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시편101:1-8절 어떤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가?

心貧者 2017. 12. 12. 10:48


어떤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가?

시편101:1-82017/12/10 구주강림 2
101:1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101: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101:3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101:4 사악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101:5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101: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101:7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101:8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고난 받는 이들과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주 우리는 교회력의 시작을 알리는 대림절 첫 주를 보내면서 기다림 초를 밝혔고 성탄 트리와 함께 화려한 성탄 장식도 예쁘게 꾸몄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단 한 분.

단 한 분을 기다리고 영접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위해서입니다.

 

기다릴 대, 임할 임, 마디 절이 세 개의 단어로 형성된 절기가 대림절입니다. 그 뜻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 가운데 임하실 그리스도 곧 구세주가 되시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절기가 됩니다.

기다리는 절기이지요.

그래서 대림절에 밝히는 네 개의 촛대를 우리가 기다림 초라고 따로 구별해서 부릅니다.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을 영어로는 Advent라고 부릅니다.

오셨다, 도착했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된 말이지요.

그런데 라틴어 adventus ‘오셨다, 도착했다라는 뜻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리스도의 강림, 메시아의 오심과 연결 지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라틴어 adventus가 가지고 있는 용법 때문입니다.

라틴어 adventus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운송수단이 도착했을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러면 언제 사용될까요?

세상을 구원할 만한 큰 힘을 가진 분이 도착했을 때

그 때 사용되는 단어가 라틴어 adventus입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전쟁에 나갔던 왕이 자기 백성을 구원할 만한 승전보를 않고 자기 성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사용되는 단어가 바로 라틴어 adventus입니다.

아주 특별하지요.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리스도의 강림, 그리스도의 오심, 그리스도의 도착을 라틴어 adventus와 연결 짓게 되었고 훗날 대림절을 영어로 Advent(에드벤트)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라틴어 ‘adventus’

세상을 구원할 만한 힘.

그 힘을 가진 분이 우리 가운데 도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이 땅에서 불의함이 사라지겠지요?

왜 그렇습니까?

그 분은 공의로우신 분이니까.

 

또 세상의 어둠이 사라질 것입니다.

왜요?

그 분은 그림자가 없는 분이니까.

또 애통하는 것이나 아픔이나 억울함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은 긍휼과 자비로 가득한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우리들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도 그런 상상을 했지요.

우선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가 기대했던 adventus입니다.

장차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 그리스도가 강림하시면 이런 일이 벌어질까?

마태복음 121절입니다.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자기 죄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백성.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가 바라고 기대했던 하나님의 adventus, 그리스도의 오심이지요.

 

또 하나 마태가 꿈꾸었던 하나님의 오심, adventus가 있었습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예루살렘 곧 성전 속에 갇힌 제사장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든

그래서 애통하고 신음할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들.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입니다.

마태복음 123절입니다.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반면 복음서를 가장 먼저 기록한 마가는 하나님의 오심, adventus를 이렇게 기대했습니다.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일하시는 복음의 시작이지요.

어떻게요?

모든 병자와 모든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치료하시고 회복하시는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유독 기적사회 즉 기적 이야기가 마가복음에 많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귀신의 왕 바알세블의 힘을 빌려 병을 고친다는 오해까지 받았겠습니까?

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3: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하지만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이 부분을 아주 명확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일하시는 복음의 역사가 드디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누가복음을 기록한 저자 누가가 기다리는 하나님의 오심, adventus입니다.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이사야 611-2절의 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오심, adventus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용 부분인 누가복음 418-19절만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소개합니다.

4: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그리고) 4:19 주님의 은혜의 해(희년)를 선포하게 하셨다."

 

단 한 번도 이스라엘 땅에서 지켜진 적이 없었던 희년

희년 Jubilee’를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해방과 자유이지요.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그리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는 해방과 자유입니다.

그 은혜의 해 희년 Jubilee’를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 기다림이 흥분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 난 성탄을 누가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로 찬양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 요한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오심, adventus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바로 '참 빛'입니다.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혼돈과 공허 그래서 흑암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무정하고 무감각하고 무지한 심령.

그 심령을 비추는 진리의 빛 생명의 빛 바로 참 빛입니다.

 

이러한 모든 소망을 담아 만들어진 대림절 전통이자 풍습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advent wreath 대림 화환을 만들어 문설주나 인방에 거는 전통입니다.

