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누가복음 11:2-4절 누가복음의 주기도➁

心貧者 2018. 3. 23. 12:55


누가복음의 주기도

누가복음 11:2-42018/03/21()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11: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누가복음 주기도의 첫 단어는 아바()’ 아버지로 시작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호칭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단어는 아도나이였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주님 정도가 됩니다.

이 호칭은 유대인 사회에서 특별히 구별되었으며,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종교적 언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도나이를 사용하지 않고 아바()’ 아버지라는 일상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세 가지 의도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육신의 아버지처럼 실존하는 아버지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늘이라는 초월적 관념 속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며,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할 자세는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육신의 아버지처럼 얼마나 실존적인 존재로 믿는가, 라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6절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기도는 그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실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막연한 관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믿음으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종교적 언어인 아도나이를 사용하지 않고 아바()’ 아버지라는 일상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여라고 부른 의미는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69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초월적인 하나님을 강조한다면, 누가복음 주기도의 아버지여는 우리 가운데 내재()하셔서 늘 내 편이 되시는 보혜사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 두 가지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누가복음 주기도가 아버지여로 시작되는 이유는 육신의 아버지처럼 실재하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초월적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늘 내 편이 되어 우리 가운데 내재(함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재와 내재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담아 낸 호칭, ‘아버지여는 다분히 의도적인 하나님의 호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호칭 때문에 성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빌미를 주었고 결국 십자가를 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 호칭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셨으며, 그의 자녀 또한 장차 같은 반열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다음은 누가복음 주기도에 나오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기도의 내용은 크게 5가지의 청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이다가 없음)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나하나 깊이 살피는 것도 좋겠지만 주어진 시간 상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1.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 유일한 길이 바로 이어서 나오는 두 번째 청원에 등장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에덴동산처럼 그리고 예루살렘성전처럼, 하나님이 친히 거하셔서 이 땅의 통치자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그리고 우리 삶에 그리고 우리 몸 안에 임하여서 홀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2. 나라가 임하시오며

두 번째 청원인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성령의 강림(파루시아)과 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아)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우리가 흔히 성령의 충만함(성령의 통치 상태)이라고 표현합니다. 요한복음 2021-22절입니다.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성품이 항상 충돌하는 내 성품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이 항상 엇나가는 내 뜻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항상 이기적인 내 나라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의 모든 것이 항상 성령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한 성령이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고 통치하게 나의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의 강림(파루시아)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옛사람 즉 지금까지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우리의 육체가 이를 거부하고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설명입니다.

로마서 7장입니다.

7:14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육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7: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7:16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7:17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7: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7: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은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우리의 육체는 여전히 성령의 법보다는 육체의 법을 더 신뢰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인해야할 것 세 가지를 누가는 이어서 그 다음 기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먹는 문제 곧 육신의 정욕(먹고 마시고 입는 소유욕)입니다.

요한일서 216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재물)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둘째, 죄와 그로 인한 악의 문제입니다.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셋째, 시험 곧 넘어짐(믿음의 꺾임)의 문제입니다.

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이 세 가지를 날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 부인할 때, 앞에서 먼저 언급한 기도 두 가지 즉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늘 강조하지만 우리의 의지나 우리의 노력으로는 이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께 날마다 세 가지의 기도를 요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법에 따라 순종하는 연습을 통해 시험에 들지 않는 길을 올곧게 걸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주기도가 가르쳐준 기도의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주기도가 가르쳐 주는 것은 기도의 내용만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의 자세 곧 기도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그러자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데 그것이 누가복음이 전한 주기도가 됩니다.

그런 후 이어서 두 가지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하나는 간청하는 벗의 비유입니다.

1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가 밤중에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내게 빵 세 개를 꾸어 주게.

11:6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는데, 그에게 내놓을 것이 없어서 그러네!' 할 때에,

11:7 그 사람이 안에서 대답하기를 '나를 괴롭히지 말게.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누웠네. 내가 지금 일어나서, 자네의 청을 들어줄 수 없네' 하겠느냐?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비유 속에 담긴 기도자의 자세신뢰입니다.

절대 신뢰이지요.

제자들이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가져야 할 으뜸가는 기도의 자세는 신뢰입니다.

(친구)을 신뢰하듯 기도자의 벗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또한 비유 속에 담긴 기도자의 자세는 친밀함입니다.

교통, 교제이지요.

기도란 벗에게 하듯이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벗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염치없이 간청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11: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주어질까요?

11:10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반면 신실한 기도를 들은 아버지는 어떤 태도, 어떤 자세를 우리에게 취하실까요?

이어서 나오는 아버지의 비유를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잘 나타납니다.

11:11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11:12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처럼 기도자인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응답은 바로 성령의 통치(충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