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찬송
빌립보서 1:3-11 2017/07/09 성령강림 후 5주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1: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빌립보서는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빌립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옥에 갇혀서 쓴 편지’
이런 편지를 우리가 ‘옥중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옥중 서신’하면 항상 두 분이 떠오릅니다.
한 분은 문익환 목사님이고 또 한 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이분들이 쓴 옥중 서신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납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래 바로 이게 진자 신앙이지’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우선 문익환 목사님의 옥중 서신 중 일부만 발췌해서 소개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그 고령에 열흘이나 저를 위해서 같이 금식하신 일 생각하며 저는 뼈 마디마디로 울었습니다. 지난 추석날 열흘 굶으신 몸으로도 이 아들을 보려고 내려오시려고 하셨다니 정말 어머님은 불사조이십니다. "하나님, 어떻게 다 감사하오리까?"
온 가족이 제 건강 회복에 자신을 가져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조금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무 쾌속이어서 주위는 물론 저도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닷새째인 오늘 아침 2백 원짜리 큰 사과 한 알에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먹어 치우고도 별로 먹은 것 같지 않을 정도입니다. 장기 단식 후 회복으로서는 이건 신기록이 아니라 초기록입니다. 요가를 계속했기 때문에 위장 기능이 거의 약화되지 않은 데도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붙들어 주시지 않고서야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마냥 앉아서 밥알 한 톨 한 톨 씹다 보면, 그 밥알 하나하나가 입 속에서 달디단 미음이 되면서 농민들의 애타는 기도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다가 온 입안이 단 미음으로 가득 찼을 때는 그것이 저의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한 숟갈 한 숟갈 그렇게 먹고 있으니 식사 시간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그리고 먹은 것이 살로 가는 거죠. 마지막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좀 아쉬워지면서도 '이 몸에서 타오를 농민들의 애타는 기도 꺼지지 않게 해 주시고 배신하지 않게 해 주소서'하고 기도를 올립니다.
아, 이 땅에도 하루속히 우리의 절망 바로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희망, 부활의 아침이 찾아오기를! 우리 다 같이 두 손 모아 빌어야 하겠습니다. 그 폭발로 부서졌던 뼈, 살점들이 성령의 바람으로 새 공동체의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빌어야겠습니다.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머니, 그것은 ‘네게 좋은 건 남도 좋아하니 그대로 해주어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주는 것을 받는 것보다 좋아해라’는 말씀도 그것이구요. 준다고 할 때 가장 싸면서 가장 값진 것, 곧 마음을 주는 일이지요. 바울의 말을 빌리면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는 자와 같이 웃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내가 배고파 봤기에 남의 배고픈 서러움을 알아주는 마음’이기도 하구요. 이 마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마음 바탕인 것입니다. 잠언에 ‘저의 집 개 배고픈 걸 알아주는 것’을 정의라고 했더군요. ‘이웃을 네 몸같이’라는 말도 바로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 익환이가 이렇게 다시 난 것을 저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 주시고 하나님께 감사해 주십시오. 어머님이 63년 전에 어머니의 첫아기로 저를 세상에 낳아 주신 일을 저는 지금처럼 하나님께 감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끝도 없이 쓰고 또 쓰고 싶지만 지면이 다해서 이제 그만 붓을 놓겠습니다. 부디 보중하시고 건강하셔서 10월 접견 때 뜨겁게 안아 뵙고 싶습니다.
감사, 감사, 감사, 감사.
아들 익환 올림
‘당신에게’(부인 박용길 장로)
오늘 아침에 시편 131-136편까지 히브리 성서로 읽고 고린도후서 11장을 읽고는 너무 햇빛이 좋아서 팬티만 입고 일광욕을 하면서 예배 시간을 보냈구먼요. 지금은 오후, 사랑하는 벗들과 같이 예배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쓰는 거요.
햇빛을 받으며 손바닥으로 온몸을 문지르는 일이 그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되는 것을 나는 요사이 절실히 느끼는 거요. 이 질그릇이 그렇게 소중해지는 거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얼마나 심감 나는 말인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두 손바닥으로 애정을 담아 문지르다 보면 내 몸을, 아니 이 질그릇을 두 손으로 정성껏 문지르듯 이웃을 살뜰히 사랑한다면 거기가 바로 하늘나라가 아니겠소?
두 번째로 소개드리고 싶은 옥중 서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입니다.
