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풀이

마태복음 28: 18-20 제자이십니까?

心貧者 2017. 7. 18. 15:11


제자이십이까?

마태복음 28:18-202017/07/16 성령강림 후 6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얼마 전, 어느 시골 교회 목사님이 책 한 권을 출판했습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참 재미있습니다.

목사 사용 설명서입니다.

교인이라야 전부 70을 넘는 할머니 권사님 할머니 집사님들뿐인 작은 시골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쓴 책의 제목이 목사 사용 설명서입니다.

 

이 분이 이 책을 쓴 이유가 있습니다.

목사를 불상처럼 모시고만 살지 말고 제발 좀 사용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이 분이 목회하는 곳이 충청북도 영동 시골마을 인데 지역 특성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친구처럼 자식처럼 여기는 텔레비전이 고장 나도 A/S를 부를 줄 모르는 것입니다. 김 권사님 텔레비전이 고장 나면 이 권사님 댁에서 그러다가 이 권사님 댁 텔레비전이 고장나면 마을회관에서 이런 식입니다.

보일러가 고장 나도 그냥 참고 계시고 선풍기가 고장 나도 그냥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식이 오면 그 때 몰아서 해결하시는 것이지요.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한 젊은 목사님이 교회 뒤 게시판에 이렇게 써서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

 

1. 보일러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2. 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전화합니다.

3. 냉장고, 전기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4. 휴대폰이나 집전화가 안되면 전화합니다.

5.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이 있으면 전화합니다.

6. 농번기에 일손을 못 구할 때 전화합니다.

7.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도움을 청합니다.

8. 몸이 아프면 이것저것 생각 말고 바로 전화합니다.

9.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합니다.

10.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싸우지 말고) 전화합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물한계곡교회(충복 영동)

담임목사 김선주

745-0884, 010-0000-0000

 

이 분이 자신의 목회이야기를 책으로 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목사는 교인들이 사용해야할 존재이지 모셔놓고 바라보는 불상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교회에 알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둘째,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목회자와 더욱 가까워지고 친숙해지는 즐거움을 누리기는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목회 경력이 짧은 젊은 목회자이지만 당돌하다는 시선을 무릅쓰고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축복이다라는 소제목 나오는 글인데, 저는 김선주 목사님이 쓴 이 글이 아직도 마음에 담겨져 있습니다.

 

나는 목회자로서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비는 기도를 가끔 한다.

하지만, 축복이 관념의 언어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일손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손을 제공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지금 당장의 축복이다. 목마른 사람에게 지금 당장 물 한 모금을 주는 것이 축복이다.

막연한 미래를 기대하게 함으로서 현실의 목마름을 이기게 하는 것은 축복을 가장한 위선이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내세의 축복이나 먼 미래에 혹시 다가올 행운을 기대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성도들이 받아야만 되는 긴급한 축복을 망각하게 만든다.”

 

어떻습니까?

공감이 되시는 지요?

 

꽤 오래 전에 읽은 책에서 발췌한 글인데, 한 번 깊이 생각할 만한 글이라 여겨 소개할까 합니다.

오해 없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일 년에 한 번 목사와 개인적으로 식사할 시간을 만들지 못한다면 목사도 문제고 교인도 문제다.’

이상하게도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갔지요.

그래서 제 독서 노트에 이 글을 기록해 두었지요.

 

문자 그대로 꼭 식사를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영적 스승이자 영적 아버지인 목사와 개인적인 만남 을 가지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목사에게도 그렇고 교인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늘 아쉽지요.

 

오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소위 지상명령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을 다시 읽을 텐데 승천하시기 전, 부활하신 주님이 마지막으로 남김 말씀입니다.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말 번역본에 따르면 3가지의 지상명령이 등장합니다.

첫째,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둘째,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셋째,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치 세 가지의 명령이 주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리스어 원문을 보면 명령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입니다.

젓 먹이처럼 내 품 안에서만 머물러 있으려 하지 말고 나가서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세례를 베풀고 그리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모든 선교의 미션은 결국 예수님의 제자 만들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궁극적인 사역이자 목표였고 이것이 또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인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할 사역의 방향이자 종착점입니다.

다른 길이 없지요.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그리고 모든 족속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길.

오직 이 길 뿐입니다.

 

미국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의 비전문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To Make the Disciples of Jesus Christ for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킨다.’

 

이것은 미국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만의 비전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비전문이지요.

 

그러면 왜 우리가 꼭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도 있고 공자의 제자가 될 수도 있고 마호메트의 제자가 될 수도 있는데 왜 우리가 꼭 예수의 제자가 되여야만 합니까?

오늘 본문 2818절 말씀 때문입니다.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누구에게 있다?)내게 주셨으니

 

왜 우리가 꼭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오직 예수님에게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우리 예수님 보다 더 위대하고 강하신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9:6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2)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3)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2)'놀라운 자, 조언자

3)'권좌에 앉으신 이

 

기묘자wonderful(원더풀), 놀랍고 대단하고 훌륭하고 멋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모사’, 카운슬러, 조언자, 조력자,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이 둘을 합하면 놀라우신 조력자, 놀라우신 조언자, 놀라우신 상담자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스승이 될 수밖에 없지요?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 합니다.

왜 우리가 꼭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 두 번째 이유는 그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영존하시는 아버지하늘 보좌 하늘 권자에 앉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왜 예수님의 제자가 꼭 되어야만 하는가?

네 번째 이유는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평강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샬롬’, ‘샬롬이 되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괴로움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렇습니다.

마치 조율이 되지 않아 팽팽하게 당겨진 기타 줄처럼 언제 소리와 함께 끊어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도 참 모질고 거칠어졌습니다.

비난과 빈정과 냉소와 모욕과 폭언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까요?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

전쟁의 소문을 잔잔케 하는 평화의 싹이 트이게 되는 것입니다.

 

후렴 가사입니다.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되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되

하날세(우리 모두다) 하날세(우리 모두다) 하날세(우리 모두다) 하날세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제자이십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꼭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첫째, 여러분의 생명이 다하도록 배우는 일에 좀 열심을 다하십시오.

호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탄식처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6:4) 하나님의 탄식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제자인 우리가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 수 있는 공적인 예배 시간과 과 속회 시간을 제발 꼭 사수하십시오.

핑계를 멈추시고 도망도 좀 그만 가세요.

여러분들이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버리는 순간 여러분의 이름도 그분의 생명책에서 버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두 번째, ‘influence(인플런스)’ 입니다.

이왕이면 영향력이 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베드로 야고보 요한처럼 이왕이면 영향력 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선하게 드러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예수님이의 제자가 되십시오.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존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5-16절의 말씀입니다.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감 있는 제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존재감을 드러내되 불상처럼 가만히 섬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처럼 섬김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제자가 되십시오.

빌립보서 26-8절입니다.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냥 죽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영광으로 감추어졌던 우리의 선한 존재감이 비로써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첫째,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연습하는 제자가 되십시오.

둘째, ‘influence(인플런스)’ 이왕이면 선한 영향력이 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마지막 셋째, 어떤 영향력인가?

우리 예수님처럼 섬김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제자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