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15:21-28 구원의 절박함

心貧者 2018. 12. 18. 15:31

구원의 절박함

마태복음 15:21-28절                                                                                             2015/7/17(금요기도회)

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사복음서중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이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 3장입니다.

3: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여기에 보시면 교회의 오랜 신앙 전통 중에 하나인 피정이 등장합니다.

피정을 뜻하는 단어, 어떤 것일까요?

물러가시니

영어로는 리트리트(Retreat)입니다.

군대가 전선에서 철수하듯 뒤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종교적 의미가 가미되면서 이런 정의가 내려졌습니다.

피정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조용히 자신을 살피고 기도하며 지내는 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신앙훈련이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여름 휴가철만 되면 교회 전통에 따라 피정을 떠납니다.

피정을 통해 자신을 조용히 살피고 기도하며 지내게 됩니다.

우리로 치면 여름 수련회지요.

 

복음서를 보면 우리 주님도 피정을 참 즐기셨습니다.

특이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아주 큰 기적을 베푸신 후, 꼭 피정을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경우입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14장을 보시지요.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이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기적들이죠.

제자중에는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후에도 기적은 계속되었습니다.

마태는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나았다고 자신 있게 기록할 만큼 기적은 일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까지 말씀으로 제압합니다. 예수님 사역의 절정이지요.

그런데 바로 그 때 우리 주님이 택한 길이 물러나 자신을 살피는 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피정이지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피정, 그런데 그 장소가 좀 의외입니다.

왜냐하면 에수님 당시 두로와 시돈은 유대인이 거주하는 국경 너머의 도시로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대표적인 죄악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사람이 갈 도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피정의 발길을 옮기십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병행본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7: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7:24 예수께서 거기에서 일어나셔서, 두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에 들어가셨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기를 바라셨으나,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을 택한 이유가 등장하는데 아무도 모르게 숨어 지내실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생각해도 설마?’ 하는 곳이 두로와 시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갑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피정에 자리에 한 여인이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청원을 합니다.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피정의 고요함이 한 순간에 깨졌지요.

가나안 여자, 평행본문인 마가복음에서는 그 여인을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 마태는 그냥 가나안 여인이라고만 소개합니다. 아마 마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여인의 출신성분이 아니라 그 여인의 간청하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간청합니다.

다시 22절인데 새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15:22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이렇습니다.

몸을 숨겨 피정하는 곳에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한 이방인 여성인 찾아옵니다.

여인이 남자를 찾는다.

그것도 이방인 남자를 찾아가 만난다는 것은 극히 아주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 올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오래 전부터 아픔이 있었는데, 자신의 딸아이가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아마, 귀신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가나안의 주신 바알에게도 빌었겠지요.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재산뿐만 사람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어쩌면 남편에게도 버림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어미로서 귀신들린 딸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게 된 것입니다.

갈릴리 출신의 한 사나이가 있는데 병든 사람들을 고쳐 줄 뿐만 아니라 귀신 들린 사람도 고쳐 준다는 소문입니다.

그가 손을 댄 사람치고 낫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 지금 여기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 그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외친것입니다.

15:22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이 호칭이 참 기가 막힙니다.

다윗의 자손, 이 말은 그가 곧 그 옛날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이스라엘 왕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이지요.

그런데 이 호칭을 유대인이 아닌 가나안 사람 그것도 귀신들린 딸을 둔 인방인 여자가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볼 때 정말 기가 막힐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유대인 중 그리고 제자 중에 자기 자신을 그렇게 부른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볼 때 참 흥미로운 여인이지요?

 

그런데요.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 신앙 고백에 대해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더니 예수님답지 않은 말씀과 행동을 하십니다.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거절이지요.

그런데도 이 이방 여인은 막무가내입니다.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예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다시 간청합니다.

25절입니다.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사실 이쯤 되면 우리 주님도 도와줘야 마땅하지요.

그런데요.

정말 뜻 밖에 말씀을 하십니다.

26절입니다.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개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절을 넘어 모욕이지요.

 

여기서 제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뒤도 안보고 돌아섰지요.

남은 거라곤 자존심 하나인데 그거 가만히 있겠습니까?

뒤도 안보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반전이 또 일어납니다.

저를 깨우친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27절입니다.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제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기도 제목이 이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라는 적발함입니다.

제 주인의 상만을 바라보는 적발함입니다.

왜 우리의 기도가 능력이 없을까?

왜 우리의 신앙이 진보를 이루지 못할까?

바로 이거입니다

오직 주님만이라는 적발함입니다.

제 주인의 상만을 바라보는 적발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존심 조금 상했다고 교회를 등지고 신앙을 등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기도의 능력 신앙의 진보가 있겠습니까?

 

결국 이 여인의 절박함, ‘오직 주님만이 오직 예수님만이라는 이 절박함이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