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느헤미야 9:32-38 부끄러움

心貧者 2017. 8. 22. 13:55


부끄러움

느헤미야 9:32-38 2017/08/20 성령강림 후 11
9:32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9:33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9:34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9:35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9:36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9:37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9:38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남한과 북한이 유일하게 겹치는 국경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 날이 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815일 광복절입니다.

 

지난주 15일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 난지 72년을 맞이하여 기념하는 광복절이었습니다.

광복,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빛을 다시 찾았다는 뜻입니다.

빛을 다시 찾았다

다른 말로는 해방, 자유가 되겠지요.

 

하지만 72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광복이라고 말하기에는 곳곳이 어둠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물질의 풍요로 인해 역사의 어둠이 약간 가려진 것처럼 보일뿐이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역사의 어둠은 여전합니다.

 

특히 가해자였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친일 부역자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의 자기반성이 없지요.

그 때는 다 그랬다는 식이지요.

아주 악질적인 친일 행적으로 반민특위에서 조사를 받았던 춘원 이광수가 그랬다지요?

대일본제국이 이렇게 망할 줄 몰랐다...

늦었지만 현 정부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지요.

왜냐하면 정작 반성하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정해야할 분들이 반성은커녕 부끄러움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의 분열과 분단의 고착은 조국의 광복, 겨레의 해방을 더욱 빛 바라게 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유일하게 겹치는 국경일이 광복절이지만 자기 입맛에 맞는 서로 다른 광복절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비극이자 우리 민족의 아픔입니다.

 

더 슬프고 아프고 비참한 것은 이런 어둠의 역사에 발목 잡혀 남한이나 북한이나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199810월입니다.

가을 하늘이 드높은 날.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조국의 선교를 위해 제6차 그리스도인 모임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습니다.

재일대한기독교회 소속 오사카교회에서 사흘간 열렸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교단인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기감, 기장 등 6개 교단과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재일대한기독교회,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 교단 대표 백오십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1세기 문명사적 전환과 우리 민족 공동체의 미래라는 주제로 일본 오사카에서 모였습니다.

 

그 때 개회예배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당 밖 입구에 손을 씻을 만한 큰 대야를 준비해 놓고 들어가는 이마다 자기의 손을 씻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전쟁과 분열로 인해 흘렸던 피의 기억들을 그 부끄러웠던 기억들을 씻어내자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배당 들어오는 입구에 맑은 물을 준비해 놓고 자기 손을 씻는 퍼포먼스를 하고 예배당에 입장했던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입장할 때는 반주자가 '고향의 봄'을 연주했습니다.

고향의 봄이 연주되자 누구라 할 것 없이 남북의 대표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입장했습니다.

뭉클한 순간이었지요.

 

그날 말씀은 당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 위원장이 전도서 512.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본문으로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부른 노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런 예배마저 지금 완전히 단절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도 어김없이 815일 광복절을 맞아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문을 우리가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린 기도문으로 함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에스겔 3716-17)

 

자비하신 하나님!

올해도 어김없이 8월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남과 북에서 따로따로 광복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얼마나 혹독한 세월이 흐르고, 잔인한 대결 속에 지냈습니까? 비록 일제의 억압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민족끼리 증오하고 있으며, 여전히 주변 나라들의 간섭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지난 72년 동안 하나 되는 꿈을 꾸었지만, 속마음과 달리 서로 등지고 원수처럼 살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식구들이 나뉜 채 살아가며, 다른 체제와 이념으로 분단의 담을 높이 쌓았습니다. 주님, 이 민족의 역사에 거룩하신 두 손으로 개입하시길 원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통일을 소망하게 하시고, 서로 협력함으로 희망의 땀을 흘리게 하소서. 해마다 8월을 맞을 때마다 우리로 가슴 찢어 회개하게 하시고, 저마다 가슴 벅찬 소명을 품게 하옵소서

 

평화를 이끄시는 하나님!

주님,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의 민족이요, 같은 동포라고 하면서 서로 증오하였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 6.15남북공동선언, 10.4남북정상선언의 정신을 훼손하였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문빗장을 굳게 닫아걸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은 더 큰 위험과 위협 속에 놓였습니다. 주님, 평화를 목말라하는 우리의 간절한 호소를 들어주시옵소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주님, 우리가 또 꿈을 꾸게 하소서. 외세와의 군사훈련이 필요치 않은 금수강산, 이웃 강대국들에게 간섭과 부림을 받지 않는 새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8.15 해방의 감격, 그 때의 초심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하루속히 소통의 문이 열리게 하시고, 공동번영을 위해 어깨동무하게 하시며, 허심탄회하게 남과 북이 만나게 하옵소서. 주님, 이 땅에서 화해와 포용의 역사를 새롭게 열어가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우리나라, 삼천리에 성령의 은총을 내리시옵소서. 평화의 맑은 햇살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두루 비추고, 기쁨의 소나기가 온 나라의 메마른 대지를 적시게 하옵소서. 이 땅과 세계에 흩어진 팔천만 민족이 누구나 행복하고, 저마다 주인으로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 되어 더욱 커진 우리 민족이 온 세계를 두루 섬기게 하옵소서. 평화의 임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017815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포로 후손중의 한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비록 포로의 후손이었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 111절에 따르면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을 따르는 페르시아(바사제국)의 관원이라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오늘날로 이야기 하면 청와대 비서실장급이지요.

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곁에서 술을 따르는 관원.

그만큼 느헤미야에 대한 왕실의 신뢰가 깊었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조국 이스라엘에 대한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유대로부터 온 형제를 통해 조국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1: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1: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3절만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3 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사로잡혀 오지 않고 그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거기에서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국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마음이 찢어지지요

1장입니다.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그런데요.

