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요한일서 1:3,6-7 사귐의 기도

心貧者 2018. 4. 19. 13:32


사귐의 기도

요한일서 1:3,6-72018/04/18()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기도훈련 중에 하나인 주기도 매일기도(청원:petition)’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곧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십자가의 기도/금식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무덤)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문익환 목사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기도한다는 것으로, 주님의 기도를 우리들의 기도로 삼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주기도우리들의 기도로 삼아 사귐의 기도로 나아갈 때,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성령 안에서) 누리는 사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생()의 초월이요, 부활은 사()의 초월이다는 가르침을 준 신앙의 선배 다석多夕 유영모(1890-1981)이것이 주의 기도요. 나의 소원이다.’라고 말하면서, 주의 기도를 다음과 같은 우리들의 기도 즉 사귐의 기도로 담아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도 주와 같이 세상을 이기므로 아버지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옵시며.

아버지 나라에 살 수 있게 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길고 멀게 이루시는 것과 같이

오늘 여기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먹이를 주옵시며.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먹이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서로 남의 짐만 되는 거짓 살림에서는 벗어나서

남의 힘이 될 수 있는 참 삶에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세상에 끄을림이 없이 다만 주를 따라 위로 솟아남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 사람이 널리 생각할 수 있게 하옵시며.

깊이 사랑할 수 있게 하옵소서.

아버지와 주께서 하나이 되사 영 삶에 계신 것처럼

우리들도 서로 하나이 될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참말 삶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이제 주의 기도에 뿌리를 둔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왜 사귐의 기도로 나가가야 하는지?

그 이유와 뜻과 의미와 방법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기도자의 이미지가 가장 잘 그려진 성경이야기를 하나만 뽑으라고 하면, 절대 다수가 얍복 강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 야곱의 이야기를 언급할 것입니다.(창세기 32:22-32)

32:25 그리고 야곱은 혼자 뒤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타나 동이 트기까지 그와 씨름을 했다.

32:26 그분은 야곱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를 다치게 되었다.

32:27 그분은 동이 밝아오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했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놓아드릴 수 없다고 떼를 썼다.

32:28 일이 이쯤 되자 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32:29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이처럼 기도 자는 환도뼈가 위골되고 평생 불구가 될지언정,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질 수 없는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 안에서의 기도는 전투적인 투쟁이 되었고 기도하는 이는 전투에 임하는 병사처럼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자세를 가져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식의 기도에 익숙해 졌을까요?

그것은 기도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인가 요구(청원)하고, 그 요구한 것을 반드시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 기도이고 또 기도의 능력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좀 더 풀어 설명하면,

언제나 나의 요구(청원)’을 말씀드리는 것이 기도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기도의 능력이나 능력 있는 기도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혹 얻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설사 기도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정한 기도의 제목, 그 목표가 이루어 질 때까지 얍복 강변의 야곱처럼 기도의 씨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의 기도가 한국교회 기도자의 영원한 모델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왜 잘못이지라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의 이해는 매우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자기 정욕을 위한 것임을 망각하거나 애써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2-3

4:2 여러분은 욕심을 내다가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남을 시기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싸우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까닭은 하느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3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정을 채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구하기 전에 어떤 목적을 위해 그것을 얻으려는지,

그 색깔을 분명히 하도록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

만일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내 욕심(욕정)을 채우기 위해 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설사 그 기도가 응답된다 해도 그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따라서 기도 자는 무엇을 구하기 전에 앞서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지금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 그 목적을 분명히 분별하고 밝혀야 합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말처럼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반복하는 것을 기도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설교 은혜의 수단에서 나오는 기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진심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기도는 모두 위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과의 사귐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하나님께 모두 드려야 합니다.

 

기도의 참된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사귐(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으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입니다.

1:3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κοινωνία)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보냅니다.

1:5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그대들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고 하느님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1:6 만일 우리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좇아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1:7 그러나 하느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고 있으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줍니다.(대속의 은총)

 

우리말 속에 사귐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만남 접촉 우정 교제 친교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귐(친교)이라고 말할 때 적어도 5가지의 전제 조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관계의 지속성

한두 번 만나는 것으로 사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충분한 시간 동안 만나야 하고 또한 앞으로도 그 만남을 지속할 것을 기대할 때 사귄다고 말합니다.

상호 의존

서로를 향해 마음이 열리고 의존할 때 좋은 사귐이 이루어집니다.

상호 존중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애정을 전제로 합니다.

한 마디로 서로 좋아해야 사귈 수 있습니다.

관계의 발전

사귐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입니다.

진정한 사귐은 끊임없이 그 관계가 발전해 나갑니다.

다양한 활동과 표현

사귐은 다양한 활동이나 표현을 동반합니다.

예를 들자면 함께 음식을 나누거나 노래를 부르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도 있고 서로에 대한 애증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유익은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일심동체一心同體이지요.

 

요한복음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입니다.

15:3 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

15:4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이 사귐의 기도로 얻게 되는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정리합니다.

첫째, 기도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사귀는 것입니다.

기도자 편에서 말하자면, 하나님을 사모하여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과 표현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찬양으로, 때로는 하염없는 눈물로 마음과 뜻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기도가 깊어지고 널어질수록 기도 자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헤아리게 됩니다.

 

셋째, 기도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일입니다.

점점 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며, 그분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이심전심以心傳心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간구 곧 하늘 아버지께 무엇인가 요청하는 것은 그 다음 일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의 진실한 사귐을 통해 아버지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이 우선이며, 그 후에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이 조율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것을 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자녀의 기도 즉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마다 기꺼이 들어주시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