

성령의 불로 태우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편 가름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습니까?

성령의 바람으로 그 울타리를 날려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교회가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교회가 성령이 충만한 교회로 비로써 증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소원하시고 합심해서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