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21:18-22 꽃인가 열매인가?

心貧者 2018. 12. 19. 14:31

꽃인가 열매인가?
마태복음 21:18-22절                                                                                               2015/6/12(금)
21: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1: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성경의 등장하는 나무 중에 우리가 좀 바로 알아야할 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입니다.
무화과나무.
성서 속에서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신실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가 무화과나무입니다.
유대교 랍비들의 해석에 따르면 창세기 2-3장에 등장하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무화과나무로 해석할 정도로 이스라엘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도 무화과나무와 관련된 많은 말씀들을 남기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무화과’ 글자 그대로 풀면 , 꽃 없이 열매 맺는 나무입니다.
‘꽃 없이 열매 맺는 나무’
정말 그럴까?
사실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무화과도 꽃이 핍니다.
꽃이 피기는 피는데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열매자체가 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화과를 은화과(隱花果)라고도 부릅니다.
은(隱)은 ‘숨는다’는 뜻으로 여기에 무화과나무 꽃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소금과 빛의 비유처럼 무화과나무의 비유 역시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꽃이 아니라 열매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신앙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는 좋은 시청각 자료인 셈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요한복음 1장에서 나오는 나다나엘과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빌립으로부터 메시야가 드디어 이 땅에 왔다는 복음을 들은 나다나엘이 의심을 품고 빌립에게 묻지요.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러자 빌립이 말합니다.
‘와서 보라’
그렇게 예수님 앞에 나아갔을 때 나다나엘을 보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여기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라는 말의 뜻이 47절에 나옵니다.
찾아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이처럼 무화과나무는 참 이스라엘, 거짓이 없는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우리말로 비유하자면 ‘그 사람 진국이야’ 그런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 역시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 참 이스라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무화과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무화과나무를 찾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하나, 시장 끼를 달랠만한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아래서 자세히 살핀 것입니다.
혹 먹을 만한 열매가 있는지 살피고 또 살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18절과 19절 상반부입니다.
21: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이것을 여기에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영적 상태를 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집, 그 누구보다도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선택받은 백성이라면 그의 걸 맞는 열매 곧 참 이스라엘, 거짓이 없는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그 열매를 품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의 영적 빈곤을 우리 주님이 지금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제가 우리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형편을 보면서 한 가지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화려함입니다.
교회가 참 화려해졌습니다.
호텔이나 백화점이나 고급쇼핑몰에 가지고 있는 편의 시설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어느 교회는 서울시 청사와 같은 시기에 건축했는데 서울시 신청사보다 교회 건축비가 200억이 더 들어갔다고 합니다.
호텔인지 쇼핑몰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화려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 이 땅에 무화과나무 같은 교회를 심는 목적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생명의 열매 구원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참된 제자, 거짓이 없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귀한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외형적인 화려함에 취해 정작 본질적인 목적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닮는 열매에 관심을 두는 것 보다는 점점 화려함에 취해가고 있습니다. 겉멋만 든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 18절 앞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21: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이른 아침에’
‘시장하신지라’
도대체 우리 주님은 무슨 급한 일이 있었기에 아침끼니도 해결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셨을까?
아마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 시장 끼가 아니었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달릴 그 심판의 날이 가까웠으니 아마 급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몸을 놀려 급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득한 예루살렘 성으로 오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뜻 밖에 참담한 현실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신의 허기짐을 달랠만한 그 어떠한 희망도 예루살렘 주민 속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살피고 살펴도 있어야할 열매, 즉 생명의 열매, 구원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잎만 무성하고 화려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 주님이 택한 길은 예루살렘의 심판이었습니다.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놀라운 것은 이 심판의 말씀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마가복음(성전정화사건이 끼어 있음)과 달리 마태복음은 느닷없는 제자들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도대체 이 분이 누구 길래 이런 권세가 나오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21: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그러자 우리 주님이 이런 말씀으로 오늘 본문을 마무리합니다.
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권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을 믿는 다고 했을 때, 그 믿음의 권세는 또한 어디까지일까?
오늘 본문에 따르면 믿음의 권세는 우리 주님처럼 구원과 심판에까지 미칩니다.
그래서 참 성도의 기도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기도하면 심판이 구원을 기도하면 구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 주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천국 열쇠, 즉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실 말씀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하는 예루살렘에서 찾아 볼 수 얻었더라는 것입니다.
비극이지요.

말씀을 마칩니다. 만약입니다.
만약 우리 주님이 이른 아침에 자신의 시장 끼를 달래기 위해 우리 교회를 찾아와서 자세히 살피셨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참 좋다’ 배부름의 기쁨일까요?
아니면 실망을 넘는 분노일까요?
믿음을 저버린 분노일까요?

여러분,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의 권세로 생명의 열매, 구원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권세 있는 믿음으로 열매 맺는 인생으로 거듭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래야 우리교회가, 그래야 우리 형제가 삽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 있는 믿음을 보이십시오.
무엇으로요? 그렇습니다. 기도입니다.
뜨거운 기도로, 깊이 있는 기도로 권세 있는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잎만 무성한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권면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권세로 뜨겁게 기도하시고 깊이 있게 기도하셔서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로 거듭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