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디모데후서 1:8-14 2015/7/12(주일)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오늘은 이런 인사말로 설교를 시작할까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과 긍휼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의 운을 떼는 저의 첫 인사말, 어떠셨습니까?
은혜가 되셨는지요?
아니면 별 생각 없이 그냥 들으셨는지요?
제가 설교의 운을 떼면서 첫 인사말에서 사용한 단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혹 기억나십니까?
은혜(카리스 charis)
평강(에이레네 eirene)
그리고 긍휼(엘레오스 eleos)이라는 단어입니다.
은혜.
죄 사함의 은혜지요.
죄의 자녀 곧 멸망의 자녀였던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회복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말합니다.
평강, 구약성경의 핵심인 ‘샬롬’과 ‘희년’의 완성을 말합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되고, 깊은 친교를 통하여 하나님과 그리고 우리의 이웃과 화목을 누리는 삶을 말합니다.
자비, 다른 말로는 긍휼이라고도 합니다.
좀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사랑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자비입니다.
이 세 가지 단어 중에서 은혜(카리스 charis) 그리고 평강(에이레네 eirene)이라는 단어는 바울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거의 모든 편지에서 사용된 인사말입니다.
좀 번거롭지만 순서대로 한 번 다 찾아보겠습니다.
롬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전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후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갈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엡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후 1: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디도서 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빌레몬서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처럼 바울의 모든 편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사말이 은혜 그리고 평강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좀 의아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왜 은혜와 평강이라는 인사말이 디모데전서와 후서에서는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없나요? 정말 없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은 '은혜'(charis)와 '평강'(eirene)이라는 인사말 사이에 ‘긍휼’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 첨가합니다. 바울의 편지 중 유독 디모데전서와 후서에서만 '긍휼'이라는 단어가 하나 더 첨가되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디모데후서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왜 그랬을까?
왜 바울은 거의 도식과 같은 자신의 인사말 속에 긍휼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 추가해서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써야만 했을까?
그러고 보면 인사말 속에는 우리들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로 어떤 인사말을 쓰시는지요?
안녕하세요. 밥 먹었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재미 좋으세요.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필승. 안전. 할렐루야 등 (강화도 방언 계시까?)
이처럼 참 많은 인사말이 있지만 지금도 제가 곱씹는 인사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말이라고 평가하는 ‘나마스떼’입니다.
‘나마스떼’
들어보셨는지요?
우리로 치자면 ‘안녕하세요?’ 정도의 인사말이지만 산스크리트어의 어원을 따져보면 ‘당신을 존중합니다.’ 또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정도로 새길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곱씹는 인사말이 “에이 숨채요”입니다.
이런 인사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러시아 오지나 사할린으로 끌려갔던 고려인들, 즉 까레이스키의 인사말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숨차도록 고맙다’는 뜻이랍니다.
생존을 위해 극한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래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자 격려했던 인사말이 “에이 숨채요.”입니다.
정겹지만 아주 처절하고 비참한 인사말입니다.
이처럼 인사말 속에는 안부를 넘어 어떤 메시지가 담겨져 있게 마련입니다.
이는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바울은 유독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긍휼’이라는 인사말을 꺼 넣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디모데가 처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박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일을 알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제자 디모데에게 눈물겹도록 힘겹지만 일종의 북돋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아 낸 단어가 긍휼(엘레오스 eleos)이라는 인사말입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품이 제자 디모데에게 향하기를 바라는 스승의 마음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 중 일부분입니다.
바울과 디모데.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우연 인듯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분명 운명적인 요소를 띄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방문했던 ‘루스드라’를 제 2차전도 여행 때도 다시 방문하게 됩니다.
루스드라, 터키 중앙에 있는 도시로 아나톨리아의 소금 호수 남서쪽 위치한 고대 유적지입니다.
제2차 전도여행에서 다시 찾게 된 ‘루스드라’, 거기서 바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주 귀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디모데입니다.
디모데, 어떤 경로로 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을 만나기 전 이미 그는 신실한 제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증언입니다.
디모데, 그는 어떤 사람인가?
사도행전 16장 2절입니다.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누가는 유대인 어머니와 그리스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디모데를 소개하면서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칭찬을 받는 사람’, 이것이 디모데를 바라 본 누가의 시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디모데를 즉시 제 2차전도 여행에 동참시킵니다.
그 후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분신과도 같은 사람이 됩니다.
실제로 고린도 교회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대신해서 디모데를 직접 파송하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입니다.
4: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이 일 때문에 나는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얻은 나의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나의 생활 방식을 여러분에게 되새겨 줄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에서 내가 가르치는 그대로 말입니다.
이처럼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스승과 제자 그 이상의 관계였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2: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이것 역시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2:20 나에게는, 디모데와 같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여러분의 형편을 염려하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2:21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2:22 그러나 디모데의 인품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봉사하였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이 기록 된 디모데 후서에서도 디모데를 향한 마음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4절입니다.
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새번역)1:4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향한 말입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무엇인가 가슴 뭉클한 바울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처럼 바울과 디모데는 스승과 제자를 넘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믿음의 아버지 바울 그리고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
이것이 이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믿음의 아버지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현재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쁘게 받은 것처럼 고난 역시 기쁨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의 증거 때문입니다.
첫째, 죄로부터의 구원을 받은 증거가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제자로서의 부르심 곧 거룩하신 소명이 증거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소명입니다.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구원)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소명)
1:12 이로 말미암아(따라서)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감사원장을 지냈던 한승헌 변호사는 감리교 권사님입니다.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결국 사서 고생하자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사서 고생하는 것.
그것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마음 깊이 흐뭇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으로 말미암은 그 고난이 우리 주님과 제대로 접속되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다시 12절입니다.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러니 ‘디모데, 고난 속에서도 믿음의 당당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권면을 합니다.
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지금 너의 처지가 어렵다는 것 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긍휼’이라는 단어가 너에게 쓴 인사말에 꼭 필요한 만큼 너의 처지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사실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14절입니다.
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비록 현실은 고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 즉 ‘받은 은혜’ 그리고 ‘주어진 소명’ 안에서 아름다운 승리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늘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음성을 나에게 향한 말씀으로 듣고 늘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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