느헤미야가 위대한 것은 바로 그 다음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했다)

 

참담한 조국의 현실 앞에서 아파하며 슬피 울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금식과 기도를 통해 하늘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지요.

금식과 기도를 통해 하늘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느헤미야에게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바로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수축하고 불에 탄 모든 성문들을 다시 다는 하늘의 사명, 하나님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수치와 모욕 그리고 이스라엘과 언약한 하나님의 수치와 모욕을 씻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로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막중한 사명이었지요?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 사명 앞에 무릎 꿇고 순종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왕의 술 관원이라는 요직이자 개인의 영달을 버리고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에 유다의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예루살렘 돌아온 총독 느헤미야가 펼친 정책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무기력한 절망감에 빠져있던 백성들.

그들을 설득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고 불에 탄 성문을 다시 다는 일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아주 고질적인 적폐이자 병폐였던 착취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조차 버거웠던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던 예루살렘 귀족들과 관리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입니다.

특히 어떻게 하면 백성들에게 비싼 이자를 받는 부끄러운 일을 포기하게 할까? 입니다.

 

어떻습니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느헤미야는 십이(12) 년 동안 총독으로 있으면서 이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두 가지 힘 때문입니다.

 

하나는 솔선수범입니다.

총독 느헤미야의 솔선수범이 있었기에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총독 느헤미야의 희생입니다.

십이 년 동안 예루살렘 총독으로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특권을 포기한 느헤미야를 백성들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귀족들과 관리들이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일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주변 나라들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지요.

특히 사마리아 사람 산발랏의 방해와 모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암살까지 모의 했으니, 순탄치 않았지요.

 

하지만 그런 온갖 방해 속에서도 예루살렘 총독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함께 무너졌던 성벽을 다시 쌓고, 불타 사라졌던 문들을 제자리에 다는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특히 암흑의 역사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역사, 빛의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러자 총독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예루살렘 성전 수문 앞 광장에 모두 모아 놓고 학사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합니다.

그러자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아십니까?

무너졌던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었던 하나님의 말씀들이 드디어 예루살렘 백성들 마음속에서 회복되게 됩니다.

85-6절입니다.

8: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함께 읽습니다.

8: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리고 곧 바로 일어난 일이 바로 이스라엘의 회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 가슴에 전달되자 참된 회개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이스라엘 민족의 회개기도입니다.

32절부터 새 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립니다.

9:32 우리 하나님, 위대하고 강하고 두렵고, 한 번 세운 언약은 성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앗시리아의 왕들이 쳐들어온 날로부터 이 날까지, 우리가 겪은 환난을, 우리의 왕들과 대신들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조상들과 주님의 모든 백성이 겪은 이 환난을 작게 여기지 마십시오.

9:33 우리에게 이 모든 일이 닥쳐왔지만, 이것은 주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은 우리가 저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셨습니다.

9:34 우리의 왕들과 대신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은 주님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타이르시는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9:35 그들은 나라를 세우고 주님께서 베푸신 큰 복을 누리면서도, 눈앞에 펼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에 살면서도, 주님을 섬기지도 않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도 않았습니다.

9:36 그러나 보십시오. 오늘 이처럼 우리는 종살이를 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좋은 과일과 곡식을 먹고 살라고 우리 조상에게 주신 바로 그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습니다.

9:37 땅에서 나는 풍성한 소출은, 우리의 죄를 벌하시려고 세운 이방 왕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 왕들은 우리의 몸뚱이도, 우리의 가축도, 마음대로 부립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서운 고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9:38 이 모든 것을 돌이켜 본 뒤에, 우리는 언약을 굳게 세우고, 그것을 글로 적었으며, 지도자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그 위에 서명하였다.

 

자신의 죄악과 부끄러움을 아는 철저한 자기반성이지요.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자기반성이라는 부끄러움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속한 느헤미야 9장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이름을 찬양한 후 창조의 신비에 대해 노래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상기한 후, 애굽으로부터의 구원과 광야에서의 보살피심 그리고 시내산에서 맺은 계약에 대해 서술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발자국마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었던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지만입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은총을 한 순간에 단절시키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자기반성 곧 부끄러움이 없는 거짓된 회개, 가짜 회개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일한 은총의 통로인 자기반성’, 부끄러움의 길을 막고도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무감각 무정 그리고 무지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길이 막혔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916절입니다.

9:16 그들과 우리 조상들이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9:16 그러나 우리 조상은 거만하여, 목이 뻣뻣하고 고집이 세어서,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거만하고, 목이 뻣뻣하고, 고집이 세어서,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불성실하고 게으른 백성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겠지요.

그래서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요.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워진 의무는 단번에 완전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고 다시 일어나라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의 마음을 (잘못을 뉘우쳐 깨닫는) 회오(悔悟)와 뉘우침 속에서 깨끗하게 비우는 것이다.

 

(잘못을 뉘우쳐 깨닫는)회오는 자아(self)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없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비롯된다.

우리의 실패를 뉘우치는 것이 스스로 완전한 줄 알고 만족하는 것보다 더 거룩하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선집3, <누가 사람이냐>, 이현주 옮김, 종로서적, 1996420, p.161).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자기반성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할 은혜의 통로임을 다시 한 번 깨닫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래야 무감각 무정 그리고 무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거만하고, 목이 뻣뻣하고, 고집이 세어서,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불성실과 게으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주저하지 말고 은총의 통로인 진정한 회개로 우리 모두 나아갑시다. 금식과 기도로 그리고 두손들고 하늘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러면 하늘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