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로마서강해 8장 5-11 영의 생각

心貧者 2018. 12. 18. 15:29

영의 생각

로마서 85-11                                                      2015/8/5()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동양사상에 다르면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과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여기는 성악설로 나눕니다.

공자와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했다면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합니다.

 

맹자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기 때문에 그 본성에 주어진 4개의 마음을 잘 다스리면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유학에서는 사단이라고 부르는데 측은지심, 수오(부끄러움)지심, 사양(사양하는 마음)지심,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악하기 때문에 그냥 방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예의범절을 가르쳐야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선설과 성악설 누구의 주장이 옳다고 여겨지십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5절입니다.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을 따르는 자그리고 영을 따르는 자로 나눕니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선과 악을 묻는 도덕이라면 바울은 생명과 죽음을 묻고 있습니다. 선과 악이 라는 행동의 관점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하는 관계의 관점입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빌린다면 선악과가 아니라 생명나무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사망이 열매인 육신을 따르는 자인가 아니면 생명이 열매인 영을 따르는 자인가?’ 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

우선 육신을 따르는 자의 삶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의 삶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자라고 설명합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자이것을 새 번역 성경을 이렇게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일, 육신에 속한 것,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둘째,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이 에베소서 417-19절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4:17 그러므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곡히 권고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인들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헛된 생각을 하고

4:18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무지하고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4:19 그들은 도덕적인 감각을 잃고 제멋대로 방탕에 빠져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감각(센스)을 잃고 제멋대로 방탕에 빠져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는 사람.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육신을 따르는 자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 대해서는 아주 무감각하지만 자기 육체에 대해서는 아주 지나치리만큼 예민한 사람을 말합니다.

영적 센스라고는 전혀 없고 오직 육체적 감각만 남은 사람을 말합니다.

철저하게 자기 육체 주도적인 사람이고 모든 것이 자기가 기준인 사람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712절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황금율이 존재 하지 않는 완벽한 이기주의자를 말합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라는 사람과 그의 아내 삽비라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바나바가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 자신을 전 소유를 판 것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값의 얼마를 감추고 그 일부만 사도들의 발 앞에 둔 것입니다.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랬을까?

자신이 가진 소유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기 육체 곧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성령 훼방 죄로 둘 다 죽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비극이지요.

 

우리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육신의 소욕을 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기는 즐겨하지만 정작 그 약속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과 반하는 사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어떤 관원이라고 하는 부자청년입니다.

누가복음 1818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 청년이 참 기특한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18: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참 귀한 질문이지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영생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영생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청년이 영생에 대해서 묻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예수님이 이 부자 청년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18: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18: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정말 대단하지지요.

영생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한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전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육신을 따르는 자에서 영을 따르는 자로 변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부족한 것 한 가지는 바로 영의 생각입니다.

바울은 영의 생각을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첫째,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화평)이니라

둘째, 8:7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믿음이지요.

생명과 평안과 믿음입니다.

이것이 영의 일을 도모하는 영을 따르는 자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이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말하는데 바로 영생하는 생명을 말합니다.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죽을 몸도 살리는 생명의 영입니다.

이 한 가지가 부자청년에게 부족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을 지나 19장을 보시면 부자 청년과 대비되는 인물 한 사람이 나옵니다.

누구입니까?

삭개오입니다.

그 역시 부자청년처럼 부유한 자입니다.

그리고 세리의 일을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돈이 전부였던 사람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부자청년보다 못한 사람이 삭개오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맺게 됩니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부자청년과 다른 삭개오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생각을 접고 영의 생각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뽕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이것이 부자청년과 다른 삭개오의 강점입니다.

다시 오늘본문 89절입니다.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마칩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그 유명한 신앙고백으로 천국열쇠를 얻은 베드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같은 16장 후반부에 가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단이라고 칭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사람의 일 즉 육의 생각에만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23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

이는 베드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육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 되는 사단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추호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영의 생각이 지배하는 우리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