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시편 62:1-12 헤세드

心貧者 2018. 12. 18. 15:40

헤세드

시편 62:1-122015/7/3()

 

오늘이 73일입니다.

계절, 참 빠르지요.

교회 절기로는 오순절 성령강림 5주를 지나서 6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세시풍속으로는 하지를 지나 본격적인 더위가 온다고 하는 소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맘때면 중요한 밭작물 몇 가지를 수확하게 됩니다.

첫째, 보리입니다.

그리고 감자입니다.

감자하면 하지 때 캐는 하지 감자를 으뜸으로 칩니다.

드셔보셨는지요.

보리, 감자와 함께 또 수확하는 작물이 밭 마늘입니다.

좀 비싸도 이때 수확하는 밭 마늘을 으뜸으로 칩니다.

그러고 보면 바다에서도 보리새우, 보리굴비, 보리숭어 수확이 한창입니다.

 

한 행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그저 그렇습니까?

사실 하루하루가 진부함의 연속입니다.

찬거리 걱정, 애들 교육 걱정, 자식 걱정, 건강 걱정 등...

이처럼 삶이란 것은 어쩌면 진부함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오늘입니다.

진부한 삶의 연속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진부한 삶.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살아야 하는 복음의 가치, 그리스도교의 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 곧 긍휼과 위로 그리고 관심과 사랑만이 진부한 삶에 그나마 조그마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아주 냉혹합니다.

빡빡하지요.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 잡을 수 없을 만큼 아주 빡빡합니다.

빡빡해도 너무 빡빡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긍휼, 위로, 관심, 사랑 이런 단어들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울 만큼 현실의 삶은 아주 빡빡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를 위한 여유 그리고 남을 위한 배려라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만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입니다.

항상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고 또 그렇게 자기 맘대로 해석합니다.

그것이 긴장과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을 사납게 대합니다.

그러니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갤럽이라는 세계적인 여론 조사기관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매년 국가별 웰빙지수를 발표합니다.

웰빙, 곧 삶의 질을 말합니다.

웰빙지수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를 조사해서 발표한 것입니다.

.

2014년도 작년이지요.

조사대상 145개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몇 위 정도한 것 같습니까?

참고로 2013년도 조사에서는 75위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최하위권인 117위입니다.

IS와 전쟁 중인 이라크나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는 남수단보다도 낮은 순위입니다

 

항목별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인생목표의 만족도 96, 사회관계의 만족도 112, 경제상황의 만족도 53, 공동체(사회질서)의 만족도 113, 건강의 만족도 138위입니다.

주목할 것은 경제상황 53위인데 반해 건강 138위라는 점입니다.

드디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육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도 하나의 질병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교회가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62편을 살펴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히브리어로는 'ak‘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말로는 이것을 오직이라는 부사와 그리고 어떤 사물을 단독적으로 일컬을 때 사용하는 ‘~이라는 조사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62: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2: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ak‘

이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오늘 본문의 시인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질, 곧 행복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아니고 건강이 아니고 자기 명예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입니다.

진정한 행복, 삶의 높은 질은 반드시 하나님과 잇대어 살아갈 때 가능하다는 것이

시인의 고백이고 주장입니다.

62:1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기다림은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새번역)

 

나의 구원, 나의 행복이 어디서 나온다구요?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만

오직 하나님만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통해서 참된 행복, 참된 구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6절입니다.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

7절입니다.

내 힘의 반석, 피난처로 나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앙 고백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2절과 6절에서 두 번 반복합니다.

62: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62: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기에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 멋진 신앙 고백이지요.

이 고백 속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요.

이 신앙의 고백, 어디서부터 나오는 줄 아십니까?

역설적이게도 고난 가운데서입니다.

평안이 아니라 고난의 현장 속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시인의 고백이 빡빡한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울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시인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세 가지가 나옵니다.

3절과 4절에 집중해서 나옵니다.

첫째,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처럼 사람들이 자꾸 나를 졸로보고 흔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인 나를 저 높은 자리에서 자꾸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니까짓게 무슨 목사라고

셋째, 이 부분이 우리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일인데 이런 것입니다.

입으로는 축복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저주를 퍼 붓을 일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요?

우리의 이웃,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의의 사람을 흔든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시비 건다고 같이 싸울까요.

아니면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논쟁할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시비 때문에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모아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들 때문에 느슨해진 믿음의 끈을 오직 하나님에게만 다시 잇대어 매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까먹지 말로 다시 하나님 은혜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62: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62:10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

 

세상의 힘,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상기 시킵니다.

62: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62: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첫째는 권능()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둘째 하나님의 인자함 곧 하나님의 은혜,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장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그래서 내가 지금 바보처럼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 나를 다시 구원하시고 잃어버린 권세(명예)를 다시 찾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헤세드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있습니다.

헤세드란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불의 한 세상, 희망을 상실한 이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불행한 현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둠 그 불의함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이 헤세드에 역사 안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이 사실만큼은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힘드셨습니까? ‘헤세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