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강해 5장 12-21 은혜의 승리

心貧者 2018. 12. 19. 14:32

은혜의 승리

로마서 512-21                                             2015/ 6/ 10()

 

로마서 5장부터 시작해서 8장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의(율법의 의,믿음의 의)가 어떻게 죄인 된 우리에게 주어 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5장부터 8장까지는 성령 안에서의 삶입니다.

 

1-4장 하나님의 의

5-8장 성령 안에서의 삶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란 율법의 행위(속죄제사법 거룩정결법)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세워진 성령의 역사 즉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이였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의 삶이 곧 하나님의 ’(의리, 관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내주 하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 안에서의 삶입니다. 이것이 유대교와 다른 그리스도교의 핵심 신앙 가치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도 그렇고 베드로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유대인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이라는 울타리 안에만 머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혈통의 자리에서 믿음의 자리로 뛰쳐나가 그리스도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혈통의 구원에서 믿음의 구원으로 그 신앙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삶, 어떻게 사는 것이 성령 안에서의 삶일까요?

첫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나 사이의 막혔던 담, 그 담을 헐고 화평을 누리는 친교의 삶, 사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집중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기억해 보면서 51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에 이르렀다면 그 첫 번째 증거는 하나님과 화평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 있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화평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일까?

바울의 설명입니다.

56-11절 말씀을 새 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5: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5: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5: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때 얻게 되는 첫 번째 삶은 구원이 있는 삶입니다.

5: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무엇으로부터 구원입니까?

환란으로부터 구원이 있는 삶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씀이 53-4절입니다.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는 구원이 있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 자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때 얻게 되는 두 번째 삶의 변화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간증의 삶입니다.

찬송가 3702절입니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이처럼 죄인 되었던 우리가 화평을 누리게 되면 주님만 자랑하고 주님만 따르는 간증 있는 삶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들어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성령 안에서의 삶을 은혜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은혜의 삶이다.

이것이 바울의 설명입니다.

 

바울이 5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성령 안에서의 삶이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화평이고 그리고 둘째는 은혜입니다.

화평과 은혜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의 삶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을 보면 유대인의 구원론과 아주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 중에 핵심 사상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부분을 바울은 아주 강조됩니다.

그리스도교 구원의 핵심은 오직 믿음인데 이 믿음 역시 그 출발을 하나님의 은혜에 둡니다.

 

요한웨슬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믿음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연인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선재적(선행) 은총prevenient Grace 이라고 부릅니다.

웨슬리는 인간을 세 종류로 보았습니다.

자연적인 상태에 놓인 인간, 율법적인 상태에 속한 인간, 복음적인 상태에 놓인 인간으로 구분하였습니다.

바울이 율법적인 상태에 속한 인간과 복음적인 상태에 놓인 인간으로 구분했다면 웨슬리는 한 단계 더 나눕니다.

자연적인 상태에 놓인 원죄의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재적(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입니다.

 

사도행전 1631절입니다.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여기서 가장 핵심 되는 단어 하나를 찾아보십시오.

입니다.

예수를 곧 하나님으로 믿는 은혜의 상태를 말합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있었던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그 현장에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간수장에게 한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이 구원의 조건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합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라는 이신득의또는 이신칭의의 구원론을 정립합니다.

율법의 행위도 아니고 할례의 표도 아니고 아브라함의 씨(자손)라는 혈통도 아닌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이것 한 가지만이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유대교와 다른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을 정립해 나갑니다.

 

물론 이런 구원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바울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자기 동족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심지어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라는 이신득의’ ‘이신칭의의 구원론 때문입니다.

 

이신득의의 구원론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부정입니다.

자신의 의, 공덕, 행실들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행한 그 어떠한 선심과 선행으로도 구원에 이룰 수 없다는 아주 적극적인 자기 부정입니다.

 

불교나 유교의 가르침과는 전혀 반대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유교의 가르침의 중심은 언제나 나입니다.

내가 부처(성불)이고 내가 우주의 중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자기하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자력구원)

하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구원은 자력구원이 아니라 타력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진노아래 놓인 인간은 어떠한 선심과 선행으로도 구원에 이룰 수 없다라고 단정을 짓습니다.

심지어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까지 이런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니 유대인들 눈에 사도 바울이 곱게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척하고 핍박한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분명한 것은 나 자신의 의가 전혀 없다.’ 라는 것이 이신득의에 숨어 있는 첫 번째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타력구원,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이끌어 내는 은혜입니다.

인간의 선심과 선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찾는 것입니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은혜,

오직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인 영생에 이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라는 이신득의’ ‘이신칭의에 숨어있는 두 번째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교 구원론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말끝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은혜 타령을 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증거가 무엇인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앞 절인 7-8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은혜, 그 사랑을 확증한 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확증이 십자가 사건이라면 그 속죄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민족 전체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를 위한 것인가?

여러분 어디까지가 구속 즉 속죄의 법위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 인류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속죄의식이라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이처럼 전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무슨 말인가 하면 이런 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합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아니지요.

그래서 법의 기능. 율법의 기능은 죄를 죄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율법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즉 효력의 시점입니다.

모세부터 입니다. 모세의 십계명부터 입니다.

그러면 그 전에는 죄가 없는가? 아니지요.

아담의 범죄로 인한 사망이 율법이 없어 죄를 짓지 아니 한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효력을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망이 곧 죄의 증거인데 이러한 증거를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원죄의 증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를 수 잇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입니다.

다시 17절입니다.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우리 안에서 왕 노릇 한 것처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우리 안에 생명이 왕 노릇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영생할 수 있는 부활의 두 번째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은 은혜로, 선물로 거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찬송 2841절입니다.

오랫동안 모든 죄가운데 빠져   더럽기가 한량없던 우리들

아무공로 없이 구원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 지금되었네

 

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마칩니다.

갈라디아서 33절에서 사도 바울이 이런 한탄을 합니다.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성령으로 시작해 놓고 육체로 마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해 놓고 자기 공로로 마쳐서는 안 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해 놓고 자기 공로에 대한 섭섭타령을 한다면 참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땅과 저 하늘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를 기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