 

대림 화환의 주재료는 소나무나 전나무 같이 늘 잎이 푸르른 상록수를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기 위해서입니다.

거기에 호랑가시나무 줄기를 엮거나 또는 월계수 잎을 꼽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고통과 박해 그 어둠에 굴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advent wreath 대림 화환이 둥근 원을 그리는 이유는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뜻합니다.

또한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주어지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림 화환에 꼽는 솔방울이나 열매는 믿는 이들이 거두는 열매로서의 생명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오랫동안 교회가 이어온 대림절의 전통이자 풍습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

대림절을 맞이하는 이의 마음가짐이 세 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시편 1011-2절입니다.

101:1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101: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여기에 보면 우선 대림절을 기다리는 자의 마음가짐이 세 단어로 요약됩니다.

첫째 인자입니다.

인애와 자비 곧 사랑이지요.

둘째, 정의입니다.

강직하고 올곧은 마음이지요.

셋째, 완전한 마음인데 새 번역 성경은 이 부분은 흠이 없는 마음으로 번역 놓았습니다.

흠이 없는 마음이지요.

 

그런데 이런 제안에 당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주 반감을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허물과 자신의 악과 그리고 자신의 죄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 흥분하지요.

세상에 흠 없을 사람이 어디 있어?’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문제는 이런 반감이 자신의 불순한 의도와 자신의 불의한 마음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의로운 마음과 흠 없는 마음을 향해 끊임없이 야지를 놓지요.

세상에 흠 없을 사람이 어디 있어?’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심지어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강직하고 올곧은 마음 그리고 흠이 없는 마음을 품은 사람들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사실 이 말씀의 뜻은 어느 누구도 율법으로는(장로의 유전으로는) 정죄도 심판도 받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인데 강직하고 올곧은 마음 그리고 흠이 없는 마음을 품은 사람들의 입막음으로 왜곡해서 사용하고 있지요.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 시인이 말하고 있는 완전한 마음 다시 말해 흠이 없는 마음이란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공의 즉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일치된 삶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린다면 그리스도 안에이지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일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오심, adventus를 기다리는 자의 마음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이렇게 조율합니다.

대림절을 기다리는 두 번째 자세인데,

3절과 4절을 새 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립니다.

101:3 불의한 일은 눈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렵니다. 거스르는 행위를 미워하고, 그런 일에는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101:4 구부러진 생각을 멀리하고, 악한 일에는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제 눈에 확 들어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101:3 불의한 일은 눈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렵니다.

(그리고)101:4 구부러진 생각을 멀리하고, 악한 일에는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현실 속에서 이렇게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세상과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동업자의 윤리'를 어겼다는 타박도 듣겠지요.

그리고 '제발, 품위 좀 지키라'는 비난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이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불의한 일은 눈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렵니다.

그리고 구부러진 생각을 멀리하고, 악한 일에는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

(시편1:1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마지 막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오심, adventus를 기다리는 자의 모습입니다.

역시 새 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101:5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는, 침묵하게 만들고,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는, 그대로 두지 않으렵니다.

101:6 나는 이 땅에서 믿음직한 사람을 눈여겨보았다가, 내 곁에 있게 하고, 흠이 없이 사는 사람을 찾아서 나를 받들게 하렵니다.

101:7 속이는 자는 나의 집에서 살지 못하게 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앞에 서지 못하게 하렵니다.

101:8 이 땅의 모든 악인들에게 아침마다 입을 다물게 하고, 사악한 자들을 모두 주님의 성에서 끊어버리겠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의 기다림과 그들의 마음가짐을 살펴보았습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기다림이 그들의 삶을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오심, adventus, 나는 어떤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가?’

그런 고민 중에 만난 찬양이 찬송가 98장입니다.

함께 읽어보고 불러 볼까요?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 이곳에 오셔서 기도 들어 주소서
능하신 주께서 크신 일을 행하사 /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보좌를 떠나서 사람 몸을 입었네
높은 자 낮추고 비천한 자 높였네 / 만민 위해 오셔서 사슬을 풀어주소서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 죄악 된 세상에 속죄 주로 오셨네
주린 자 먹이며 병든 자를 고쳤네 / 천하 만민 돌보사 빛의 길 가게 하소서 아멘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