‘김대중 옥중서신’ (청사, 1984)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곧 판매금지 조치된 편지글 중에서 일부만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현재는 한울 출판사에서 2009년도 출판한 책만 남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옥중 서신 어디를 펼쳐보아도 정치인 김대중이 아니라 진실한 신앙인 김대중으로 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 잘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찬이 된 행복은 무어라 해도 남(敵)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웃 특히 고난 받는 사람들에의 사랑의 마음과 봉사를 주님의 뜻으로 행하는 기쁨일 것이오.(35쪽)
사랑하려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려면 상대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처지와 심정을 알기 위한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화도 이해도 없는 가운데 곡해와 무지가 쌓여있는 가운데는 용서도 사랑도 있기 어렵습니다.(143쪽)
하나님의 축복이란 평탄한 생활과 번영의 보장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고난 역경 실패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 앞에 서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202쪽)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빛은 암흑의 권세와 싸워야 하고, 부패의 힘과 싸워야 한다. 그러므로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은 시련과 고난의 생활을 의미한다.(286쪽)
왜 이 책이 금지도서가 되었어야만 했는지 지금도 그 의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네 편의 옥중 서신을 남겼습니다.
바울의 옥중서신,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록된 순서대로 정리하면 ①골로새서 ②빌레몬서 ③에베소서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쓴 ④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서’
사람들은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부렸습니다.
‘기쁨’이라는 단어가 여러 곳에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4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편지이지만 ‘기뻐하라’는 말이 무려 열 번 이상 반복해서 나옵니다.
빌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 2: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빌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여러 번 옥살이를 했던 문익환 목사님은 마음의 초조함이 찾아 올 때마다 기쁨의 서신이라고 하는 빌립보서를 반복해서 읽었다고 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지요.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바울 사도처럼 마음에 기쁨이 찾아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 그리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고질병처럼 몸과 마음에 새겨져서 그런지 아무 역사가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빌립보서를 반복하여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문익환 목사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불안과 초조 그리고 남을 탓하는 원망의 마음이 한 순간에 사라지더니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사도 바울처럼 솟구쳐 올라오면서 잊고 살았던 찬양이 터져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찬송가 438장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물론 옥살이라는 고독한 현실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을 대면하는 문익환 목사님의 태도가 달라졌지요.
바로 주 예수와 함께한다는 동행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감옥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진짜 신앙’을 만날 수 있었던 ‘진짜 성전’이지요.
우선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뜨거운 그리움을 떠올리며 이렇게 인사합니다.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새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립니다.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의례적인 인사일까요?
아닙니다.
진심이 담긴 인사말이지요.
이처럼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이 이런 애정이 담긴 인사말을 서로 건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깊은 관계 때문입니다.
특히, 시련에 시기, 마음의 힘이 되어 줄 뿐만 아니라 물질까지 도와주었던 빌립보 교인들의 마음을 바울은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고맙지요.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①내가 기도할 때마다, ②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③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저는 이 표현 하나 하나가 마음속에 다가옵니다.
내가 기도할 때마다 /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저를 위해 뭐라고 기도하시겠습니까?
내가 기도할 때마다 / 목사님을 위하여 /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이것이 제가 바라는 관계이고 목회이지요.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관계를 넘어 늘 기쁜 마음으로 서로 서로를 간구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 사도의 빌립보 선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아시아 지방
에베소라는 대도시가 있는 소아시아 지방입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중심으로 해서 흑해 근처에 있는 비두니아까지 선교의 지평을 넓히려 무진장 애를 섰습니다.
바울이 떠난 2차 선교여행의 계획이었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그 길을 막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열러준 길이 유럽의 관문 바로 ‘빌립보’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빌립보 도시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①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으뜸가는 도시) 또 ②로마의 식민지(로마의 퇴역 장군들이 모여 살던 신도시)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빌립보‘
거기서 누구를 만났는지 아십니까?
소아시아 지방 두아디라 시 출신, 자주 옷감장사 루디아를 만나게 됩니다.
아주 흥미롭지요.
더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해서 부유하고 경건한 상인 루디아와 그의 온 집안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유럽의 첫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빌립보교회인데 유럽대륙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입니다.
그러니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교회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3-8절까지 새 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1:3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4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1:5 여러분이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1:7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입증할 때에, 내가 받은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1:8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그러면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자신의 기도문’ 하나를 자신의 편지에 담습니다.
오늘 말씀의 본론이자 결론인데, 그것이 9-11절에 나옵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문,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여기에 보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세 가지의 기도 제목이 나옵니다.
첫째는 분별력 또는 통찰력입니다.
9절과 10절 전반부인데 새 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1:9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서,
1:10 여러분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사에 좋은 것, 선한 것을 택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10절 후반부터 새 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며,
성결 성화이지요.
마지막 세 번째 11절입니다.
다 함께 읽습니다.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1: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복음 성가 중에 이런 가사로 만들어진 노래가 있습니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함께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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