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요한복음 18:37-38절 2017/08/25(금)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아주 익숙한 두 분이 등장합니다.
누구누구입니까?
한 분은 유대 땅을 총괄하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이고 또 한 분은 갈릴리 출신의 떠돌이 전도자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사실 이 두 분은 그 어떤 것으로도 조합이 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혈통이나 출신배경이나 신분이나 관심사나 그 어떤 것으로도 조합할 수 없는 관계이지요.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 그리고 예루살렘이라는 한 공간 안에 있었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조합을 이룰 수 없는 관계가 빌라도와 예수님의 관계입니다.
이 둘이 만나 시간은 불과 6시간 정도입니다.
로마 총독이 거하는 공관(관저)에 예수님이 끌려온 온 시간이 새벽이고, 심리를 마친 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준 시간이 제 육시 곧 낮12시이니까 약 6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이 두 분이 만남을 가집니다.
그런데요
빌라도하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아주 부정적이지요.
교회사에서 ‘본디오 빌라도’라는 낯선 이름이 아주 부정적으로 들어오게 된 배경은 4세기에 완성된 사도신경 때문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교회에서는 오늘날까지 아주 부정적인 인물로 본디오 빌라도를 꼽습니다.
‘본디오 빌라도’ 원래 이름은 ‘폰티우스 필라투스’입니다.
‘폰티우스 필라투스’와 예수님의 짧은 대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주 내용인데,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주 명확하게 드러낸 유일한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33절 마지막에 나오는 질문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당신이 유대인의 메시야인가?’
바로 이 질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관련된 이 본질적인 질문이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레바논 출신의 신비주의 시인인 이 분이 ‘사람의 아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을 보면 예수님과 처음 대면했을 때, 빌라도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의 내용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는(예수는) 두 팔을 뒷짐 지워 노끈으로 꽁꽁 묶인 채 재판정으로 끌려왔었습니다. 나는(빌라도) 단 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나를 향해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곧추 버티고 서서 고개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내게 무엇이 일어났던지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나는 일어나 단에서 내려가서 그 앞에 엎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가이사라 곧 로마의 황제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 재판정 안에 들어온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중간생략)……
심문을 했지만 그는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 속에는 불쌍히 여기는 빛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내 통치자요 재판장이기나 한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로마의 황재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 그 거룩한 분 앞에 지금 서 있구나!’ 하는 느낌.
이것이 ‘폰티우스 필라투스’, ‘본디오 빌라도’가 느낀 예수님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짜고짜 묻은 질문이 33절, ‘당신이 유대인의 왕인가?’입니다.
33절을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빌라도가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동족 유대인과 달리 어떠한 편견도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향이 어디냐? 나이가 어떻게 되냐? 직업이 뭐냐? 학교는 어디에 나왔느냐?’ 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아주 단순하게 사실 확인 차에서 묻는 것입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대꾸한 줄 아십니까?
34절입니다.
1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라는 그 질문이 빌라도 당신 생각에서 나온 말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을 듣고 하는 말인지를 우선 밝히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역정을 냅니다.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나는 제 삼자이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현행법으로 심판권자인 나에게 넘겨주었으니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그 사실만을 바르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본디오 빌라도’가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나라 바로 하나님이 친히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님으로부터 듣게 됩니다.
36절입니다.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있어서 유일한 나라는 오직 로마제국뿐이었습니다.
황제(가이사라)의 나라 로마 제국이지요.
그런데 감히 로마 제국에 속하지 않은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로마의 황제가 지배할 수 없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충격이지요.
더 놀라운 것은 싸울 군대도 없는 나라가 그 나라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36절입니다.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로마제국의 힘은 바로 강력한 군사력입니다.
‘레기온’이라고 하는 강력한 ‘군단’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그런데 그런 군단이 필요 없는, 힘의 논리가 통하지도 않는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더욱 궁금해진 빌라도가 단도직입으로 묻습니다.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그러면 ‘네가 그 나라의 왕이냐?’고 묻습니다.
군대도 없고 힘도 없는 그래서 죄인의 몸으로 온 당신이 로마제국을 넘어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왕 중에 왕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주님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다시 37절입니다.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그래 내가 바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나라의 왕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총독 빌라도의 입을 통하여 이 사실이 선포되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지요.
이것이 본디오 빌라도를 통하여 말하고 있는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문제는 37절 후반부입니다.
‘진리에 속한 자만이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에 속한 사람만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자 본디오 빌라도가 다시 꼭 집어 질문합니다.
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님이 주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진리를 거스르는 빌라도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한 호기심만 가지고 있지 그 진리를 찾고 그 진리를 구하고 그 진리와 함께 마주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무엇이냐’는 빌라도 질문에 우리 예수님이 답을 주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폐단 중에 꼭 해결해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비겁함’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호기심만 가지고 있지 애쓰거나 힘들여 진리와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처럼 ‘진리가 무엇인가?’
그 호기심만 가득하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떳떳하게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또 ‘교회란 무엇인가?’
그 호기심만 가득하지 그 몸 된 교회가 되려고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 호기심만 가득하지 그 신앙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믿음이 무기력하고 형식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지요.
경건의 모양만 있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호기심을 넘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떳떳하게 마주하십시오. 매순간 그렇게 하십시오.
또 ‘참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그 호기심만 갖지 말고 스스로 참된 교회가 되십시오.
참된 교회답게 선한행실을 행하시고 사랑을 행하십시오.
또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라는 호기심만 품지 말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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