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산상설교 13
마태복음 7장 21-29절 2017/06/28(수)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복음 5,6,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13편의 표준설교’로 정리한 분이 웨슬리 목사님입니다.
오늘이 그 마지막 시간인데 그동안 인도하신 하나님과 그리고 열심히 참여하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설교의 내용들이 좀 어려웠지요.
어려웠다기보다는 다소 어색했을 것입니다.
주제들도 생소하고 그리고 사용된 단어들도 생소했기 때문에 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잘 따라오신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산상 설교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늘 놓고 기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산상설교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뜻, 하늘나라이지요.
그 나라를 온전히 이해하고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뜻에 따라 우리 모두가 낙오 하나 없이 천국에 까지 이르는 신앙의 동지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기도 제목입니다.
왜냐하면 산상설교 결론이 말하고 있는 예수님의 암중한 말씀 때문입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특히 7장 23절에 나오는 마지막 세 마디
①'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②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③내게서 물러가라.
이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각하게 제 자신에게 묻는 것이지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고, 불법을 행하지 않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된 것입니다.
적어도 오늘본문에서 ‘세 가지’는 아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소위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예언자의 표적들’로 22절입니다.
①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설교)을 하고,
②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축사/축귀),
③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는 것
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예표, 표시는 되겠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본뜻(실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것들로 유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할 뿐 만 아니라 이런 것들로 유혹하는 그 어떠한 사역이나 단체에 기웃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법이 없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참된 길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디에 있습니까?
그 길을 가르쳐준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5장 3-12절에 기록된 ‘팔복(행복) 선언’입니다.
‘합법’으로 ‘하늘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 행복선언’입니다.
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하늘나라 가는 첫 번째 행복선언이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가장 합법적인 길입니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두 번째 행복선언이자 천국 가는 길입니다.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③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④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⑤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⑥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⑦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지막 여덟 번째 행복선언이자 천국 가는 길입니다.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늘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이자 행복선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합법적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바르게 전한다 할지라도,
또 천국 가늘 길을 아무리 바르게 가르쳐 준다 할지라도,
듣는 청중들이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이 산상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한 말씀이 7장 24입니다.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리니(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강조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천국과 가깝다고 여긴 아브라함의 자손들 즉 거룩한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모세가 전한 율법을 기준으로 할 때 천국과 거리가 멀다고 여긴 이들, 예를 들자면 여자(과부) 어린이 나그네(걸인)들도 천국의 주인공,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확실한 죄인들 예를 들자면 간음하는 창녀, 고리대금업을 하는 세리,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형벌을 받았다고 하는 문둥병자(아토피성 피부병 포함-욥), 혈루병을 앓은 여자, 말 못하는 자(벙어리), 듣지 못하는 자(소경), 손 마른 자, 그리고 절름발이 심지어 할례의 증표가 없는 이방인까지 ‘누구든지’입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보다 예수님이 더 강조하고 싶은 말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천국,
‘누구든지’ 들어 갈 수 있지만 ‘아무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입니다.
여기에 보면 두 가지의 행동이 연이어서 나옵니다.
하나는 ‘듣는 것’
천국 가는 길, 복음의 길을 듣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행하는 것’입니다.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듣는 것을 우리가 ‘믿음’이라고 말한다면 들어서 생긴 믿음대로 실천하는 것을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7장 18절이 말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이지요.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말씀이 마태복음 5정 3-12절에 나오는 실천들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그렇게 실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렵지요.
그래서 그 길이 협착하고 그 문이 좁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행실들, 이런 실천들이 담보되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 안에서 천국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가는 안내를 들은 대로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듣는 것과 행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소중할까요?
다 중요합니다.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행할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강조한 초점이 있습니다.
믿음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 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비유가 ‘집 건축에 대한 비유’입니다.
집을 짓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집은 천국을 예표 하는 집이겠지요.
한 사람은 집을 짓는데 그 기초를 모레위에 세웁니다.
비용도 절감되고 시간도 절감되고 애쓸 필요도 없고 아주 좋지요.
사실 이렇게 지어도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홍수 시대처럼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무너짐이 심하겠지요.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것이 들음에만 머물러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의 최후라는 것입니다.
반면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 애씀과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허비될 것입니다.
아주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이지요.
하지만 노아의 홍수 시대처럼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노아의 방주처럼 끄떡없지요.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이것이 듣고 행하는 자가 얻게 될 최후의 승리이자 영광이자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님이 가르쳐 주신 천국 가는 길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먼저 자신을 바로 아십시오.
죄로 인해 참담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죄의 종노릇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그런 후에 애통하십시오.
죄를 슬퍼하고 그 비참함을 통곡하십시오.
그리고 온유함과 의를 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긍휼한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원수에게까지 자비를 베풀고 모든 이들과 화평케 하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길이지만 가장 큰 상급인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천국으로 나아가는 순례자의 합법적인 길이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본 뜻임을 꼭 기억하셔서 우리 모두가 낙오자 없이 의의 최후 승리를 얻는 믿음의 동지 신앙의 동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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